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대학 친구, K의 메세지가 단톡방에 떴다. K는 올 봄에 암 진단을 받았는데 좀 더 낫고 연락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기력있을 때 연락한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K는 혹시 좋아지면 그 땐 얼굴로 만나자는 말도 덧붙였다. 단톡방에 있는 많은 친구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깜짝 놀라 K를 위로하고 회복을 기원하는 댓글을 올려 댔다. 나 역시 위로와 치유의 말을 해주었지만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하며 많은 생각을 한 후에야 해줄 수 있었다.
나는 잠시 후 다른 친구로부터 K가 항암치료를 하다가 잘 안되었고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병원에서 퇴원한 상태인 것을 전해 들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친구들이 올린 글을 하나 하나 읽어 보았다. 이 글들을 통해 K는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댓글은 희망을 잃지 말고 잘 치료해서 또 보자는 내용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고 많은 친구들의 댓글은 자신의 성격 유형과 종교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심한 친구들은 - 그리 많지는 않음 - 얼마나 힘들겠냐며 공감의 마음을 표현했고 종교가 있는 친구들은 자신의 언어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담즙질의 친구들은 뭐가 좋다던데 해봐라, 요즘 의학이 발달되서 다 잘 치유될 것이다, 이겨낼 수 있다, 화이팅해라 등 이런 말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안되서 포기하고 집으로 퇴원을 했는데 이제 암은 만성화되어서 같이 사는 것이라고, 현대 의학이 많이 발전되어 있으니 꼭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방으로 치료했다는 사람이 있으니 그리 해보라고 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이겨 낼 수 있을거다, 잘 이겨내라 이런 말들이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서있는 사람을 밀어 넘어뜨리는 말이 아닐까? 운동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화이팅하라고 하면 힘이 날까? 하기야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에 암에 걸렸는데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을 하고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초기니까 다행이다, 의학이 발전되었으니 잘 치료될거다, 힘내라 등등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어느 하나도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뭐라고 말은 안해도 그냥 손잡고 눈물 한 방울 주르륵 흘리며 안스러워하는 사람의 침묵과 눈물이 더 위로가 되었다고 하는데 마음 속으로 크게 공감이 되었다.
슬픔에 빠져 있는 누군가를 정말로 위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잘못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 보아야 한다. 정확한 이해를 기초로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위로를 줄 수 있는지 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세심히 살피고 생각을 많이 한다 해도 사람의 마음과 정서 상태는 정확히 알기 어렵고 오해하기도 쉽다. 시인 김소연은 "마음가짐"에서 '이해'란 가장 잘 한 오해,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라고 했다. 누군가를 잘 이해했다고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오해일 수가 있고 반면에 오해를 했다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 때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경청의 중요성을 많이 얘기하지만 정말 경청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경청에는 사실 듣기, 의도 듣기, 감정 듣기의 세 종류가 있다. 사람들은 사실 듣기조차 힘들어 한다. 상대방이 얘기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해야 할 얘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쌓아 가는 사람은 상사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맥락적 의사 소통을 한다. 배경은 잘 알고 있다 치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표현보다는 맥락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암묵적 소통을 한다. 특히 회사에서 높은 분들의 지시는 구체적이고 정확하지가 않다. 임원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토론을 한다. 뭐 하라는 것이지요? 아닌 것 같은데요, ... . 이런 경우 최고 경영층의 속 뜻을 잘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 회의록을 쓸 때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최고 경영진의 의사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영진의 측근으로서 승진을 이어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스티븐 코비는 공감적 경청의 5단계를 무시하기, 듣는 척 하기, 선택적 듣기, 귀 기울여 듣기, 공감하며 듣기로 설명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 척 하기, 선택적 듣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여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인 귀 기울여 듣기를 넘어 공감하며 듣기 단계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의 내면 속에 들어가게 되어 진정한 위로와 격려, 동기 부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청은 사람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다. 좀 유치하지만 사물에 대한 경청도 가능하다. 내가 쓰는 물건, 키우고 있는 화초 등 주변의 존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고 돌아 보면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시인 나태주는 '풀꽃' 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사물이라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사물이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되면 닦아 주기도 하고 수선도 하며 잘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 개발은 엔지니어와 자동차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개발 엔지니어는 자동차가 내는 무언의 말을 잘 듣고 자동차가 원하는 개발이 무엇인지 알아채야 한다. 자동차는 진동과 소리, 동적 거동, 차체의 변형, 주요 부품의 파손, 오작동 등 여러 형태의 언어로 말을 한다. 자동차의 말을 경청할 때 사실 듣기에 그치면 좋은 차를 개발할 수 없다. 자동차의 감정까지 들을 수 있어야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을 잘 개선할 수 있다. 자동차의 감정은 운전자에게 쉽게 전이가 된다. 자동차가 불편하면 이상한 소음을 내고 이 소음을 듣는 순간 자동차의 불편함이 운전자에게 불쾌함으로 전이된다. 자동차 개발 엔지니어는 자동차가 하는 말을 잘 알아 듣는다.
한편 자동차 엔지니어는 사람이 하는 말도 잘 알아 듣는다. 자동차 개발을 하면서 복잡하고 긴 프로세스 상에서 여러 부문의 개발자들과 수도 없이 소통을 연습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개발자는 동료 개발자, 공장 작업자, 협력업체, 소비자 등 다양하고 이해 관계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형태의 직업군보다 자동차 개발 엔지니어는 소통을 잘 한다. 공감적 경청의 달인일 확률이 높다. 배우자를 찾는 젊은 청춘이 있다면 자동차 개발 엔지니어를 만나라. 그들은 당신의 감정까지 잘 듣는 일등 배우자 감이 될 것이다.
K는 단톡방에서 인사를 한 지 5일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픔을 함께 하며 좀 더 따스한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떠난 친구가 아쉽고 그립다. 마음이 아프지만 고통없는 곳에서 친구의 영혼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