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중년, 길 위에 멈춰 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나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반평생을 사용했다. 젊었을 때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불안이 사라질 줄 알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면 안정이 찾아올 줄 알았으며, 결혼하면 인생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 불안은 임시적인 감정이고, 인생의 단계가 올라가면 자연히 졸업되는 과목쯤으로 여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 자체가 가장 큰 착각이었다.
어릴 적 불안은 단순했다. 시험을 망치면 혼날까 봐 불안했고, 친구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했다. 불안의 원인이 분명했기에 해결책도 분명했다.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 시절 불안은 마치 채점 가능한 문제처럼 보였다. 틀리면 고치면 되는 감정, 점수를 올리면 사라지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는 순간 불안은 성격을 바꿨다. 성적표 대신 실적표로, 담임선생 대신 상사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제는 누가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이번 보고서는 괜찮았나?”, “저 말은 너무 튀지 않았나?”,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불안은 외부의 채찍에서 내부의 감시 카메라로 진화했다. 나는 내 삶의 관리자이자, 동시에 가장 까다로운 감사관이 되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불안은 다시 한번 진화한다. 이번에는 건강검진 결과표로, 자녀의 진로 문제로, 통장 잔고로, 그리고 거울 속 주름으로 나타난다. 젊을 때의 불안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였다면, 지금의 불안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걸까’에 가깝다. 불안의 방향이 미래에서 과거로 바뀐다. 불안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이 길이 맞았을까?” 그 질문은 밤에 특히 커진다.
나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늘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 남들이 권하는 길을 택했고, 위험한 선택은 피해 갔다. 실패하면 불안해질까 봐, 후회하면 불안해질까 봐, 늘 안전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모은 안정 위에서 불안은 더 단단해졌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주소만 바꿨다. 학교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내 몸과 마음으로 이사했을 뿐이다.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불안은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관리해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아마 삶이 멈출 때일 것이다. 불안은 우리가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하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며,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불안을 적으로 대할 때 생긴다. 불안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면, 인생은 끝없는 전쟁이 된다. 전쟁에는 휴식이 없다. 그래서 늘 지친다.
이제 나는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불안을 해석하려 한다. 예전에는 불안을 보면 도망치거나 무시했다. 지금은 묻는다. “이번에는 어떤 얼굴로 왔니?” 건강이 문제라면 식습관과 수면부터 돌아보고, 돈이 문제라면 지출과 욕망을 구분하고, 관계가 문제라면 침묵 대신 대화를 시도한다. 막연한 공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순간, 불안은 크기부터 줄어든다.
불안은 늘 과장된 예고편을 틀어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장면만 반복 재생한다. 해고당하면 끝일 것 같고, 병이 발견되면 인생이 무너질 것 같고, 관계가 틀어지면 혼자가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생을 충분히 살아보니 알겠다. 실제 본편은 예고편보다 덜 자극적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무너지지 않았고,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고,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불안은 실패를 예언하지만, 삶은 회복을 증명해 왔다.
그래서 이제 나는 불안에게 자리를 정해준다. 운전석은 아니고, 조수석쯤이다. 불안의 의견은 들을 수 있지만, 방향키는 내가 잡는다. 이 차이는 크다. 불안이 운전하면 인생은 급브레이크의 연속이고, 내가 운전하면 불안은 내비게이션 정도가 된다. 때로는 틀린 길을 알려주지만, 위험 구간은 알려준다. 참고는 하되, 따르지는 않는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이 문장은 중년이 되어서야 이해한 문장이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패배처럼 들렸겠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린다. 불안이 계속된다는 건, 나 역시 계속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책임이 생기고, 새로운 역할 앞에 서기 때문이다. 불안이 있다는 건 아직 삶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다.
좌충우돌이었지만 여기까지 왔다. 많은 선택에서 틀렸고, 여러 번 후회했고, 예상보다 느리게 왔지만, 그래도 왔다. 불안은 늘 곁에 있었고, 나는 흔들리면서 배웠다. 그리고 이제야 안다. 인생의 목표는 불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나를 잃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그것이 중년에 이르러 얻은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