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며 가족 될 우리

두 번째 잎 — 방황 속, 재발견

by 주나함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먼저 자버린 펭귄 씨가 얄미워, 초성으로 ‘얄밉다’고 보냈다. 그런데 그는 읽고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괘씸한 마음이 잠시 올라왔다가도, 새벽부터 일하고 있는 사람이고 피곤해서 잠든 걸 생각하니 금세 미안해졌다. 괜히 뻘쭘하게 만든 것 같아 사과하려고 “전화 돼요?” 하고 연락을 보냈다.

막상 전화를 하니, 나도 그를 잘 모르겠고, 예전에 힘들었던 일들이 불쑥 떠올라 울컥했다. 사소한 일을 괜히 오해로 일을 키운 그가 미워졌다. 펭귄 씨는 늘 책임감 있고 재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직접 나서서 찾아주고 자기 일을 하러 다시 들어갔을 텐데, 왜 하필 그날은 다른 사람을 시켰을까. 결국엔 펭귄 씨가 직접 나서서 마무리했는데, 그 단순한 일이 엄마를 속상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따지게 됐다. 펭귄 씨에게 화나는 마음도 컸지만,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고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품어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더 마음에 안들어 화가 나고 속상하기도 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펭귄 씨는 자기도 자기를 잘 모르겠다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고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스물아홉 해 동안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며 살아오다가 나를 만나 새롭게 변화를 맞이했는데, 그게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다고 했다. 내가 “오빠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어도, 선뜻 답이 안 나온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걸 고르는 일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투영해 선택하는 게 어렵다고. 그동안은 상대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대로 맞춰주는 게 편했고 그렇게 따랐다고 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나와 연애하며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또한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대로 행동하면 사람들은 다 그걸 원치 않고 싫어했기에 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기 본모습은 초라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든 선택의 어려움이든, 그동안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배운 것이든, 자기의 이런 모습을 말하면 상대의 믿음을 저버릴까 두렵다고 했다.

자신이 가족에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의 표현 방식 또한 경제적인 것인데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으니 이 또한 어렵다고 했다. 지금 나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내게 주는 사랑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자기를 아들처럼 사랑하겠다는 말조차 ‘내가 잘한 게 없는데 왜 그러시는 거지?’라고 느껴, 뭔가를 계속 해드려야 할 것 같아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펭귄 씨는 이런 사정을 이전에 자신의 진짜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털어놓았고, 나중에 배우자에게만 말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를 만나면서, 이제 이 사정을 아는 사람은 친구와 나, 오직 둘뿐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으며, 엄마의 ‘아들같이 사랑하겠다’는 말도 그에게는 추상적으로 느껴지겠구나 싶었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를 해주고 드려야만 인정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가, 이번에 그 생각이 깨지면서 혼란스러울 법도 했다. 깊이 이해됐다. 우리 가족에게 동화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에게, 나는 단호히 말했다.


“오빠, 무얼 하려고 하지 마요.
그저 스며들면 돼요.
사랑을 받아들여. 그거면 돼. 그게 전부야.”


펭귄 씨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보였다.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달갑지 않겠지만 나도 어려운 부탁 하나 해도 되냐고. 내가 부산에 갔을 때, 그는 전화하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생각이 많아지더라도 혼자 숨거나 사라지지 말자고 했었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자고 약속했던 그 말을 떠올리며, 나도 이제 똑같이 부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어려움과 고민을 혼자 감당하지 말고, 함께 나누고 기도하며 헤쳐 나가자고 했다.

나는 늘 펭귄 씨가 좋았고 그의 모든 면이 궁금하다고, 긍정이든 부족함이든 그의 모든 면을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가 정리한 결론보다,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힘듦과 지난 상처, 어려운 것 그리고 답답함과 상한 마음을 듣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복잡하더라도 말이다. 펭귄 씨가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해도 그 마음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함께 알아가자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시간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자고 했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펭귄 씨 편이며,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라고 말했다. 이건 내 진심일 뿐 아니라, 다짐이자 결단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하나 되어 앞으로 함께 걸어갈 믿음의 길을 위해 ‘훈련’하는 과정임을 인지하자고, 더불어, 함께 자라가는 과정일 거라고 덧붙였다.

펭귄 씨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감정을 직시하며 생각하느라 많이 어렵고 힘들 것 같았다. 많이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었다. 나는 걱정을 표하면서도 이 시간들이 분명히 그에게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행복이란 사랑을 아는 지식이 커지고, 삶—그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이 시간을 땅을 고르게 하듯, 믿음과 신뢰로 잘 다지듯 밟아, 앞으로 자라 맺게 될 열매를 기대하자고 덧붙였다.



내 연락을 읽은 펭귄 씨는 아직 정리되지 않아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하루 종일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본 끝에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고 답을 보내왔다. 늦었지만 집 앞에서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대화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며 배시시 웃었지만, 내 눈에는 하루 만에 야윈 얼굴만 보였다. 펭귄 씨는 이번 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새롭게 배웠지만, 그보다 내가 보여준 단단함이 자신에게 큰 위로와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자신이 나이가 더 많아 내가 그를 의지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는 평생 곁에 있어달라며 귀엽게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