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일본라디오방송에 출연한 온천소믈리에(2002년에 등장한 민간자격이다. 온천분석서와 입욕법을 배우고, 보다 효과적이고 보다 즐겁게 온천을 즐길수 있는 지식을 소유한자)가 소개하는 혼욕취재기는 내 귀를 쫑긋 세우게했다.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 시야가 탁트인 노천탕, 긴타올을 두르거나 아예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다 벗고 들어가는 곳 다양했다. 머리 속이 응큼한 상상으로 가득차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일본의 목욕문화와 혼욕은 언제부터?
일본의 목욕문화는 6세기경 일본에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사원에는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부처를 섬기는 일로 여겨져 탕당(湯堂) 또는 욕당(浴堂)을 만들어졌고, 승려들과 병을 치유하기 위해 뜨거운 물에 약초를 넣고 증기를 이용한 한증식 형태였다. 이것이 욕실목욕문화의 시작이다.
카마쿠라시대(1185-1333)에 접어들면서 욕실은 승려나 귀족뿐 아니라 서민들도 무료 로 이용가능했지만, 점차 유로화되면서 목욕문화가 마을로 확산되었다. 1590년 에도성 안에 제 1호 목욕탕이 생겼다. 이 목욕탕은 바람이 강하고 먼지가 많이 날렸던 에도에 거주하던 서민들에게 대인기였다. 당시 에도는 전국에서 모인 무사나 건설에 종사하는 남자들이 많았던 곳으로 에도초기의 목욕은 남성중심이였는데, 손님의 머리카락과 몸을 씻겨주는 탕여(湯女, 일본어로 유나)가 유행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목욕서비스 외 술과 식사접대, 샤미센(일본의 전통악기)과 춤, 그리고 때로는 잠자리도 함께 했다고 한다. 에도막부는 탕여로 인해 목욕탕이 풍기문란해지자 이 서비스를 금지시켰다. 남성중심의 목욕탕은 서서히 여성고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혼욕을 하게 되었고, 성별, 신분 관계없이 공평한 입장에서 교류하는 장소로 변신하였다. 하지만 혼욕은 음탕한 고객들로 인해 타락해지면서 1791년에 칸세이개혁(寛政改革)을 단행한 마츠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에 의해 혼욕금지령이 내려졌다. 그 이후 혼욕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없지만, 1990년대 혼욕가능한 온천이 전국 1,200군데에서 현재는 400곳이 채 안된다고 한다.
드디어 2013년 1월, 사건이 터졌다. 설국을 테마로 일본의 이색체험을 취재하고 싶다며 K본부의 VJ특공대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단 혼탕을 꼭 넣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있었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소개한 온천소믈리에의 혼욕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인터넷을 뒤졌다. 겨울철 눈을 맞으며 노천탕에서 혼욕을 즐길수 있는 곳이 군마현의 미나카미(群馬県の水上)에 있는 타카라가와온천(宝川温泉)이였다. 목욕문화에 관대한 일본이지만, 혼욕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기에 취재를 장담할수 없었다. 가슴 졸이며 수화기를 돌려 지배인에게 섭외요청을 했는데, 그의 대답은 OK였다.
타카라가와온천지구는 타이쇼시대(1912년-1926년)에 접어들면서 숙박시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고 한다.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여 미나카미에서 걸어서(현재 차량으로 30분 소요) 이곳까지 손님이 방문했다고 한다. 혼욕이 가능한 오우센카쿠(汪泉閣)료칸은 은 1957년에 오픈했다. 무엇보다 이곳의 매력은 계곡이 있는 자연 속에 즐길수 있는 노천탕이다.
드디어 4박 5일간의 빡쎈 취재가 시작되었다. 눈길을 대비하여 스노우타이어와 4륜구동 차량을 준비했다. 타카라가와온천의 가는길은 폭설로 인해 험난했지만, 눈으로 뒤덮힌 자연은 속세에서 찌들은 육신과 정신을 정화시켜줬다. 설피를 싣고 눈산 트레킹은 한국의 남쪽지방에서 자란 나에게 별천지였고, 미모의 여인들과 함께한 시간은 보너스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혼욕촬영은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진행했다. 가장 넓은 노천탕에는 남성과 여성비율이 7:3정도였다. 남성은 아랫도리부분을 타올로 가리고, 여성은 긴타올로 몸을 가리고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저녁엔 암흑의 세계라 커플들은 실오라기를 걸치지 않고 혼욕을 즐겼다.
지배인 : 고객 여러분, 온천 즐기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료칸의 지배인 000입니다. 일본의 NHK와 같은 방송사 K본부가 저희 료칸에 촬영왔습니다. 이곳의 자랑거리인 노천탕을 카메라에 잠시 담고자 합니다. 협조부탁드리겠습니다. 특정인을 부각시킨 촬영하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김코디: 신세를 지겠습니다. 한국공영방송K본부의 김코디입니다. 설국을 테마로 타카라가와온천에 취재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문제는 노천탕이 생각보다 넓어서 전경 외, 근접촬영과 온천을 즐기는 고객들의 인터뷰를 딸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린 가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물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2010년부터 방송일을 시작한 이래 이런 취재는 처음이였다. 수영복이 있었다면 저항감이 덜했을텐데 준비를 못했기에 긴타올로 아랫도리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지만, 왠지 흘러내릴 것 같아 벨트까지 풀어 꽉 졸라매고 온천으로 향했다. 촬영하기전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를 돌렸다. 가족팀, 연인팀, 그리고 외국팀까지 협조를 해주셨다. 촬영하는 동안 응큼한 생각은 전혀들지 않았고, 그냥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였다.
여기서 잠깐
2019년 4월1일부터, 혼욕노천탕 입욕법이 바뀌어 시설에서 지급하는 옷을 남녀모두 착용해야한다고 합니다.
타카라가와온천 오우센카쿠 공식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