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가 포옹, 하고 터졌다

첫 번째 잎, 기꺼이 재개발

by 주나함

2025년 1월 중순의 막바지였다.

익숙하게 반복되는 일에서 서운함이 생기면,

그것이 합당한 의문인지 분별하기가 정말 어렵다.


문제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얼굴로 다가온다.

그것도 내가 가장 취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정확히 겨냥하며 말이다.



펭귄 씨가 퇴근을 늦게 하게 되어 밤에 잠깐 만났다.

엊그제 분명 봤는데도 넘치게 좋고 행복했다.

하지만 전날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한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시간도 많이 늦었고, 얼른 집에 가서 편하게 자요.

내가 졸려하자 그는 다정히 내게 말했다.

분명 배려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서운했다.


그 순간 이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원치 않은 부분이 눈에 띄곤 했다.

그동안 “이제 가자”는 말을 항상 그가 먼저 꺼냈었다.

(물론 나도 수긍했고, 협의 하에 자연스럽게 헤어지긴 했지만.)

내가 먼저 어른스럽게 이야기하고, 절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내 모습과 대조되는 그의 태도가 눈에 띄면서,

서운함은 더욱 커졌다.

그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억지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특히 펭귄 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내가 이 사람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

두려워졌다.

나답지 않게 심술부리고, 고집부리는 모습 또한 그랬다.


원래 집이었거나 혼자였다면, 연락을 보지 않거나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지켜 보고자 했을 텐데, 같이 있으니 쉽지 않았다.


펭귄 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가뜩이나 중요한 일정 진행도 코앞인데,

해야 할 것도 많고 내일 또 점검하고 준비해야 할 텐데,
나함아, 너는 오로지 품어주기로 다짐했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어리숙하게 굴지 않기로 했잖아…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가득했다.

나 자신을 설득하고, 그를 사랑하고 배려하기 위해

나를 움직이려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펭귄 씨가 내 보호자가 된 것 같아 속상했고,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내가 보살펴야 마땅한데, 되레 받는 것 같았다.


서운함이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려고 했고, 그는 나를 붙잡았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다.

그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설득했다.

그 속에는 어렴풋한 두려움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다시 차에 올라탔다. 사실은 나도 그러기를 원했기에.

펭귄 씨는 내 눈치를 봤다. 걱정스럽고, 애절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찬양을 들으며 각자 조용히 기도했다.


기도하며 내가 행해야 할 바가 더욱 뚜렷해졌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나’를 내려놓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 더는.’

그 생각이, 그 마음이 너무나 강했다.

여전히 내 안에 이런 두려움과 연약함이 남아있었다는 사실

스스로를 너무나 놀라게 했다.


비참했다. 그저 도망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가감 없이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펭귄 씨도 자신의 이야기,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상처를

가만가만 차분히 꺼내주었다.

그는 나를 비참하게도, 불쌍하게도 보지 않았다.

나 또한 그랬다.


펭귄씨는 이야기를 마친 후 내게 “나한테 실망했지“ 하며 말을 건넸다.

나처럼 펭귄 씨도 날것의 자신을 드러내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던 것 같다.

전혀 실망스럽지도, 현재의 펭귄 씨가 안쓰럽지도 않았다.

펭귄 씨는 사랑으로 빚어진 사람이니까.


다만 그때의 펭귄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

그때의 펭귄 씨가 얼핏 서려 보여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우리는 가장 깊은 곳의 서로를 꺼내보였고, 그럼에도 포옹할 수 있었다.



p.s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펭귄 씨에게서 장문의 글이 와 있었다.

아침에 책을 읽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 보냈다고 했다.

내용은 이와 같았다.

'절대적인 사랑'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할까?
이웃을, 가족을, 친구를, 심지어 연인/배우자를...

지금 이 시대는 어쩌면, Give & Take 사랑이 주를 이루는 시대 문화를 살아가는 것 같다.
또한 이 시대의 사랑은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사랑을 줄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외모, 물질, 명예, 매력 등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사랑하는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결국, 우리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마저 오해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대적인 사랑은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그 사랑은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 사랑을 알고, 이제 그런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조건을 충족한 사랑은 뜨겁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면, 사랑할 수 없다.
미움과 질투만이 가득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먼저는 특별한 존재로부터, 그리고 모든 이웃에게까지!


펭귄 씨의 글의 초반부를 읽어가면서,

예전에 학창시절 정신과 원장 선생님과 상담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그때 원장 선생님은 내게 장난스럽게, 그러나 꽤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호구되지 말라, 너무 이타적이니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선에 맞출 필요가 있다’


사람을 사귈 때에는 구분하고 지혜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방법으로 Give & Take 방법을 매번 강조하셨다.

먼저는 자신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손해 보지 않을 정도에서 먼저 건네라고 하셨다.

여기서 이를 감사히 여기고 보답하는 사람관계 진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라고 하셨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어떠한 관계는 깊어지게 하고,

어떤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도록 행동하는것이

자신을 지키는 법이자 지혜라고, 항상 가르치셨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배움이 굳은 마음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펭귄 씨와 연애하며 "더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는 듯했다.

절대적인 사랑을 더욱 알아가고,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너비와 어떠함을

더 깊이 깨달아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상처받기 싫다는 마음이 정말 강했던 것 같다.

어제를 돌이켜보며 다시금 놀라게 됐다.

아, 내게 여전히 이러한 연약함이 너무 명확하게 있다는 사실에서였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어제보다 오늘 더 펭귄 씨를 사랑하고 싶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도,

모순된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말이다.


펭귄 씨가 스며들 수 있는,

스며들다 못해 흘러넘쳐 덮여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주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