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악한 인물이다. 그는 행인들을 잡아다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혀 보고 행인이 침대보다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다리와 머리를 잘라서 죽였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의 크기에 맞추려고 다리를 잡아 늘려 죽였다. 어떤 침대의 크기와 딱 맞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뿐 아니라 프로크루스테스는 악의를 가지고 키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 키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주었기 때문에 잡혀온 행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유래된 심리학 용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기의 기준과 생각에 맞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하는 아집과 횡포를 뜻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의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며 내 의견과 생각에 맞지 않으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 각 계층의 리더 중에는 자기만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들은 자기 침대가 완벽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잠을 자면 편안하고 안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으며 오직 상대방이 내 의견에 따라 주기를 바라며 강요한다. 소통과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 질 리가 없다.


필자는 현대차 R&D 분야에서 30여년 근무하던 동안 여러 명의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났었다. 그들의 침대는 모양과 크기가 참으로 다양했다. 업무를 지시했을 때 극도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상사가 있었고 보고서 자료에 오탈자가 있으면 작성자와 보고서 전체를 평가 절하하는 센터장, 책상의 정리정돈 상태와 복장의 단정함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임원도 생각난다. 자신이 낸 의견에 반론 제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 하는 리더와 말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리더도 만나 보았다.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매우 답답해하며 결론만 얘기하라고 했다. 오직 성과라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가지고 있는 리더는 성과는 우수했지만 그 리더의 밑에는 상처받고 시들어 가는 부하 직원이 꽤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프로크루스테스는 객관적으로 보면 실력은 없는데 자신을 과대 평가하여 능력 이상으로 업무를 맡아 오는 상사였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기 때문에 어려운 업무에 달려 들어 해결하려고 하며 성과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크다. 이와 같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지 편향을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이는 코넬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에 의해 발표된 실험 결과인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과잉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지며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모든 회사에서 자기 평가와 다면 평가를 한다. 이 결과를 자세히 살펴 보면 더닝 크루거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능력있고 겸손한 직원의 본인 평가 결과는 매우 소박하다. 큰 과장없이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데이타가 별로 없다. 본인 평가 결과보다는 동료 평가, 상사 평가 결과가 월등하다. 반면에 과잉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진 직원의 본인 평가 결과는 평균치보다 매우 높으며 과장되어 있다. 동료 평가와 상사 평가 결과와 비교했을 때 20% 이상의 차이를 보여준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것을 메타 인지라고 한다. 메타 인지 지능이 높은 사람의 본인 평가 점수는 대체적으로 평균 또는 평균 이하를 보여 준다.

메타 인지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안다. 잘 하는 분야의 일에 도전하여 커다란 성과를 얻어 낸다. 잘 하지 못하는 분야의 일에 대해서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자신을 비하하여 낮은 자존감을 소유하지 않으며 부족한 면을 채우려는 의욕과 학습 의지가 높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일을 맡길 때 본인 평가 결과가 낮은 사람을 먼저 후보로 살펴 본다. 실제로는 능력이 있는데 겸손하여 그런 평가를 한 직원이라면 그는 메타 인지 지능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사람은 나와 훌륭한 팀웍을 이루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후보일 확률이 매우 높다.

더닝 크루거 인지 편향을 가지고 있는 능력없는 리더는 과잉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인해 성과와 인정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부하 직원이 좋은 성과를 내주기 바란다. 방향 제시와 업무 방식 등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주고 부하 직원이 업무를 해내기를 바라며 업무를 재촉한다. 스스로는 권한 위임을 잘 하는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얄팍한 권한 위임이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오면 모든 공을 자기가 가져 가며, 자신이 부하 직원에게 권한 위임을 해주고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자신의 리더십 덕이라고 자랑한다. 그렇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부 부하 직원에게 돌린다. 내가 그렇게 하면 안될 거라고 했었다는, 하지도 않은 말을 부하 직원에게 너무나 뻔뻔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 겸손한 리더는 자신의 능력을 작게 여기며 팀을 이룬 부하 직원들과 협력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업무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훌륭한 팀이니까 어려운 업무를 잘 완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난관이 와도 우리에게는 헤쳐나갈 팀웍과 집단 역량이 있다, 이런 긍정적 메세지를 늘 공유한다.

초기의 예상이나 판단이 이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이끄는 현상을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겸손하고 능력있는 리더는 이러한 긍정적 자기 충족적 예언을 잘 한다. 부정적 자기 충족적 예언은 능력은 없으나 우월감과 자신감이 충만한 리더에게서 나온다. 업무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혹시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안될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내 이럴 줄 알았어'이다. 이러한 리더 밑에 있는 구성원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상사에 대한 불신이 생기며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된다. 놀라운 것은 위험한 상사로부터 피해를 본 부하직원들이 그를 닮아 간다는데 있다.

한편 프로크루스테스와 같은 리더는 감정 지능이 매우 낮다. 자기 인식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고,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다.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서 조언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자신의 침대 사이즈에 맞춰 주어야 한다. 그들은 부하 직원들이 힘들어 하는 상황을 전혀 눈치챌 수 없으며 리더십을 발휘할 때 구성원들의 정서까지 살피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감정 지능을 높일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으나 나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싶다. 첫번째 방법은 글을 써보는 것이다. 지인에게 쓰는 편지,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 감명깊게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 이런 것들은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자신을 돌아 보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SNS를 한다.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거나 멋진 장소를 방문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엇을 느꼈는지가 없다. 단지 내가 이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다녀 와서 행복하다는 메시지 만이 있다. 이런 SNS는 감정 지능에 도움이 안된다. 짧더라도 소감까지 사진에 덧붙여 올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 지능이 발달해 나갈 것이다. 두번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과 의중을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얘기를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이 느껴진다면 비판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상대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것이 훈련을 통해 습관으로 자리잡으면 우리의 감정 지능 또한 나의 커다란 장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본인의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는 것이다. 본인이 남의 의견을 받아 들이고 감정도 헤아리며 긍정적 메시지를 내려면 본인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본인의 스트레스 레벨이 낮고 건강 상태가 양호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고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성껏 살필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있는 기형적인 프로크루스테스들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프로크루스테스 같았던 사람이 긍정적 자기 충족적 예언을 하는 사람이 되고, 감정 지능이 발달하여 여행 중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여유있는 침대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세상이 될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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