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의 흑역사들

ABBA와 Air Supply의 목소리도 헷갈렸던 시절

by 꿈싹지기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느끼는 지란지교에 대한 아쉬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아침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은데, 때론 적막하기도 하다. 참 심심하긴 하구나...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 내겐 지란지교가 하나도 없구나 싶은 생각에 허전함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옛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들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내게도 참 많은 친구들이 스쳐 지나갔구나 싶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어렸던 그 시절의 때때로 닥쳐온 성장기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서로의 길을 가는 식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던 것 같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늘 같이 놀던 동네 친구가 있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국민학교 입학을 대명동에 있는 남도국민학교로 했다. 1학년을 다니던 중에 그때까지 살고 있던 대명동 미군부대 근처의 광덕시장에서 남산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명덕국민학교로 전학을 했다. 이사와 전학 사이에는 며칠인지 기억도 없지만,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남산동의 새로 이사 간 집에서 대명동의 남도국민학교로 등하교를 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사실 국민학교 1학년 짜리가 버스를 타고 혼자서 등하교를 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하교를 하면서 갑자기 비가 왔던 날이 한번 있었다.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던 기억이 간신히 남아 있는 것은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날 우산도 없이 비를 쫄딱 맞으면서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던 적이 있는데, 그 외에는 기억 속에 남겨진 것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며칠 정도 그렇게 다녔던 정도가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명덕국민학교로 전학을 하고 나서도 1학년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다.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은 거의 친구들과 지내던 기억 중심으로만 남아 있으니 교실에서의 장면도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는 그리 친했던 친구는 하나도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부끄러움 때문에 했던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의 무단결석


명덕국민학교에서 1학년을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딱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나의 흑역사 중의 하나이다. 국민학교에 들어와서 첫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집안의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 해에 어머니는 소풍 가방 대신에 책가방에 몇 가지 과자를 넣어주면서 가라고 했다. 어린 맘에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인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소풍은 혼자서 땡땡이를 쳤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는 소풍을 안 가고 결석을 한 것에 죄책감 내지는 무서움이 들어서 학교를 가는 척하고 옆으로 새기 시작했다. 학교를 몰래 안 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선생님의 얼굴이 더 무섭게 느껴져서 도저히 학교에 갈 수가 없었고 무단결석의 날수는 점점 더 길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결국 나의 무단결석을 알게 되었고,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누나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학교로 등교하게 되었다. 일곱 살 터울이었던 누나는 중학생이었는데 그날은 누나가 학교를 쉬는 날이었는지 나를 학교로 데려다주는 길에 누나 친구 한 명도 함께 동행을 했다. 그렇게, 세 명이서 함께 학교로 가는 길에 누나 친구가 내게 물었다.

'학교는 왜 결석했는데?'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불쑥 튀어나온 변명이 이것이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수업 중인 교실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난 누나는 선생님과 무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나는 선생님 뒤를 따라서 교실로 들어갔고,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마디 불쑥하고서 수업을 이어갔다.

'우리 반에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가 있다...'


그렇게 나의 오랜 무단결석은 끝이 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에 놀러 온 그 누나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 누나는 대학생이었을 시절인데,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공부하기 싫다더니, 이젠 안 그런 모양이네. 공부도 별로 안 한다는데, 성적은 꽤 잘 나온다면서?'



공부가 뭐 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성적은 좋았던 시절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는 담임선생님의 얼굴도, 이름도 모두 기억이 난다. 2학년 시절의 어느 날엔가 시험을 치고 난 후에 성적이 나오고 담임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OO이,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전교 1등도 하겠다. 시험 성적이 꽤 잘 나왔네...'


(아, 근데요, 선생님... 제가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뭔지를 몰라요. 그냥 시험을 치라니까 친 거고, 성적이 잘 나오면 그냥 잘 나온 것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라요...^^;;)


그랬었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그냥 시험을 치라면 치고, 수업을 하면 그냥 멍하니 듣던 그런 시절이었다.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가는 날이 많아서 학교에 가서야 숙제를 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쉬는 시간에 열심히 숙제를 하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선생님이 들고 다니던 커다란 매로 손바닥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벌청소를 하기도 했다. 성적이 좋다는 것이 칭찬인 줄은 알았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그 기억만큼이나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숙제를 안 해가서 여러 가지 벌을 받은 기억들이었다.


4학년 때에 또 전학을 갔다. 이번엔 남산동의 계성고등학교 담장 뒤편에 붙은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그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성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새로운 풍경을 접했다. 이 학교에서는 매달 시험을 쳐서 성적이 좋으면 그때마다 학력우수상과 진보상을 주었다. 그런 상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전학을 가서 얼마 되지 않아 처음으로 상장을 탔다. 그 뒤로도 수시로 상을 타고 학년말에는 우등상을 타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근데, 그 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이가 지긋한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집안이 부유하면서 성적도 좋은 아이 몇 명을 편애했다. 우리에게 보란 듯이 수시로 그 아이들을 교탁 옆의 선생님 자리로 살짝 불러서 책상 서랍에서 문제집을 한 권씩 꺼내서 쥐어주곤 했다. 처음에는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 격려를 하는 것인가 추측을 하면서 어쩌면 내게도... 기회가 주어질까? 내심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골목에 살고 있으면서 그 아이들에게 따로 과외수업을 해주고 있었다. 근처에 살던 같은 반 친구와 그 집 옆을 지나는데 그 아이가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과외라니...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선생님의 문제집이 내게도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내 어린 마음에도...


그 후에도 그 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가끔 있었다. 내가 전학 온 이후로 우리 반에는 두 명의 아이가 더 전학을 왔다. 그 아이들은 모두 시골에서 이사를 온 친구들이었는데,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전학 온 그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조회를 하면서 학급 평균이 떨어졌다면서 아이들에게 꾸지람을 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녀석들이 학급 평균을 다 깎아 먹고 있어. oo이 하나만 빼고 말이야...'


물론 oo이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 다른 두 아이들의 얼굴을 슬쩍 봤다. 선생님의 공개적인 꾸지람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고... 어린 마음에도 선생님이 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매정한 선생님, 아직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한다. 선생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셨어야죠...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좋은 면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선생님이셨다. 그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 중에서 가장 좋은 분이었다. 그 학교에서는 분기별로 반장을 뽑았는데 마지막 분기에 내가 반장이 되었다. 원래 가난한 집 아이는 반장이 되기 힘든데, 선생님은 육성회비도 제때에 못 내던 내게 반장을 맡기는 파격을 보였다. 내가 반장으로서 뭘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내게 반장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그 여파인지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첫 분기에 덜컥 내게 반장을 맡겼다. 아이고…

덕분에 나의 흑역사 중의 하나가 그때 만들어졌다. 학급회의도 제대로 진행 못하고 전교어린이회에서 발언 실수도 했다. 하여튼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 선생님도 내게 반장을 맡기고 후회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소문에도 그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제법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정도였고 그 당시에도 반장의 부모는 학급에 제법 돈을 썼어야 했는데 우리 집은 그럴 형편이 못되니 말이다.



친했던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는지...


6학년 때에는 늘 함께 붙어 다니던 학급 친구가 있긴 했다. 그때는 꽤 친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헤어져 인연이 끊겼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의 동생을 회사 후배로 만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를 모르고 있었다. 같은 부서에서 차담을 나누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이름이 ‘만희’였던 그 후배와 이름에 대한 농담을 하다가 형제의 이름이 숫자로 되어 있고 형은 더 큰 숫자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농담처럼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형은 억희라도 되겠네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형 이름이 억희인데…'

'국민학교 때 친했던 내 친구 이름도 억희인데, 어, 혹시 국민학교는 어디를 나왔수?'

'대성국민학교요.'

'어, 그럼 혹시 살던 동네가 남산동?'

'어, 맞는데요'

'아, 그 억희가 내 친구 억희인 모양이네. 헐… 이런 인연이…'

'예전에 그 집에 놀러 가서 저녁도 먹고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옆에 있던 동생이?'

'아마 맞을 겁니다. 동생은 나 밖에 없으니까요... ㅎㅎ'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는 지금 하나도 남아 있질 않다. 아마도 내가 학교를 3번 정도 옮긴 탓에 동네 친구들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인연이 오래가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학년을 바꾸면서 늘 그 해를 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이후의 친구들은 모두 음악친구들이었다


중학교 시절은 어떤가... 중학교 1학년 때에 만난 YH란 친구는 오랫동안을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취미가 비슷한 이유로 자주 만나서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나중에는 음악 모임도 같이 하고 그랬었다. 대학에서 같은 학교, 같은 전공으로 다시 만났다. 다만 나와 수업을 듣는 반은 달라서 모이면 건축 이야기도 하고 그랬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뻔질나게 그 친구와 만났고, 그 이후에 그 친구가 영국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서 유학 가기 전까지는 계속 봤던 것 같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도 이 친구가 공부하던 런던이었고, 숙박도 이 친구의 자취방에서였다.


중1 시절에 박통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서 난리가 났던 그날 아침에도 이 친구와 등굣길에서 만난 기억이 있다. 아침에 라디오 뉴스에서 대통령 유고라고 하는데,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유고’가 뭐고 하면서 누나와 대화를 나눴었고,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사실을 듣고 등교를 했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그때는 그리 친하지는 않았고 그냥 고만고만하게 알고 지내던 YH와 교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나란히 걸어가다가 YH가 저 멀리 정면에 보이는 학교 본관의 국기게양대에 조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야,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잘못 걸었네...'

'아, 저건 조기인 모양이다. 오늘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방송에 난리 났던데...'

'그래?'

'그렇단다. 신문에도 크게 나왔고...'

그 친구는 그걸 모르고 등교를 하던 길이었다. 그런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 때에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던 친구가 하나 있어서 통학을 같이 하면서 친해졌다. 서로 집에도 놀러 가고 그랬었는데, 이 친구는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성격도 굉장히 조용한 편이어서 내가 참 편하게 생각했던 친구였다. 참 착한 친구였는데 가까이 있다는 것 외에는 크게 성향이 비슷한 점이 별로 없어서 학년이 바뀌면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친구는 성적도 고만고만해서 그때는 상위권을 유지하던 나와는 시험공부를 같이 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날도 이 친구와 하교를 함께 하다가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카세트테이프 녹음을 맡기기 위해 녹음방에 함께 들렀다. 이제 막 팝송을 듣기 시작한 나는 팝송이 가득 실린 노래책 한 권을 사서 그걸 교재 삼아서 노래를 하나하나 알아가던 중이었다. 팝송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FM방송에서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팝송책의 노래 제목들을 수시로 보면서 노래 제목을 익히고 그 노래가 방송이 되면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러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식으로 음악을 모아서 듣곤 했다. 그러다가 방송에도 잘 안 나오던 좋은 노래들이 있으면 모아서 녹음방에 녹음을 의뢰하는 방법을 병행하곤 했다. 물론 녹음방에 카세트테이프를 맡기는 데에는 비용이 조금 더 드니 자주 이용할 수는 없었다.



All Out Of Love를 알게 되던 날


그날도 1시간 분량의 노래 제목들을 적은 목록을 주인에게 드리고 레코드장에 꽂힌 음반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의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멜로디도 익숙했다.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노래 제목은 잘 모르고 있던 곡이었는데...

'야, 이건 ABBA 노래네'

'그래?'

'야, 이 목소리, 완전히 ABBA의 그 여성 멤버의 목소리와 똑같고, 멜로디도 그런 걸 보니 ABBA의 노래네'


혼자서 아는 척을 하고서 슬쩍 레코드점 주인이 얹어놓은 앨범 표지를 봤다. 앗, 아니네...

Air Supply였다.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노래가 All Out Of Love였구나...

팝송책에서 제목은 엄청 자주 봤는데, 이게 그 노래였구나.

근데... Air Supply에는 여성 멤버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여성의 목소리는 뭐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고, 모르면서 그 친구에게 아는 척을 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걸 레코드점 주인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없이 레코드점을 나왔다.


집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여성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여성이 아니고 남성의 목소리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뒤에 라디오에서 여러 번 그 노래를 듣고서야 그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왜 그 목소리를 여성의 목소리라고 착각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결국 ABBA의 컴필레이션 테이프 하나에 의존해 ABBA의 노래들에 친숙했지만, 그때까지의 나는 ABBA의 음악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ABBA와 Air Supply의 음악을 전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내겐 ABBA와 Air Supply의 노래들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같은 시기에 나온 아래의 두 곡을 비교해 보면 지금도 아주 약간, 약간은 오버랩이 되는 이미지가 있긴 하다.


사실 Air Supply의 고음역 미성을 담당하는 보컬리스트인 Russell Hitchcock은 중성적인 목소리로 유명하다. 아직 음악을 듣는 귀가 완전히 트이지 않았던 초기의 나에겐 당연히 여성의 목소리로 들릴 법한 목소리이다. 아직도 그런 점 때문에 그의 목소리를 즐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보컬리스트인 Graham Russell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ABBA와 착각을 하게 만든 면도 있다. Russell Hitchcock이 보컬을 더하는 부분에서 ABBA의 Agnetha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주는 선명한 이미지를 아직도 연상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All Out Of Love는 아직도 가끔 챙겨 듣는데, 지금은 전주에 반짝이는 그들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많이 집중해서 듣는다. 그 부분에 심취해 있다가 음색이 다른 두 명의 보컬이 어우러지는 흐름에 맡기다 보면 짧은 이 노래를 금방 끝이 난다. 좋은 노래를 오래 듣다 보면 어느새 시들해지는 순간도 오지만 특별히 매력적인 연주가 음색이 있을 때는 또다시 수명이 연장된다. 그런 점들이 노래를 더 빛내고 오래 기억에 남겨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노래도 그런 유형 중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도 ABBA의 노래들과 닮은 점이 있긴 하다.






Air Supply - All Out Of Love (Official Video 1980)


Air Supply - All Out Of Love (Digitally Remastered 1999)



ABBA - The Winner Takes It All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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