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잎 — 방황 속, 재발견
아빠는 그간 펭귄 씨와 나의 연애에 대해서 시큰둥한 듯 보였다. 보통 엄마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눴다. 아빠는 밤 9시나 10시만 되어도 일찍 잠자리에 드셨기에 늘 자고 계셨다. 가끔 코를 골기도 하셔서 우리 얘기를 들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말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출근 준비를 하던 새벽, 아빠가 엄마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어젯밤 얘기 들어보니까 나함이 결혼 생각도 하고 있는 거냐고. 엄마는 “이 사람이 전혀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하며 뜻밖이었다는 듯 웃었다.
그 얘기를 들은 며칠 후였다. 펭귄 씨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에 가까워졌다. 거실에서 엄마와 소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도 하게 됐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빠가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소파에 걸터앉아 조용히 물었다.
“너, 진짜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거야?”
감정에 치우친 선택이 아니라고, 펭귄 씨를 좋아하는 이유와 내 진로 계획을 말씀 드렸다. 아빠는 오래 만나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왜 섣불리 결정을 내리려 하냐며 반문했다. 그러자 꽤 오래 펭귄 씨를 알고 있던 엄마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함께 사역했을 때 얘기와 주변 평판을 꺼내며 대신 답변해주었다. 아빠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너는 아직 어리고,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해.” 하셨다. 아빠는 쉽게 허락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날 대화는, 시간도 늦고 해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빠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그 계기는, 아빠의 마음을 단번에 열게 만드는 사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엄마와 나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원래 펭귄 씨를 나와 사귀기 전부터 좋아하고 크게 보던 엄마는, 점점 그에게 서운함이 생겼다. 예를 들면 나 딴에는 엄마와 펭귄 씨와 함께 대화 나누며 더욱 결속감을 누리고 싶어, 결혼 반지도 보여드리고 신뢰 또한 더욱 심겨드리려 얘기를 나누는데 오히려 오해만 불러 일으켰다. 사소하지만 분명 오해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쌓이자, 엄마가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는 오빠의 당돌함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고 느끼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펭귄 씨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위가 되고 내가 결혼하는 것이 분명 기뻤는데, 나를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 사람은 나랑 결혼하고 나면 아예 남남처럼 지낼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엄마는 결혼해서 얼른 가라고 하면서도, 펭귄 씨와는 남남으로 지낼 것이라 덧붙였다.
나 또한 엄마에게 서운함이 정말 커졌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아이에게 “여기 있어, 엄마 곧 돌아올게.” 거짓말을 뱉고 사라지는 부모가 아니라, 대놓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고 사라질 것을 각인시키는 것만 같았다. 요새 배도 낫는 것 같고 집중력도 회복되는 듯했는데, 모든 게 좋아질 것만 같았는데 다시금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더 아팠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이해됐다. 다만 나는 무조건 펭귄 씨가 잘못됐다 정죄하지 않고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 또한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을 해석하고 싶었다.
다음 날 펭귄 씨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가려는데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조심스레 나가 펭귄 씨를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카페도 갔다. 중간에 할머니에게 전화가 와 잠시 통화하러 나갔다가 들어왔다. 펭귄 씨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무슨 일 있냐고. 잠시 고민하다 얘기를 꺼냈다.
그는 자신이 나보다 나이가 있고, 나를 일찍 데려가다 보니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 더 당당하고 당돌하게 굴었던 거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께서 기분 나쁘실 만했겠다며 죄송해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의 의견과 생각을 듣고 과정에서, 나는 펭귄 씨가 어릴 적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크구나 싶었다. 사랑을 받는 게 어렵고, 왜 자신이 잘해준 게 없음에도 이렇게 베풀어주시는지 이해가 어렵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녹았으면 싶었다. 엄마도 그동안 ‘진짜 펭귄 씨’를 알 수는 없었으니 충분히 오해할 법 하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참 좋을 텐데 싶었다.
그 다음 날도 펭귄 씨를 만났다. 저녁 시간이 지나갈 때였다. 아빠에게서 언제 오냐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는 펭귄 씨와 내가 만나는 걸 좋게만 여기셨던 엄마였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자 아빠를 시켜 전화를 걸게 한 모양이었다. 금방 가겠다고 하자, 엄마가 전화를 받아 빨리 들어오라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엌 식탁에 엄마와 아빠가 앉아 계셨다. 어쩌다보니 처음으로 아빠까지 함께 얘기하게 됐다. 감정이 잘 잡히지 않고 힘들어서, 말이 차분하게 잘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처음에 나를 설득했다. “해외도 가고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지금처럼 글을 쓰고, 펭귄 씨와 함께 사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나 또한 예전부터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마음을 먹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펭귄 씨일 뿐이라고.
한참 대화를 나눈 뒤, 아빠가 결혼해도 너한테 진짜 잘할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처럼 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너는 이제 막 졸업했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지원해주고 지지할 건데, 왜 벌써 살림하려고 하냐고 물었다. 나는 글을 쓰고 함께 사역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다시금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분명 하고 싶은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왜 다른 길을 자꾸 보여주시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하신 건지 혼란스러웠다.
“아빠는 별로 원치 않아?” 묻자, 아빠는 그동안 학교 다니느라고 얼굴도 많이 못 봤는데, 졸업하자마자 바로 가버리는 게 어디 있냐고 말했다.
“벌써 가면 아빠는 어떡하냐!”
하고 호통치셨다. 그제서야 나는 엄마, 아빠의 진심을 알았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거창한 사실이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일찍 보내려니 서운한 마음이었다. 아빠가 화를 내는데,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정말 컸다. 엄마도 펭귄 씨가 나중에 나를 힘들게 하면 그때는 정말 쏘아 붙일 거라고 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다시금 뜨겁고 명료히 느끼며, 내가 무언가를 크게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화는 그렇게 잘 마무리 되었고, 상견례도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아빠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엄마와 잠시 대화를 더 나누었다. 아까 전화를 끊고, 엄마가 화가 많이 났었는데 아빠가 엄마를 많이 달랬다고 했다. “젊은 사람이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거야, 자기한테 잘하더만, 저번에는 과일도 한보따리 가져오고 이것저것 했잖아.” 하며 펭귄 씨를 대변해주셨다고 했다.
아빠한테 가서 안마해주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매일 해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됐다. 매일 성실히 새벽같이 출근하고, 고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를 더 크게 반겨주지 못했을까, 죄송한 마음이 컸다. 이제부터라도, 하고 다시금 다짐했다. 아빠에게 감사하다고, 내가 더 잘할게 말했더니, 아빠는 “엄마한테 잘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빠는 노년에 엄마랑 전국일주 할 거라고 얘기를 덧붙였다. 표현은 적어도, 확고하고 따스한 아빠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
p.s 아빠가 허락하게 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아빠가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고, 나를 존중해주신 덕분이었다.
나는 가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내 동생. 우리 가족을 더 긴밀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앞으로는 서로의 마음을 더 세심히 살피자고, 그 마음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나부터 견고해지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