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여 배

두 번째 잎 — 방황 속, 재발견

by 주나함

연애를 처음 시작하고 보낸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보낸 것 같았다. 그저 감정노름에만 빠져 날린 시간 같아 헛헛했다. ‘집중’을 잃어버린 달‘이라고 해야 할까.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었다. 무엇이든 좋다는 마음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에 초점을 두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의 불은 꺼지지 않고, 필터는 계속 돌아갔다. 때때로 극장이 되어 상영되기도 하고, 교사처럼 잣대를 세워 내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내게 너무나 각박했고, 관대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자꾸 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하려던 것도 잘 되지 않았다. ‘억울함’ 오랜만에 드는 감정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돌아보는 동안, 나는 몸 또한 무심히 지나쳤음을 깨달았다. 나는 항상 마음보다는 차라리 몸이 아팠으면 하고 바랐었다. 그래서인지 몸의 아픔에는 굉장히 무감했고, 거의 건강불감증 수준에 가까웠다.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펭귄 씨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나의 배를 다시 보게 됐다. ‘복부의 통증을 바로 잡아야겠다.’ 이 마음이 간절했다.



펭귄 씨는 나를 만나기 이전까지 커피 러버였다. 커피를 마실 때 샷 추가는 필수였다. 하루에 다섯 잔까지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날 만나고서는 커피를 끊었다. 매일 일에 치여 잘 챙기지 않던 밥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이제 자신의 몸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너를 위해서야.”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 또한 펭귄 씨를 위해서라도 내 몸을 낫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굳세졌다. 종종 데이트하며 내 컨디션을 자주 살피는 그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작년, 내가 배에 손을 떼지 못하자, 보다 못한 가족들의 권유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대장내시경과 CT촬영을 했지만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잠시 한의원을 다녔다.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한의사 선생님조차 왜 낫지 않느냐며 답답해하실 정도였으니까. 그랬기에 한의원에 대한 큰 신뢰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증은 한의원에서 고치는 게 가장 빠르고 좋다며 다른 곳으로 다시금 다른 곳으로 다녀보기로 했다.

한번 치료를 시도해본 경험이 있어, 워낙 신뢰가 없던 탓인지 묻는 질문이나 검사에 성실히 임하기는 했지만, 간단하게만 답을 드리게 됐다. 그러다가 원장님께서 상담 중에 내 통증 일대기와도 같은 과정을 들으시며, 2022년도에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다. 내 표정만 봐도 큰 일이 있었던 것을 알 것 같다고, 그 일의 여파로 후유증처럼 자리 잡았을 확률이 크다고 하셨다.

복부의 통증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달라고 하셨다. 되게 어려웠고, 이러한 상황과 마음이 익숙했다.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여러 문장으로 나열해야 하는 것. 왜 닥쳤는지 모를 일들, 마음의 아픔을 깊게 겪을 때, 늘 했던 것이었다. 나는 몸이 아픈 거나 정신이 아픈 거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 병명을 들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없으며, 다른 이를 이해시킬 수도 없다. 억울해지고 곧 서글퍼졌다.

펭귄 씨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내 얘기를 하게 됐다. 자존심이든 뭐든 다 내려놓고서 보다 솔직하게 요즘 힘들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펭귄 씨라는 사람은 왜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것일까, 이토록 품어줄 수 있을까—의문에 가까운 감탄이 들었다.

펭귄 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프지 않을 때 감사할 수 있어.”


나는 이 말을 기억하며 언젠가 그 감사함을 고백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p.s 그럼에도 사람은 겪어봐야 비로소 확실하게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 마음은 불안에 가까웠다. 학습지 교사로 잠시 일을 해보려 지원했고, 면접에 통과해 교육을 앞두고 있었지만, 추위와 먼 거리 때문에 복통이 심해져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거리를 줄여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시작했지만, 가게 안이 너무 추웠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못 말아 우울해질 수도 있는 줄은 몰랐다. 한 달 조금 넘게 일했지만, 몸이 차가워지면서 복통이 심해져 마찬가지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무엇보다 일을 하며 복통이 이렇게 뚜렷하게 느껴지자, 이를 정말 치료해야겠다는 필요성과 간절함이 생겼다. 그렇게 내가 오롯이 해야 할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