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음악에 흡인되다.

7080의 시대, 누구에게나 알려졌던 팝송들

by 꿈싹지기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의식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가,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 복기해 보는 기억들


언제부터 음악에 빠져들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작은 팝송이었고, 중학생 시절부터인 것은 분명하다. 중3 시절에는 음악을 제법 일찍 듣기 시작했던 친구와 함께 제법 깊이 있는 음악들을 나누고 있던 장면들이 선명하다. 중3 시절은 확실했고, 그러면 국민학교 시절로 다시 거슬러 가본다. 아니다. 국민학교 시절의 내겐 음악시간도, 미술시간도 별로 관심 없던 수업시간이었다.


그러면, 중1 시절의 기억은?

그 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몰몬교에 빠져 영어를 제법 유창하게 구사하던 한 친구를 따라서 몰몬교 교당을 몇 번 들락거리던 것이었다.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다는 친구의 꾐에 몇 번 따라가 보았다. 내당동쯤이었나??? 거기서 젊고 젠틀했던 파란 눈의 몰몬교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외국인들과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도 해보는 경험에 잠시 신기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시들해져서 몰몬교 교당에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많이 내성적이어서 별로 말이 없었던 중학생에게는 그런 기회가 영어회화를 배울 기회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선명함에도 그 시절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은 남아 있질 않다.


물론 중1 시절의 같은 반에는 나중에 오랫동안 이어진 음악 친구가 한 명 있긴 했다. 하지만, 그 해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그 해에 친했던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중1 시절에도 음악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나 보다.


아, 중1 때의 어느 날엔가 학교 방송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장면이 하나 기억에 떠오른다. 중1 때 같은 반 친구 중 국민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알았던 친구는 아니고, 중1의 같은 반에서 만나서 같은 국민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는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이미 학교 방송반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서 방송실에 몇 번 가보았다. 마이크 하나를 놓고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정도의 작은 방송실에서 나는 처음 보는 방송장비들에 꽤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살짝, 아주 살짝,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담당 선생님에게 나를 추천했지만 한 학년에 두 명이 필요했던 방송반원은 이미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방송반원을 뽑을 생각이 없단다. 그래서 그 작은 시도는 무산되었다.


음... 그럼, 중2 시절의 교실에서는?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기억난다. 교실의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였다. 사실 이 친구는 같은 반 친구이니 이름만 겨우 알고 교실에서도 거의 말을 섞지 않던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와 나는 소위 '노는 물'이 달랐다. 그 당시의 나는 책 읽기에 많이 빠져 있었다. 국민학교 들어오기 전부터 즐기던 만화를 넘어서 무협지를 거의 탐닉 수준으로 찾아대던 시기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하교하면서 자주 집으로 걸어오곤 했다. 걸어오는 길의 중간쯤에 만화방이 몇 군데 있었다. 그 만화방들을 자주 들러 무협지를 빌려보곤 했다. 학교 성적은 상위권에 들어 있던 정도였지만 크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 몇 명과 고만고만하게 학교 생활을 하던 지극히 평범한 중딩이었다.


내 뒷자리에 있던 그 친구는 학교 성적을 비롯한 다른 학교생활 면에서 나와는 조금 다른 세계에 있는 친구였다. 성적은 하위권에 있었던 것 같고, 친구들이랑 좀 더 과감하게 '놀러' 다니는 그런 부류, 말하자면 그 당시 용어로 좀 '노는' 친구였다. 그렇다고 일진은 아니고, 그 부류를 동경하는 고만고만한 부류의 친구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기억에 간신히 남을 정도였을 만큼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가 내 음악 듣기의 시작점에 있게 된 것은 의외로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좀 '노는' 아이들의 필수 잡기 중 하나는 모여서 춤추고 노는 것이었다. 어쩌면 몰래몰래 댄스클럽 같은 곳에도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의 춤추기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잡기 하나가 더 있다면 그건 팝송 듣기였다. 그 당시에는 듣고 싶은 음악을 모아서 테이프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자기 혼자서 방송을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카세트 레코더로 녹음을 해서 듣는 방식도 있지만, 좀 더 세련된 방식은 레코드점에 한 시간 분량의 음악을 선곡해 목록을 주면 LP로 일일이 녹음을 해서 한 시간짜리 카세트테이프로 컴필레이션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이 친구에게도 그런 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교실에서 그 친구의 책상 위에 놓인 댄스음악 테이프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춤' 같은 잡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상하게도 그 테이프에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이 순간이 내게 뭔가를 새로 인식하게 된 운명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 그 카세트테이프 하나가 내 음악 듣기의 시발점이었어!

레코드점, 특히 녹음을 해주던 레코드점은 '녹음방'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을 했는데, 하여간 그 녹음방에서는 카세트테이프 녹음을 의뢰하면 카세트테이프의 겉면에 노래 제목을 손으로 적어 주었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신기하게 구경을 하면서 겉면에 적혀있는 노래 제목들을 살펴보았다. 그 시절 방송에서 가끔 나오기도 했지만, '날 보러 와요'(1980)라는 제목으로 번안을 해서 방미가 불렀던 One Way Ticket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한 곡, 그 시절에 히트를 치고 있던 Dooleys의 Wanted도 있었다. 그 시절에 인기가 있었던 곡들은 대개 이런 곡들이었다.





1. One Way Ticket - Euruption (1979)

그 카세트테이프에 실려있던 곡이 1979년 발매된 Eruption의 버전이었는지, 1959년에 발매된 Neil Sedaka의 원곡 버전이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이 노래를 번안한 '날 보러 와요'란 곡을 가수 '방미'가 그 해에 불러서 방송을 타기도 했었다. 가수 '방미'는 개그맨 공채로 방송활동을 시작해서 가수로 전향해서 제법 활동하다가 1993년에 미국으로 가서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된 걸로 알려졌다. 하여튼 one Way Ticket은 그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었던 유명 팝송 중의 하나였다.


방미의 '날 보러 와요' (1980)



2. Wanted - The Dooleys (1979)

그 당시의 우리나라 TV에는 외국가수들이 등장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한 가족으로 구성된 패밀리 그룹 둘리스가 KBS의 초청으로 1억 원의 개런티를 받고 우리나라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것이 1981년 2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이었다.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공연은 약 2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고 레이저 조명쇼가 펼쳐지는 공연 무대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중딩이었던 우리들에게는 영어 원문을 놓고도 도저히 청음도, 발음도 따라가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귀에 들리는 대로 한글로 적은 이 노래의 가사를 외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우스웠던 적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으로 조혜련이 일명 '아나까나송'으로 웃음을 준 곡이기도 하다.


(링크된 페이지에서는 재생이 안 되는 영상입니다. 화면 내의 'Watch on YouTube'를 클릭하면 유튜브로 연결이 됩니다.)



3. Call Me - Blondie (1980)

New York에서 펑크음악을 하던 Blondie는 보컬리스트 Deborah Harry가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던 밴드였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American Gigolo에 삽입이 되었던 곡인데, 미국에서는 이 영화도 인기를 끌었다. 후에 이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내용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은 영화이다.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서 6주간 1위를 하는 대히트를 했다. 그들에게는 이 곡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했던 히트곡들이 몇 곡 있어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가끔 방송에서도 따라 부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조은옥과 은날개라는 여성 3인조 밴드가 부르던 'One Way Or Another'이다. 팝송 컴필레이션 곡에 자주 실리던 'Dreaming'이나 'Heart Of Glass' 같은 곡들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음악 장비 수준으로는 비슷하게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은 곡이었다.




4. Dschinghis Khan - Dschinghis Khan Group (1979)

우리나라에서도 참 인기가 많았던 곡이다. 독일 그룹인 Dschinghis Khan은 우리나라에 알려진 히트곡이 많다. 그들의 대표곡인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조경수, 나미, 가람과 뫼 등 여러 가수들이 각기 다른 가사로 번안을 해서 발표를 했는데, 조경수의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다. 국내가요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명목과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를 침략한 칭기즈칸을 너무 찬양한다는 명목이지만, 후자가 더 실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에 몽고는 공산국가 이기도 했다. 원곡의 가사 2절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대로 번역하기에는 좀 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학교 시절에 체전 같은 대규모 행사의 매스게임에 전교생이 동원이 되기도 했던 시절인데, 이 매스게임에 그들의 노래가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1979년 유로비전 송콘테스트에 출전해서 공연하는 영상



5. Rivers of Babylon - Boney M (1980)

Boney M은 독일의 레게 댄스 팝 그룹이다. 요즘은 영화 '서니'때문에 'Sunny'가 더 유명해졌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했던 그들의 곡은 바로 이 곡이다. Boney M은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중딩 시절의 나도 그들의 컴필레이션 테이프 하나를 사서 스물 여 개에 가까운 곡들을 즐겨 듣곤 했다. 이 곡은 가사가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흥겹게 듣는 노래 분위기에는 조금 의외로 느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6. Funky Town - Lipps, Inc. (1980)

잘 만들어진, 사실은 레코딩이 잘 된 댄스곡이다. 그래서 라이브 버전에서는 레코딩 버전과 비슷하게 노래하기도 힘든 곡이다. 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감상용 댄스음악의 역할을 하는 곡인데, 그 당시의 중딩들에게도 꽤 유명세를 탔던 곡이다. 팝송을 즐겨 듣지 않던 주위의 친구들도 웬만하면 이 노래는 알았던 것 같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Blodie의 'Call Me'가 6주간 1위를 차지한 데 이어서 4주간이나 1위를 차지했던 곡이다. 팀의 이름인 'Lipps, Inc.'는 '립싱크'를 의미한다.




7. Sun of Jamaica - Goombay Dance Band (1981)

Goombay Dance Band는 Boney M과 함께 서독의 양대 레게 댄스 팝 그룹이다. 독일 출신의 리더인 올리버 벤트가 아내의 고향인 자메이카에 가서 레게 뮤직에 빠지게 되고 그 음악을 팝으로 접목시켰다. 자메이카에서 독일로 돌아온 후에 남성 1명, 여성 2명을 추가해서 혼성 그룹을 구성해서 활동을 시작해 데뷔곡을 발표한 것이 이 노래이다. 자메이카 해변의 풍경이 그려지는 듯한 쉬운 가사로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세를 탔던 곡이다. 이들에게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곡들이 제법 있다.




8. Hot Stuff - Donna Summer (1979)

'디스코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Donna Summer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이 시기 우리나라 댄스음악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의 인지도가 워낙 강해서 그의 다른 곡들과는 꽤 인기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후에도 꽤 좋은 곡들이 많이 이어졌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디스코의 열풍을 타고 가장 성공한 여가수로 평가를 받는다.




9. Fame - Irene Cara (1980)

같은 해에 나온 뮤지컬 영화 'Fame'의 주제곡이다. 영화 'Fame'은 뉴욕의 예술전문학교가 무대인데, 스타를 지망하면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시련과 성공을 그리고 있다. 이후에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내일은 스타'라는 제목으로 방영이 되었다. 뮤지컬로도 공연이 되었고 2009년에는 뮤지컬 영화도 만들어졌다. 2011년에 아이유가 출연했던 KBS 드라마 '드림하이'가 아이돌 지망생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여튼... 아이린 카라는 이 영화에서 연기자 지망생 코코 에르난데스 역할을 맡았고, 주제곡부터 대부분의 노래를 불러서 거의 주인공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 곡은 아카데미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았지만 빌보트 차트에서 1위는 하지 못했다. 도입부부터 전개되는 리듬이 박진감 있고, 기타 리프가 좋아서 자주 즐겨 듣는 곡이기도 하지만, 이후에 아이린 카라는 1983년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가 'Flashdance... What A Feeling'을 공동작사에 노래까지 직접 불러 198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상과 2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10. I Was Made For Dancin' - Leif Garrett (1978)

1969년에 Cliff Richard가 내한공연을 한 이후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내한공연은 1980년의 Leif Garrett 내한 공연이었을 정도로 아이돌의 대명사로 인기를 얻었다. 아역배우로 출발을 해서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디스코 열풍에 편승한 경쾌한 노래들 그리고 비치보이스의 서프뮤직 히트곡들을 리메이커 한 곡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팝송 열풍의 한 축을 그은 히트곡이기도 하다.




11. Y.M.C.A. - Village People (1978)

여러 가지 직업의 코스튬이 상징이었던 Village People의 가장 유명했던 히트곡이다. 경찰, 건설노동자, 인디언, 폭주족, 군인, 카우보이 등 6명의 멤버로 구성된 댄스 그룹이어서 그들의 히트곡은 모두 빠르고 경쾌한 곡들이다. 이 곡 외에도 In The Navy, You Can Stop The Music, Go West, Macho Man 등이 우리나라에서 제법 알려진 곡들이다. Go West는 펫숍보이즈가 리메이커 해서 이후에도 계속 방송을 탔다. Y.M.C.A. 는 김수로가 대학 시절에 개발한 꼭짓점댄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서 변함없는 유명세를 누렸다.


김수로는 대학 시절에 개발한 꼭짓점댄스의 배경음악으로 Y.M.C.A. 를 사용했고 2006년에 방송에서 이 댄스를 대중화시켰다.




12. Yes Sir, I Can Boogie - Baccara (1977)

Baccara는 스페인 출신의 플라멩코 댄서였던 두 여성으로 구성된 여성 듀엣이다. 카나리아 제도의 푸에르테벤투라섬에서 플라멩코를 추면서 스페인 전통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RCA 레코드의 독일 지사의 매니저에게 발탁이 되면서 듀엣을 결성했고, 이 노래는 유럽 차트를 휩쓸다시피 하면서 1,600만 장의 레코드를 판매했지만,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이 노래가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고, 그다음 순위의 히트곡은 Sorry, I'm A Lady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곡만 유명세를 탔다. Baccara라는 이름이 요즘은 도박 게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Black Ros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스페인 여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룹명을 지었다.




13. Sexy Music - The Nolans (1980)

Nolans는 Nolan 자매들로 구성된 가족 그룹이다. 이들의 부모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더블린에서 가수 활동을 하다가 만나서 슬하에 남 2명, 여 6명으로 구성된 8 남매를 두었다. 초기에는 싱잉 패밀리로 활동하다가 자매 중 5명이 The Nolans로 데뷔를 했다. 본격적인 활동기에는 4명의 멤버가 활동을 했는데, 1981년 동경국제가요제에서 이 노래가 대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에는 우리나라로 내한공연을 오기도 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강렬하고 독특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들의 곡 중에는 비슷한 느낌으로 경쾌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많이 있다.




14. Hello, Mr Monkey - Arabesque (1978)

독일의 3인조 여성 댄스 그룹인 Arabesque도 우리나라에서는 꽤 인기를 끌었던 이들이다. 이들은 1975년 독일에서 결성되어서 77년에 이 곡을 싱글로 발표하고, 이듬해인 78년에 데뷔앨범을 냈다. 우리나라에 내한공연을 오기도 했었는데, 이때는 초기 멤버는 Michaela만 남아 있고, 두 명의 새로운 멤버 Sandra, Jasmin으로 교체된 상태여서 우리나라에는 이 멤버로 알려져 있다. 음반에 수록된 이 곡의 보컬은 초기 멤버 3명의 목소리다. 이후에도 우리나라에는 Midnight Dancer나 Friday Night 등 히트곡을 몇 곡 더 남겼다.




15. Tragedy - Bee Gees (1979)

호주의 3인조 밴드인 Bee Gees는 맏형인 Barry Gibb과 함께 쌍둥이 형제 Robin Gibb, Maurice Gibb 등 3명의 형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첫 명칭인 BG's는 Brothers Gibb에서 따왔는데 이후에 Bee Gees로 이름을 바꾸고 1966년에 데뷔했다. 초기에도 Massachusettes, Holiday, First of May 같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히트곡을 냈지만, 1977년 영화 Saturday Night Fever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많은 히트곡을 수록해서 2,800만 장이 팔리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1979년에 발표한 Tragedy는 빌보드 차트 2주 1위를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2003년에 막내인 Maurice가 사망하면서 해체를 했고, 2012년엔 Robin도 결장암으로 사망해서 현재는 Barry Gibb만 남겨진 상태이다. 요들이나 카운터테너가 주로 사용하는 팔세토(falsetto)라고 부르는 가성이 그들 노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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