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빙 그라운드

프루빙 그라운드(Proving Ground)는 화포의 사거리와 파괴력을 시험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군사 용어였는데, 제너럴 모터스(GM)가 1924년 미시간 밀포드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 시험장을 건설하면서 자동차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통상적으로 군사용어보다는 자동차 시험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모든 자동차 회사마다 고유의 PG를 이용하여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PG에는 자동차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다양한 노면이 있다. 범용로, 라이드 핸들링로(Ride & Handling), 모형로, 승차감로, 고속주행로, 원선회로, 수밀시험로, 벨지안로, 크로스컨츄리, ADAS 시험장, 수밀시험장 등 다양한 노면과 시험장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자동차의 주요 성능을 평가하는데 이용된다. 범용로는 100×1000m 정도의 일반 아스팔트 도로이다. 차량에 시동을 걸고 주행하며 가감속해 보고 스티어링 휠을 동작하여 방향 전환을 하는 등 차량의 일반적인 경험을 테스트할 수 있다. 더블 레인 체인지, 슬라롬, ESC시험 등 보다 전문적인 평가도 범용로에서 수행할 수 있다. R&H로는 직선 구간과 다양한 커브 구간이 잘 배분되어 있어 차량의 핸들링 성능을 평가할 수 있다. 고속주행로의 코너 구간은 노면이 기울어져 있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행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노면과 시험장은 시험 목적과 용도에 맞게 건설되어 있어서 차량 성능을 평가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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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남양 PG


자동차 개발시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시험차를 운전하여 PG로 들어가야 한다. 범용로에서 시동 on/off 진동과 아이들 진동소음을 평가하고 최대가속을 하며 가속 성능과 운전성을 평가한다. 이어서 완제동/급제동을 하며 제동감을 평가하고 스티어링과 핸들링 성능을 평가한다. 다음에는 모형로로 가서 다양한 형상의 노면을 지날 때 노이즈와 쉐이크 성능을 평가한다. 승차감로를 지난 다음에는 고속주행로에서 최고속 주행시 안정감과 바람소리 등을 평가한다. 이러한 한 싸이클의 시험 주행을 하게 되면 통상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도 걸린다. PG에 들어가서 테스트하고 나오면 차량의 주요 특성과 장점, 개선해야 할 단점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자동차 개발자에게 PG는 너무도 필요한 존재가 된다.


필자가 현대차에 근무할 때 신입사원 면접을 하러 가곤 했다. 거의 1년에 한두번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푸릇푸릇한 지원자들을 하루에 20명 정도 만나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으며 회사에 필요한 인재인지 판단해야 했다. 면접에서 물어보는 질문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어서 취업 스터디를 통해 연습한 지원자들의 답변은 너무나 훌륭하였고 모두가 자신이 열정적이며 협조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로만 그런지 아니면 진짜 좋은 인재인지 판별하려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또 이어서 심층질문으로 2~3단계 들어가서 판단해야만 했다. 이러한 면접 과정을 통해 내가 선발한 인원이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로 정말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은 내가 좋은 점수를 준 지원자들의 이름을 기록해서 가지고 있다가 입사 후에 그 지원자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확인하기도 하였다. 입사후 평판 및 성과가 대부분은 면접시 판단 결과와 일치하였으나 때로는 면접 결과와 딴 판으로 소속 부서에서 좋지 못한 평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자동차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험차를 운전해보면 된다. 고유의 특성이 잘 발휘되는 노면과 시험장에 가서 테스트 운전을 하게 되면 차량의 장점과 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자동차의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 전문가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인재를 선발할 때도 자동차 프루빙 그라운드처럼 인재 평가 PG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원자를 데리고 PG에 가서 함께 다녀 보며 내면의 진면목까지 파악해 볼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생각이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시험이다. 초중고 시절부터 시험 잘 보기 위한 공부를 해왔고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 왔다. 수능을 잘 보아야지 좋은 대학을 가고 그래야 좋은 회사에 가서 평균 이상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사회 현실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험 철만 되면 부모까지 수험생이 된 듯,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 하며 부모가 자녀를 볼 때 인사가 시험 잘 봤니, 공부 열심히 했니가 되었다. 그러나 시험은 내면의 인격과 성품까지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시험만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수 없다. 일류 대학을 나왔고 성적이 좋아서 선발한 인재가 입사한 후에는 자기만 아는 개인주의자가 되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인재 선발에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기업에서 활용하는 방법에는 인턴제도가 있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기 전에 인턴으로 함께 일해 보면서 성과와 태도를 판단하여 채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무 현장에서 부딪혀 보고 선발한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 조차도 인턴 기간이 몇 개월로 한정된다는 점에서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몇 개월 만에 인재를 판단한다는 것이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오랫동안 근무하여 중견 사원 이상이 되었을 때는 어떤가? 이들은 이제 승진도 해야 하고 보직도 맡아야 할 때가 되었다. 임원이 되어야 할 사람도 결정해야 한다. 경영자는 이 시점에서 누가 적임자인지 판단을 해야 한다. 이 판단이 쉽지는 않으나 처음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와 비교하여 보면 어느 정도 쉬워진다. 다년간 성과와 고과가 누적이 되며 평판이 쌓이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 가운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되고 있고 결과가 쌓이며 매일 매일의 일터와 삶 그 자체가 프루빙 그라운드가 된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후 제 2, 제 3의 직장을 구해 몇 년 더 다녔고 이제는 정말 쉬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더 이상 시험이나 고과, 면접, 성과 등으로 평가받을 일이 없다. 평가받을 일이 없으니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도 내면의 평가는 계속 된다.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삶의 목적과 부합하며 의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인지 스스로 늘 생각하며 판단하게 된다. 특히 깨어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더라도 자기 만족감은 중요하다. 스스로 만족해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 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모습인지 늘 생각해보게 되고 느끼게 된다. 누가 평가하고 판단해 주지 않더라도 연속되는 삶의 현장이 프루빙 그라운드가 된다. 그 세계에서 스스로의 삶을 검증해 나가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평가 받아야 하는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사는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외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나의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어제보다 오늘이 더 성장했는가, 무엇보다 내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평가이다. 이탈리아의 음악가 토스카니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우리는 모두 프루빙 그라운드라는 삶의 마당에서 살아 간다. 자신에 대해 엄격한 평가자가 되어 최선을 다해 살아 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아름다와 보인다. 프루빙 그라운드라는 장소에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삶의 인사이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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