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를 부르다

제1부. 중년, 길 위에서 멈춰 서다

by cej

5. 남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

나는 가끔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대신 관리해주는 직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출근하면 정해진 자리에 앉아 정해진 말을 하고, 정해진 표정을 짓는다. 하루가 끝나면 그 인생을 다시 반납한다.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사용법은 남이 정해준 삶이다. 그래서인지 거울 속의 나는 늘 조금 늦게 반응한다. 웃으라는 신호가 오면 웃고, 괜찮냐는 질문이 오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몸은 분명 여기 있는데, 나는 항상 반 발짝 뒤에서 나를 따라온다.


어릴 때 나는 나만의 인생을 상상했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이면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되고 싶은 나’를 적어 두기도 했다. 자유로운 사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월요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먼저 고르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무난한 일을 택했고, 튀는 생각보다 안전한 말을 골랐다. 그렇게 모난 부분을 하나씩 접다 보니, 지금의 나는 각이 잘 맞는 퍼즐 조각이 되었다. 어디에 끼워 넣어도 문제없는 모양이 되었지만, 그만큼 나만의 모양은 흐릿해졌다.


남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드는 날은 주로 조용한 밤이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 뒤에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가 남는다.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내가 살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치 잘 정리된 일기를 대신 써준 기분이다. 사건은 많았지만, 감정은 빠져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묻는다. 이 하루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내 이름으로 기록되었지만, 정말 내 것이었을까. 불을 끄고 누우면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에 ‘나’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이 삶은 나쁘지 않다. 적당히 안정적이고,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떠나기 어렵다. 남의 인생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편하다. 이미 정해진 방향이 있으니 고민할 일이 줄어든다. 실패해도 “다들 이렇게 사니까”라고 말할 수 있고, 성공해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넘길 수 있다. 책임이 가벼워지는 대신, 존재감도 함께 가벼워진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조명을 켜는 사람처럼 산다. 빛은 앞사람을 비추지만, 정작 나는 그림자 속에 있다.


가끔은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의 나. 종이 위에 적힌 장래희망이 너무 많아 지우개로 몇 번이나 고쳐 썼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아마 실망보다는 의아해할 것이다.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살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망설일 것이다. 용기보다 이유가 많아졌고, 꿈보다 계산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 그런 일일 것이다. 가능성을 줄이는 대신 안전을 늘리는 일, 질문보다 답을 먼저 고르는 일. 그럼에도 나는 완전히 체념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남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내 인생을 원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았다면 굳이 불편함을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편하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은 방향을 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을 모른 척하지 않으려 한다. 불편함을 적어 보고, 의심을 문장으로 옮겨 본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남의 삶이 아니라 내 감정을 산다.


요즘 나는 아주 작은 선택부터 내 쪽으로 가져오려 한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주말 계획을 세울 때, 굳이 남들이 좋다는 쪽이 아니라 내가 덜 피곤한 쪽을 고른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 된다.

남의 기준으로 살지 않는 시간, 남의 목소리를 줄이고 내 마음을 조금 키우는 연습이다. 그렇게 하루에 몇 분씩만이라도 나를 돌려받는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남의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나는 아마 더 흔들리고 더 망설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인생은 한 번에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조금씩 되찾는 것이다. 빌려 입은 옷을 하나씩 벗고, 내 체형에 맞는 옷을 찾는 일처럼. 아직 나는 완전히 내 인생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출입문 앞에는 서 있다. 더 이상 남의 삶을 구경만 하지는 않으려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방향만은 잃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거울 속의 내가 바로 나처럼 보이는 날, 그때 나는 비로소 내 이름으로 된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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