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시계(Ten Thousand Year Clock) 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대니 힐리스( Danny Hillis)가 1989년에 시작하였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2012년부터 후원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일 만년 동안 작동하는 시계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총 제작비는 4,200만 달러이며, 완성 시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35년째 진행되어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한다. 일반 시계와는 다르게 초침은 1년에 한번 움직이고, 분침은 100년마다 한번 간다. 정확히 표현하면 초침, 분침 대신 연침(年針), 백년침(百年針)이 있는 셈이다. 매 천년에는 뻐꾸기 소리도 울린다. 태양광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현재 시각은 사람이 태엽을 감을 때만 표시된다고 한다. 방문객이 태엽을 감는 날에는 차임이 울리는데 만년 동안 멜로디가 한 번도 겹치지 않게 설계하였다. 또한 정확도 유지를 위해 정오의 태양위치와 동기화를 실시한다.
만년시계의 설계 주안점은 장수, 유지 관리성, 투명도, 진화성, 확장성의 다섯 가지이다. 만년 동안 작동해야 하므로 장수명은 핵심 기능이 되는데, 이를 위해 모든 파트는 천천히 움직이게 하며 (1년에, 100년에, 1,000년에 한번), 기계 작동의 마찰 최소화, 각 부품의 청결, 건조 상태 유지, 악천후 및 지진까지 고려하였다. 특히 고가의 부속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도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도난의 염려가 없는 일반 재료, 부품을 사용한다고 하니 그 치밀성이 놀랍다. 유지 관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친숙한 재료를 사용하고 부품을 간단하게 만들며 후대 사람들을 위해 설명서까지 만들고 있다. 투명성은 누구나 작동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인류의 후대 사람들이 쉽게 확장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도록 현재 설계에 그 가능성을 적용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 만년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지금부터 일만년 전에는 지구에 기후 대변혁이 일어났고 신석기 시대와 농경사회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만년 후에 지구와 인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만년 후에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 있을까? 또 살아 있다면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낼까? 제프 베조스는 장기적인 사고의 상징물, 아이콘을 만들어서 장기적 사고의 중요성, 멀리 바라보는 자세와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년 시계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135m 높이의 만년시계는 텍사스 서부 600m 바위산에 짓고 있다. 일반 유명 관광지 처럼 공항과 도로로 연결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치 순례길을 떠나 듯 미래의 인류를 생각하며 험준한 바위산을 올라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몇 년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년시계 탐방을 하며 인류 역사의 장구함 속에 찰나같은 내 삶과 먼 훗날 후대 인류의 유산과 안녕을 생각하고, 주어진 내 삶 속에서 멀리 보려는 마음 자세를 가다듬을 것이다. 현재 해당 사이트에서는 후원과 방문 예약을 받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하였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정도의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훈련에 사용하면 1년에 1,000시간, 10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가능한 시간이다. 박사 과정 수료와 학위 취득인 경우, 풀 타임으로 대략 4-5년 정도 소요되는데 하루에 6시간씩 연구에 집중한다면 5년 만에 만시간을 채울 수 있으니 나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원래 만 시간의 법칙은 1993년에 콜로라도대학의 앤더스 에릭슨 교수가 실시한 연구 결과에 근거한다. 여러 연주자들의 연습시간을 조사해보니 대략 세계적 연주자는 1만시간, 훌륭한 연주자는 8천 시간, 음악교사는 4천시간 정도 연습을 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근거로 1급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 간 실력 차이의 80% 정도는 연습시간에 따른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참고로 말콤 글레드웰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자기 계발과 성장 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추세에 맞춰 1만 시간의 법칙은 크게 붐을 이루었고, 나름 100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삶의 성실함을 추구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고 싶고 노력을 할 수 있더라도 지금 시작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생각해야 할 포인트로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기회의 평등성이다. 모든 사람이 1만 시간을 개인의 삶 가운데 투자할 수 있을까? 대단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설령 그런 끈기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만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뭔가를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보다 당장 생계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피곤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재능에 대한 내용이다. 스포츠나 음악, 미술에 대한 재능 없이 1만 시간의 연습 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할 것 같은데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금새 포기하고 말 것이다.
미시간주립대의 잭 햄브릭 교수는 전체 성과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사하여 발표하였는데 게임 분야는 26%, 음악 21%, 스포츠 18%, 교육 분야는 4% 만이 노력에 의해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선천적 재능 등 기타 요인이라고 하였는데, 재능 외 환경, 사회적 우연한 기회 등에 의한 기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노력의 배신'에서 김 영훈 교수는 일반적으로 믿는 것 만큼 노력이 성공의 원인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 노력의 효과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거의 다 가져간다"고 했다. 앤더스 에릭슨은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 고 하며 시간만 채우는 연습보다는 사려깊은 훈련(deliberate practice)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력은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세계적인 대가가 될 수는 없다. 끈기와 재능이 있어야 하고 주어진 환경과 사회적 여건, 제도 등이 잘 맞아 떨어지는 우연도 있어야 하고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려깊은 훈련도 해야 한다. 그러니 당신이 성공했다고 크게 자랑하지 말고,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개인에게 전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신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제품기획, 디자이너, 샤시/차체/전자 설계 전문가, 평가 전문가, 엔진/변속기 관련 파워트레인 전문가, 모터/감속기 등 ePT 전문가 등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렵다. 내가 아는 A는 차량 평가 전문가이다. R&H 전문가이지만 NVH, 운전성,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 ADAS 등 차량의 전반적인 성능을 균형감있게 잘 평가한다. 일반 고객 관점의 평가를 통해 고객들이 문제삼을 만한 이슈를 잘 짚어내며 개발자 관점에서 집중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실무자보다도 더 정확하게 현상을 감지하고 개선 검토 사항을 지시한다. 그에게는 그 만의 평가 절차와 법칙이 있다. PG 에서 평가하는 경우, 범용로에서 아이들시 진동소음의 이상유무, 일반 가속 성능, 운전성, 조향 인풋에 따른 차량의 반응, 슬라럼 등을 테스트하고 승차감로에서는 일반 Ride 성능, 코너링시 바디 거동, 조정 안정성, 범프/리바운드, 로드노이즈 등을 평가한 후 고주로로 옮겨간다. 고속시 주행 안정성, 윈드노이드, 가속성능 및 최고속 성능을 평가하면 전체 평가가 마무리된다. 각 성능마다 평가의 기준과 조건이 있어 다른 차와의 비교 평가가 가능하다. 나는 A가 평가할 때 조수석에서 참여한 적이 있다. 30여분의 평가 동안 차량의 성능에 대해 A는 자신의 평가 결과를 얘기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적으며 요약을 했었다. 평가 종료 후 A는 평가 결과를 개발자들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차 안에서 내게 얘기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었다. 마치 바둑 고수가 판을 복기하며 자기가 둔 한 수 한 수를 기억하는 듯 했다. 랩업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고위 경영진이 뒤늦게 와서 A에게 차량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나는 A가 평가 과정을 복기하듯 문제점과 자신의 의견을 순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A는 전문가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 생각하며 관찰해 보았다. 우선 그는 차를 타는 것을 매우 즐기며 차량을 평가할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말에도 휴식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차량을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공로 평가를 즐기곤 했다. 그에게 차량 평가는 업무이고 취미이자 자아 실현인 것이다. 또한 A는 레이스 트랙에서의 운전, 대회 참가, 자작차 등의 경험을 대학가기 전부터 꾸준히 했다고 한다. A는 아마 5만 시간 쯤은 훈련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년시계와 일만 시간의 법칙처럼 좋아하는 것을 길게 보고 꾸준히 했을 때 세계적으로 저명한 차량 개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나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치지 않고 만 시간 동안이나 인생의 여정 가운데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그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사는 부류가 중고등 학생, 대학생 등 청소년과 젊은 층이라고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매일 매일 힘든 삶을 살아 가지만, 늘 기성세대의 기대에는 못미치고 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소리를 들으며 만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재능없는 분야에 우직한 끈기 만으로 매달려 있는 것이라면 성과가 그리 좋을 리 없다. 나는 우리의 청소년, 청년들 모두가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오랫동안 몰입해도 싫증나지 않는 것들을 찾았으면 좋겠다.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김 영훈 '노력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