혼자 짹짹 2

첫 번째 잎 — 기꺼이, 재개발

by 주나함
혼자 짹짹 1과 이어집니다.

생각을 정돈하려 노트를 폈다.

‘연락문제' 하고 끄적였다. 이어 내 생각을 맞받아치듯 적어 내려갔다.

시간이 딱딱 정해지기를 바라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일까. 그건 아니지만 자유함이 없을 듯했다.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할 문제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를 돌아보았다.

그동안의 나는 보통 크게 연락을 주고받는 이가 없었다. 그간 만남을 잡으면 그때만 간간이 연락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생각하니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았다.

아무리 상대가 내 가족이 되더라도,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라, 때때로 '남'처럼 느껴질 순간도 있을 테니까.


특히 필요’라는 부분에서, 소외감을 느낄 것 같았다.

나를 찾아주는가, 아닌가에 따라 내 존재가 상대에게 필요할지 스스로 따지게 될 것만 같았다.

(물론 건강하지 않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당장의 솔루션을 내렸다. 시간적인 부분에서 아예 신경을 꺼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저녁 일정을 보다 꼼꼼히 짜고 지키는데 노력해보기로 했다.

연락을 굳이 보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기로 스스로 명심시켰다.

펭귄 씨도 눈치 못 챌 뿐더러, 너무나 소심한 복수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에게 헛헛함이나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됐다.


추가적으로 스스로 처방을 내렸다.

• 집에 있지 않을 것

공간 이동에 더불어 직접적인 교제는 없더라도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 녹아드는 곳으로 말이다.(도서관 등)




단 하루도 이 방법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계속 고민했다.

왜 연락 때문에 서운할까? 자주 보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연락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말 그대로 혼자였던 삶에 누군가가 추가됐다. 그것도 배우자가.

그런데 나는 이걸 약간 '침입'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어려운 손님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연락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펭귄 씨는 나와의 연락이 쉽겠지.

일하다보면 여러 사람과의 연락이 끊기질 않고, 여기에 나만 추가된 것이니까.

펭귄 씨 입장에서는 크게 다른 점도 없고 단순하게 느껴지겠지 싶었다.

가끔 느꼈던 외로움도,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며 안정감이 생겼으니 말이다.


내가 느끼는 연애의 불편함을 적어 내려갔다. 연락문제로 서운함을 느끼는 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화가 너무나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관계의 재정비가 필요했다. 방향성을 재정립한다고 해야 할까.

그저 연인으로서 관계가 확고해졌을 뿐, 그전과 동일하게 각자 사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싶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넘겨드리자.’


번잡한 내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주도권을 넘겨드리기로 했다.

내 판단과 계산보다는, 신뢰와 믿음 안에서 맡기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

혼자였다면 기도하고 우울해도 혼자 감당했겠지만, 연인이 생기니 되게 깨어지는 과정에 있다고 느꼈다.


생각이 많아졌다.



서운함은 사랑에 빠졌지만 삐져버린 사람을 쪼잔하게 만든다.

연락을 굳이 보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기로 다짐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했다.

퉁명스럽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빨리 얘기를 끝내려 하고, 날이 선 말투에서 펭귄 씨에게 들켜버렸다.

결국 이 고민의 끝은 내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래 고민한 터라 감정적이지 않고 정돈된 말이 나왔다.

펭귄 씨는 자기 딴에는 나를 배려한다고 일이 끝난 후에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은 나와 동일했다.

그의 생각과 마음을 들으니, 혼자서는 번잡하고 무거웠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별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p.s 나는 사랑이 사람을 찌질하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 뿐이다.

다만 '내가 중심이 된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찌질해진다.


이번과 같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 좀 알아줘, 너도 서운해봐라‘ 하며 똑같이 행동했다.

사실 서운하다는 걸 숨길 생각이 없기에 어투에서 티가 나는지도 모른다.


헤어질 위기에서야 자신의 밑바닥을 내보이면서까지 붙잡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