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을 공부하기 위한 교과서 같았던 잡지를 읽기 시작하다
음악과 내가 연결되기 시작한 시점을 찾는 기억 더듬기를 하면서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내가 단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기억의 장면들이 연결한 대략 1년 정도의 시기 속에서 기억 속의 장면과 실제 시기가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고2 시절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서 입주를 했다. 그 이전까지는 계속 셋방을 전전했기에 이사가 잦았다. 지금 찬찬히 내가 다닌 학교와 살았던 동네 그리고 친구들과의 기억까지, 이 세 가지를 연결시켜서 정리를 해보니 한 해 정도는 앞뒤로 기억이 섞여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헝클어진 기억의 실타래를 하나씩 그 끝을 따라서 풀어가면서 어떤 부분은 대충이라도 앞뒤 순서가 정리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기억도 있다.
팝송을 처음 듣던 순간을 생각해 보면서 그 시기에 내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텍스트북은 '월간팝송'이었다. 그 잡지를 언제부터 샀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어 있는 것은 남산동의 어느 서점에서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음악책들 사이에 잘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월간팝송'들을 꺼내보니 그 기억도 실제와는 맞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내가 가장 먼저 샀던 달의 '월간팝송'은 찾아냈다. 그걸 기억하는 데에도 기억의 퍼즐 맞추기가 필요했다. 나의 첫 '월간팝송'은 서점에서 신간으로 샀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이후로도 간간이 신간으로 그 잡지를 몇 권 샀었다. 그러다가 헌책을 사러 가끔 가던 남문시장의 헌책방에서 과월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싼값에 과월호도 한 권씩 구입을 했다. 그 순서는 확실하게 기억을 하고 있으니 어느 달의 것이 내가 처음으로 신간으로 구입했던 '월간팝송'이었는지만 찾으면 된다.
그건 의외로 쉬웠다. 책의 표지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81년 11월호였다. 아, 그런데 문제는, 그때는 내가 대명동에서 살고 있던 시절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서점에서 사던 장면의 기억과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내 기억이 헝클어져 있었던 부분이다. 그렇다면, 남산동의 서점에서 샀던 팝송책을 무엇일까... 월간팝송을 읽던 기억 이전에 팝송을 처음 듣던 즈음에 나는 두꺼운 팝송책을 한 권 샀었다. 그 책 안에 있는 노래들을 훑어보면서 노래 제목을 익히고 라디오에서 아는 제목이 나오면 녹음을 해서 듣고 하던 것까지는 기억이 어느 정도 맞다. 그러면 내가 남산동에서 산 신간 팝송책은 '월간팝송'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샀던 그 팝송책이었으리라. 그러면 퍼즐이 대강 맞춰진다. 하지만, '월간팝송'을 산 곳은 남산동이 아니라 대명동에서였는데,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대략 난감의 순간...
'월간팝송'을 처음 구입한 시기와 장소는 기억 속에서 약간 헝클어져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 잡지가 내겐 팝송의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노래책 외에는 내가 접할 수 있는 음악 책자는 없었고, 나머지는 FM방송의 팝송 프로그램에서 DJ들이 들려주던 내용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서점에서 '월간팝송'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 펼쳐본 그 음악잡지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펼쳐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지식보다는 더 깊고,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두려움도 살짝 느꼈지만, 일단 한 권을 샀다. 용돈이 넉넉지 않았던 내게 잡지값 1,500원은 그 당시로서는 과감한 투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매달 살 수는 없었으리라. 주머니 사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한 달에 한 권씩 그 책의 내용을 소화해 내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한 권을 사서 어느 정도 내용이 눈에 익으면 그때쯤 그 달의 신간을 다시 샀다. 그렇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음악들은 다 들어보기가 힘들었다. 그냥 라디오에서 혹은 친구들을 통해서 음악 한 곡씩을 더 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평상시에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팝송들은 이전에 샀던 팝송책 한 권으로도 그 시기에 유명했던 곡들은 충분히 알아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월간팝송을 보면서 음악잡지사 기자에 대한 동경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월간팝송의 편집장은 뒤에 라디오 DJ로 활동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을 많이 접하게 해 주었던 전영혁이었다. 와, 사실 전영혁은 팝음악을 좀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픈 이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음악들을 접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우리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참으로 위대한 음악잡지였다. 팝송으로 음악을 갓 듣기 시작한 내게 대중음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수준 높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내가 찾아들어야 할 음악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때로는 짧은 전기 수준의 아티스트 정보를 특집 형식으로 제공해 주거나 혹은 매달 매니아들의 추천곡들을 통해서 음악을 들어가는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월간팝송은 위대했다. 그 시절, 중딩에서 고딩으로 넘어가던 나에게는...
'월간팝송'의 역사는 1971년부터 시작되었다. 1987년 2월을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가장 품격 높은 음악잡지였다. 내가 처음 신간으로 구입했던 81년 11월의 월간팝송은 창간 10주년 기념호였다. 옅은 파란색을 배경으로 한 표지에는 비지스가 포즈를 잡고 있었다. 그 칼러도 나를 자극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Private Eyes - Daryl Hall & John Oates
Blue Eyed Soul을 하던 백인 듀오인 Hall & Oates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 노래이다. 그 이후로 그들의 음악을 많이도 들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그 당시에 간간히 TV에 특집으로 방송되던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이 곡의 독특한 리듬감에 압도되어 그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진정한 매력은 또 다른 곡들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Paul Young이 불러서 히트를 시켰던 Every Time You Go Away의 원작자이기도 한데, 이 곡의 Apollo 극장 라이브 버전은 소울 감각이 진하게 느껴져 지금도 감상용을 즐겨 듣는 곡이기도 하다.
Physical - Olivia Newton-John
그 당시 중딩들에겐 여신이었다. 이 곡이 나오던 시절 이전에 벌써 청소년들의 책받침에 자주 등장하던 그녀의 브로마이드들과 이전의 히트곡들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가수였다. 그 당시 가장 많이 들리던 노래는 Let Me Be There이었고, 이 곡이 실린 앨범은 그 전의 음악과 다른 새로운 감각을 담고 있어서 최신곡의 느낌을 한껏 풍겨주었었다. 그녀의 뮤직비디오도 희귀했던 TV의 음악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