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들에 대한 기록
어쩌다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어쩌다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삶의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많은 시간을 음악을 찾아다니면서 듣고 공부하는 데에 쏟았다. 그러다 보니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왜 그리 좋으냐'는 질문이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순간은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왜 음악이 그리 좋았는지 그 이유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할 것이다. 설사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외면적인 현상에 근거한 설명일 뿐이다. 더 정확한 답은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태어나는 다양한 흥미에 관한 유전자 중에서 내게는 음악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었을 뿐이다. 그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좋은 음악에 반응을 격하게 하는 유전자, 이른바 '음악에 대한 감성'이 내 의식 위로 떠오른 것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참 우연한 기회에 그걸 느끼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작한 심리학 공부의 영향으로 나는 내게 음악을 좋아하는, 그렇지만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지는 못하는 불균형한 상태는 유전자 속에 타고난 것이고 믿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유전자는 그전까지는 의식 위로 떠오를만한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해서 나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어떤 모티브에 직면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유전자가 무의식의 임계를 넘어서면서 의식 위로 터져 나온 것이라 믿고 있다.
사실 음악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다.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태어나는 흥미나 적성에 따라서 주위에서 항상 들려오는 멜로디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그걸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 음악은 와닿기도 하고 안 와닿기도 한다. 멜로디들은 항상 공기 중에 낮게 깔려서 떠다니는 존재처럼 느끼려고 하면 가까이에 있고, 그것에 무감한 상태이면 전혀 의식을 못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연주하고 만들기 시작하는 음악의 신동들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음악이라는, 세상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그것들을 삶의 한 구석에도 넣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성향도 DNA 속에 내재된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DNA가 내 안에 있다'는 그 존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시절이었지만,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는 어디선가 들려오던 그 소리들에 제목이라는 외적인 장치를 부여하면서 하나의 실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는 데자뷔 같은 무언가를 자주 느끼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초기에 우연히 Beatles의 Ob-La-Di Ob-La-Da란 제목의 노래를 알게 되었는데, 이건 언제, 어디서 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예전부터 익숙하게 알던 노래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ABBA의 I Do I Do I Do를 처음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데자뷔를 느꼈었다. 마치 이전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던 노래 같은 느낌...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팝송의 시대였고 라디오의 시대였다. 어느 순간에 문득 나는 팝송이 좋아졌고, 라디오에 빠져 들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FM방송을 늘 틀어놓고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모티브는 의외로 우습게 찾아왔다. 중2의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우연히 좀 '논다'는 친구들의 춤곡 테이프를 집어 들고 테이프의 겉면에 쓰인 노래 제목들을 보면서 그때까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팝송'에 대한 관심이 느껴졌다. 아니 느낀 정도가 아니고, 확 꽂혀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 이후로는 공부를 하는 순간에도, 다른 놀이를 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친구들과 무언가 활동을 하는 시간에도, 어느 집에나 하나 정도는 있던 라디오를 켜서 FM방송을 공기 중에 흘려 놓아야 되는 멀티 생활을 했다. 그때 이후로 음악은 내게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카세트테이프의 시대이기도 했다. 물론 그 기반이 되는 LP는 선망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LP를 돌릴만한 오디오, 그 시절의 흔한 용어로는 전축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꿈도 꾸지 않았다. LP 음반의 재킷들은 그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고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집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했던 중학생 시절이었기에 LP를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 보지를 않았다.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곡들을 녹음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음악을 내 것으로 소장할 수 있는 매체였다. 그 시절의 공테잎 가격은 대략 1,000원 내외였다. 공테잎을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닳아질 때까지 들었다. 동네 레코드점에 주문을 하면 카세트테이프에 1시간 분량의 음악을 녹음해 주는데 그건 대략 1,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게 그 시절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치기 어리고 유치한 느낌을 물씬 풍겼던 중학생 시절에 동화책과 만화책에서 벗어나 음악으로 취향을 확장하던 그 순간부터 음악을 듣는 나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면서 그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악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보려 한다.
그 시절에 듣던 음악들은 현재의 나에게도 대부분 현재형으로 듣는 음악들이다. 그래서 나의 음악 듣기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더욱더 범위가 넓어진다. 그 쌓여온 시간만도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음악을 듣는 행위를 단 한 번도 식상하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내 손에서 놓아본 적도 없다. 그게 내 음악 듣기의 힘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