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뉘르부르그링에는 노르트슐라이페(Nordschleife)라는 자동차 레이스트랙이 있다. 1927년에 개장된 총 20.8km의 트랙은 73개의 다양한 코너를 가지고 있으며 제일 높은 곳과 제일 낮은 곳의 고저 차이가 300m에 달하며 도로 폭이 8~9미터에 불과해 운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같은 트랙이지만 앞 부분에서는 맑은 날씨를 보이다가 트랙의 뒷 부분에서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운전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트랙이다. 트랙은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트랙을 녹색 지옥(The Green He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좁은 도로 폭과 세이프티 존, 고저차로 인한 블라인드 코너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트랙 주행이 지옥 체험과 같았던 사고들이 실제로 많이 있었다.
녹색지옥에서 열리는 대표 레이스 경기는 ADAC 24h Nürburgring이다.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에 열리는 경기로서 24h Nürburgring은 24시간 동안 연속으로 서킷을 주행하며 총 누적거리를 측정하여 순위를 정하는 경기이다. 극도로 가혹한 운전 조건과 까다로운 서킷 주행에 따른 사고와 고장으로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차량의 기본적인 주행 성능과 내구성능이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2016년부터 N 브랜드 차량으로 참가하여 완주하며 우승함으로써 N차량의 우수한 성능을 검증한 바 있다.
레이스 프로그램이 없는 기간 동안에는 자동차 회사와 타이어 회사들이 멤버십 형태로 차량 시험과 개발에 이용하고 있다. 이를 i-pool (Industry pool)이라고 하는데 주요 멤버십 회사로는 포르쉐, AMG, 람보르기니, 아스톤 마틴, 현대차, BMW 등 자동차 회사들과 피렐리, 굳이어 등 타이어 회사들이 있다. 각자 자사 제품의 주행 성능과 샤시튜닝, 타이어 성능 등의 검증 개발에 집중하며 결과를 이용한 홍보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i-pool 기간 동안에는 엔지니어들이 고성능차, 슈퍼카를 한계 상황까지 이르도록 운전하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일과 후 저녁 시간에는 투어리스트 세션(tourist session)이라고 일반인들에게 서킷 주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차로 주행이 가능하며 트랙 한 바퀴에 평일 30유로, 주말 35유로를 내면 된다. 트랙 주행이 어려운 일반 차량도 단순 경험을 위해 많이 입장하지만, 고속 주행 매니아들은 값비싼 고성능차를 영국 등 멀리 타 지역으로부터 몰고 와서 자기 차의 성능을 마음껏 즐기기도 한다.
i-pool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험차들과 랩타임 6분 대의 고성능 차들이 뒤얽혀 주행하고 있기 때문에 트래픽 컨트롤, 트랙의 이해도, 거기에 맞는 운전 능력, 위험 상황과 극한 조건에서의 전문적인 대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각 멤버십 회사들은 나름대로의 단계별 운전 교육을 통해 일정 레벨이상의 운전 능력을 보유한 엔지니어들에게만 트랙에서의 주행을 허락해 주고 있다.
필자가 드라이빙 라이센스 취득을 위한 최종 교육과 시험 검증과정에 있었던 일화이다. 최종 검증과정에 입과하기 전, 2년 6개월 동안 나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주요 코스의 이름과 특징, 운전 방법 등을 학습하였고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기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 연습을 꾸준히 실시하였다. 또한 단계별 드라이빙 스쿨에서의 교육도 수강하였으며 뉘르 서킷에서 실제 주행에 익숙해지기 위해 투어리스트 세션에도 틈틈이 참여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과정의 첫날! 첫 랩을 돌 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맥박이 크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트랙을 잘 탈 수 있었고 여러 코너의 특징을 고려하여 제동 - 턴 인 - 턴 아웃 및 가속 조작을 타이밍에 맞게 잘 수행해 나갔다. 인스트럭터마저 아주 차를 잘 탄다, 랩 시간을 좀 더 단축하기 위해 차를 더 푸쉬하라고 얘기를 해주니 자신감이 더욱 넘쳐났다. 자신감이 넘치는 오전 교육의 마지막 랩. 타이트한 코너를 잘 빠져나와 완만한 코너에서 가속하며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구간. 넘치는 자신감에 차를 너무 몰아붙여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며 트랙 펜스에 차량 오른쪽을 쭈욱 긁어버리는 사고를 당했다. 한계 상황에서 진짜 살짝 더 밟았을 뿐인데 그 이후에는 조향도 제동도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사고차를 현장에 두고 구난차를 타고 복귀하는 심정은 착잡해지며 너무 나댔구나, 좀 더 조심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 사고를 낸 이후에 운전자들은 운전을 기피하거나 운전에 대한 의욕이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후 세션 시작 전에 인스트럭터가 괜찮냐, 운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2랩을 돌고 나서 인스트럭터가 스피드가 너무 줄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아마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단다. 그러면서 내게 해준 말이 내 머리를 때렸다. "Don't underestimate yourself. And don't overestimate yourself." 인스트럭터는 피교육자에게 단지 운전 능력에 대해 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충만한 자신감에 활기차게 지내기도 하지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무리하게 되고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작아 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하며 행동 또한 작아지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자기 모습의 정확한 인지, 자기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너무 자신을 과대 평가하여 능력 밖의 큰 일을 벌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주는 일을 피해야 한다. 또한 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그것을 못 보고, 남들 잘하는 것, 남들 좋은 모습에 맘 뺏겨서 성장을 멈춰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내가 녹색지옥에서 얻은 인생 교훈이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자신을 매우 작게 여기거나 탓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조금씩 풀어나가라. 일이 잘 풀리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면 좀 더 겸손하고 신중하게 인생과 주위를 살펴 보라. 어쨌든 나는 과소평가했던 나의 운전 능력을 다시 되살려 결국 아이풀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