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첫 순간들이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김상진, 배호, 조미미, 이미자, 남진, 나훈아 그리고 ABBA

by 꿈싹지기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참 가난했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가난했던 우리 집의 모습이 기억의 배경에 항상 바탕색처럼 깔려 있었다. 그런 배경 위에 얹힌 내 유년기의 기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즐겨가던 만화방이었다. 만화방에서 만화책의 즐거움을 느끼던 기억으로 시작해서 국민학교 시절에는 고모집에서 동화전집과 위인전집을 한 권씩 빌려와서 읽기 시작하던 기억으로 이어진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누나와 형의 교과서와 참고서 몇 권이 있었을 뿐이다. 글자를 읽고, 무언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타고난 내 성향에 잠재해 있었는지, 나는 만화방에서 보던 만화책이나 집안에 있던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만족을 못해서 책을 빌려 보기 위해 도립, 시립도서관을 전전했다. 어린 시절 마땅히 마음에 드는 놀이 공간이 없던 나에게 공립도서관은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던 공간 중의 하나였다. 그 시절까지 내 귀에 들려오던 음악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우리 집에 있었던 전축에서 시작된 기억?


음악과 관련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한때 우리 집의 방 한편에 전축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 전축이 있었다는 것은 참 낯선 기억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축이 있던 시절의 그 집은 우리 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한때 어머니는 남문시장의 서편 끝자락에 있던 옥풍 빌딩 이름의 5층 정도 된 큰 상가 건물 앞에서 실비식당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식당에 딸린 방 한편에 전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식당도 벌이가 변변치는 못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 그 식당에 살기 시작해서 국민학교 4학년까지 그 동네에서 지냈으니 그 시절 나의 누나와 형은 중고생 시절을 그 식당에서 보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삼 남매는 따로 공부방을 얻어서 그 방에서 지냈다. 그중 가장 어렸던 나는 낮 동안에는 그 식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 어린 시절의 전축은 이런 모양과 비슷한, 가구 같은 모양의 전축이었다. 그 당시에는 TV도 이런 박스에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 가요들 그때는 구수했는데…


하여튼 그 전축은 식당에 딸린 방에 있었는데, 그 전축이 어떤 경로로 우리 것이 되었는지 그 과정은 잘 모르겠다. 어머니가 식당을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던 건지 아니면 식당을 하면서 따로 장만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 같았던 낡은 전축에는 한 몸체로 붙은 작은 LP장이 있었다. 그 속에는 몇십 장의 가요 LP들이 꽂혀 있었다. 별다른 놀잇감이 없던 나는 가끔 그것들을 들쳐 보곤 했었다. 그 당시 어른들의 놀이에는 오래된 대중가요들, 지금은 전설 같은 그 노래들을 듣는 것이 한 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그 낡은 LP에는 배호도 있었고, 나훈아가 있고, 남진이 있었고, 조미미가 있었다. 아, 내게 가장 기억을 진하게 남겨준 이는 김상진이었다. ‘고향아줌마’였던가... 그 노래는 어머니와 지인들이 즐겨 얹어놓고 듣던 노래였다. 어른들이 둘러앉아서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칠 때면 가장 자주 부르던 노래이기도 했다. ‘울어라 열풍아’라는 제목도 생각이 난다.


김상진 - 고향 아줌마


배호 - 누가 울어


와, 남문시장 옆 대한극장과 대도극장


남문시장 근처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했던 사거리의 양쪽에는 극장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아마 대한극장과 대도극장이었지... 대한극장은 지금의 효성 해링턴플레이스 자리에 있었고 1960년에 개관해서 1990년에 폐관을 했다. 대도극장은 그 건너편 헌책방거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56년에 개관했고 폐관 연도는 기록이 없다. 이 두 극장은 집에서 몇 발짝만 걸어가면 보이는 거리에 있어서 자주 보게 되는 극장이었다. 그 당시 극장에서는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들의 공연이 성행했었다. 딱히 공연을 할만한 공간이 없던 그 시절에는 극장이 가수들에게는 가장 흔한 공연장이었다.


영화의 기억도 있다. 사실 영화를 본 기억은 이보다 더 앞선 유년 시절의 내가 살던 동네 근처의 시장이나 공터에서 야외 영화를 상영하던 것을 본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남아 있다. 물론 어떤 영화였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고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야외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내겐 첫 영화 관람의 기억이었다. 후에 쥬세페 토나토레 감독이 만든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이 개봉되었던 대학 시절에 그 영화를 보면서, 야외로 영사기를 돌려서 담벼락에 영화를 보이게 해 영화관에 들어오지 못한 동네사람들에게 나름 기쁨을 선사했던 유명한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어렴풋했던 야외 영화의 기억을 오버랩시키기도 했었다.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대한극장에서 함께 보았던 '성웅 이순신'이었던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성웅 이순신은 1962년에 유현목 감독이 처음 만들었고 1971년에 이진규가 다시 제작을 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도 내가 본 것은 두 번째 제작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이진규와 김지미가 출연했다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영화에 출연한 인물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너무 어리던 시절이어서 그 영화를 보던 시절에도 그다지 화면에는 집중하질 못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영화를 보던 시간의 대부분을 졸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든다.



ABBA The Movie, Forever!


대한극장에서는 ABBA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ABBA The Movie'가 상영되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ABBA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영화의 포스터와 알파벳 4개가 나열된 그룹명의 기억만은 강렬하게 남았다. 그 영화의 포스터는 참 강렬했다. 검은색 바탕에 멤버 4명의 얼굴이 잘 배치된 그 포스터는 나중에 아바를 알게 된 시절에도 자주 접했고 지금도 자주 보는 이미지이다. 내가 처음 사서 자주 보던 팝송책의 뒷 표지에도 그때의 그 포스터 이미지가 실려 있었다. 아마도 그 포스터에 사용된 그 사진 이미지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봐왔던 젊은 아바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나는 아바 덕분에 더 일찍 팝송에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는 아직도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나의 직장생활 중에 DVD로 구입해서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 내 기억에 조금 아리송한 점이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시기는 1977년이고, 그때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나는 4학년 때 남문시장 옆에서 남산국민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서 그 동네에 없던 해인데 어떻게 그 영화관에서 그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지 기억이 좀 애매하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추정해 보건대 우리나라에는 그 이후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개봉되었을 수도 있다는 정도이다. 그 시절이라면 남문시장 근처에 살던 친한 친구가 내게 한 명 있어서 그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음악 이야기도 나누고 했었는데 그때 봤을 수도 있다. 국내 개봉연도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사실 그것도 확실치는 않지만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정이 아닐까 싶다. 아바는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던 1973년에 첫 앨범을 냈고, 그 이듬해인 1974년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에 유로비전 송콘테스트에서 Waterloo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젊은 시절의 ABBA의 모습이 담긴 1977년 영화 포스터. Agneth의 강렬한 눈빛이 어린 나에게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었었다.



내가 들은 노래와 제목을 연결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각인해서 내 머릿속에 담아두기 시작한 시기는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ABBA의 Waterloo를 듣게 되던 순간의 그 강렬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ABBA의 히트곡 모음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해서 처음 들어보면서 그 테이프에 실린 곡의 절반 정도는 이미 들어본 듯한 데자뷔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마 데자뷔가 아니라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귀에 도달했었던 음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Beatles의 음악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중반의 그 시절에 ABBA와 Beatles의 음악이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뮤직이었을 것이고, 그건 팝송의 열풍이 시작되던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그 시절 내가 살던 곳의 공기 속에도 존재하면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던 음악이었을 것이다.


기억들을 곰곰이 돌이켜보면서 내린 결론으로는, 내 기억 속에 노래의 존재가 담기기 시작한 것은 유년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김상진, 조미미, 이미자, 남진, 나훈아로부터 ABBA와 Beatles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 안에 음악들이 쌓여 저장되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그 기억의 추적은 다음 글에 이어진다.


1974년 유로비전 송콘테스트에서 Waterloo를 부르는 ABBA
ABBA The Movie의 공식 Trailer
ABBA The Movie에 수록된 Dancing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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