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 안해요

직장인에게 가장 큰 기쁨은 승진이다. 열심히 일하며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승진을 하게 되면 연봉이 올라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며 더 높은 보직을 맡게 될 가능성이 올라 간다.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 것에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며 주위 사람들의 축하에 기쁨이 더해진다. 따라서 승진은 연봉과 권한과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써 개인적인 삶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진급을 희망하며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며 업무에 집중하여 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진급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대리급 이하 계층에서 과장급으로 진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유를 살펴 보면 승진함으로써 증가되는 책임이 너무 크고 근무 시간과 업무 강도가 늘어나는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승진함으로써 증가되는 연봉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는 가치에 비해 별로 매혹적이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비노조원인 과장급 직원들에 비해 정시 퇴근, 휴가 사용 등에 있어서 더 유리할 것이라 여긴다.


과거에는 성공이 곧 행복이었다. 진급하면서 지위가 상승되면 소득이 증가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공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승진과 함께 주어지는 높은 직급과 더 큰 권한을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였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는 부장, 임원까지 올라가는 것이 성공과 행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진급 거부 사태에 대해 생각해보면 행복의 공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 조금 부족해도 책임이 과하지 않고 삶의 여유가 있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라밸이 행복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특히 MZ 세대들의 생각은 더욱 그렇다. 승진이 더 이상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연구해 왔다. 행복론에는 한계 효용의 법칙이 있다. 특히 소득에 대해 잘 적용된다. 소득이 작을 때는 소득이 약간만 증가해도 크게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소득이 큰 상태에서는 체감 행복이 줄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돈보다 스트레스, 시간 등의 이슈가 더 중요해진다. 진급 거부 사태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소득이 상향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보상을 얻기 위해 쏟는 수고보다 보상이 크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보상에서 수고를 차감한 분량 만큼이다. 보상을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크면 행복하지 않다. 보상이 크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작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행복론 관점에서는 진급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하다. 또한 사람들은 작은 수고와 노력으로 큰 보상을 원한다. 건전한 조직 문화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진급 거부 사태에 대해 고민이 많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책임을 다해주는 직원이 줄어드는 것. 협업이 잘 안되며 팀웍 빌딩이 어려워지는 것. 팀장 등 관리직을 맡을 사람이 줄어 들고 실무자만 늘어나는 것. 보직을 맡길 만한 리더 육성이 어려워지는 것. 승진을 기본으로 한 기존 인사 시스템이 유용하지 않게 되는 것.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각 회사들은 여러 가지 해결책을 시행하고 있다. 회사들은 우선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역차별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과장급 직원의 연봉을 인상하여 직급간 연봉 차이가 확실히 나게 하고 있으며 연장 근무 제한, 연월차 휴가의 자유 사용 등을 통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한 신속한 의사 결정과 수평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직급을 축소하였다. 기존에는 신입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단계였는데 매니저-책임매니저의 2단계 직급 체계로 바꾸었다. 호칭도 ~매니저, ~책임매니저로 단일화하였다. 연구 조직인 경우에는 연구원-책임연구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책임매니저라도 레벨이 관리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같은 책임매니저이다.


직급 체계에 대해 필자는 특이한 케이스를 경험하였다. 박사 학위를 받고 선임연구원(과장급)으로 입사를 하였다. 몇 년 후에 진급을 해서 책임연구원(차장급)이 되었는데 회사는 직급체계를 정돈한다고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을 선임연구원으로 통합하였다. 책임급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기 몇 년, 수석연구원(부장급)이 되었는데 직급 체계를 연구원과 책임연구원으로 이원화 하였다. 진급을 했는데 다시 책임연구원이라니 승진 느낌이 줄어 들었다. 드디어 임원이 되었다. 이사대우! 3년 뒤에 대우 떼고 이사가 되고 다시 2년 뒤 상무가 되었다. 그런데 임원에 대한 체계가 또 바뀌었다. 이사대우, 이사, 상무를 모두 합쳐서 상무로 통합하였다. 참 이상하게도 내가 진급만 하면 직급체계가 바뀌었다. 그것도 3번 씩이나.


최근에는 진급 거부가 임원 진급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책임급 직원들이 임원으로 진급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임원으로 진급하게 되면 연봉이 크게 오르고 법인 카드 사용, 업무 권한 확대 등 보상이 크게 주어지지만 임원으로서의 부담감 또한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임원 진급을 회피하는 이유는 대리급 직원들의 진급 거부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임원은 쉽게 퇴직 당할 수 있다는 부분에 있다. 실제로 모든 회사들이 세대 교체라는 명분으로 임원들의 연령을 하향시키는 경향이 뚜렷하다. 삼성전자 등 IT, SW, 전자회사들의 임원 연령은 이미 충분히 낮아져 있지만 현대차 등 기계, 자동차 산업에서는 임원들의 연령이 꽤 높았던 편이다. 그러나 산업간 경계가 흐려지며 융합되는 시대에서는 굴뚝 산업의 임원들 연령도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어렵게 임원이 되었는데 2~3년 만에 퇴직을 통보받는 임원들이 매 년 나오고 있다. 정년이 되기 전 55~57세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는 임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책임급 직원들은 임원이 안돼도 좋다, 정년까지 책임으로 다닐래 라고 생각한다.


임원들의 행복에 대한 관점은 어떨까? 책임급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승진에 따른 보상이 크다 보니 기울여야 하는 노력과 수고를 좀 더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보상보다 스트레스와 수고가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세태에 비해 임원들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성과를 통한 인정을 더 중요시한다. 또한 임원은 책임 단계에서부터 후보군으로 관리되며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임원이 되는 사람들은 대개 도전적이며 스트레스에 내성이 강하고 책임질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다.


임원으로서의 회사 생활도 끝나고 완전 자유인이 되었을 때 행복론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더 이상 성과를 내서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니 행복 레벨이 갑자기 올라 갈까?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욕망을 줄이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는 아타락시아는 육체적 고통이 없고 정신적 불안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큰 욕심 안부리고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럼 몸 건강하고 큰 걱정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 행복의 최고봉일까?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다. 노년의 행복이 사회 건강의 척도가 될 것이다. 필자도 곧 초고령 사회 기준에 해당하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을 줄이고 평온한 삶이 주는 행복만을 추구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더 크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하버드대학교의 행복학 교수 탈 벤 샤하르는 말했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젊은이에게 우리는 쉽게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재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라고. 그러나 이 말은 시간이 많은 노년층에게 더 중요한 말이다. 즐거운 일을 찾으라. 또한 즐거움에 의미를 더하라. 의미가 없으면 성취감이 없다. 노년에게도 성취감이 매우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자기 효능감이 여전히 중요하다. 의미있는 일을 하며 도움을 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회사 퇴직 후 제 2 인생을 모색하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하며 달려 왔으니 이제는 삶의 자유함을 찾고 재미있는 것을 하며 보람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얻었다. 자동차 관련 공학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학 이론 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얻은 경험 지식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이론적 지식과 자동차 실무에 관한 지식을 듣고 배우는 제자들을 볼 때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내 삶의 의미를 찾는 또 다른 하나는 글쓰기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계속 써왔었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보면 재미가 있다. 나의 일기는 항상 그 날 있었던 일을 요약하고 느낌과 다짐으로 끝이 난다. 일기장에서 수도 없이 했던 많은 다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자동차의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끼고 배웠던 인사이트를 하나씩 글로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을 누가 보게 될 지 모르지만 우선은 내게 의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잘 안써지지만 글을 쓸 때 행복하다.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을 채워 나가는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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