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를 부르다

제1부. 중년, 길 위에 멈춰 서다

by cej

중년의 위기는 사실 ‘점검표’다

중년의 위기가 왔다는 걸 나는 아주 사소한 일로 알게 됐다. 어느 날 퇴근길에 늘 마시던 커피를 샀는데, 그 맛이 갑자기 너무 싫었다. 쓴 것도 아니고 탄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걸 내가 매일 마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 비슷한 일이 계속됐다. 즐겨 듣던 노래가 시끄럽게 느껴졌고, 익숙한 회식 자리가 피곤해 졌고, 잘 입던 옷이 갑자기 나이 들어 보였다. 세상이 변한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내가 달라진 것 같았다.

처음엔 내가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원래 짜증이 늘어난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나를 너무 대충 쓰고 있나?” 그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늘 해야 할 일만 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늘 이렇게 말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그 말이 위로 같으면서도 핑계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쓰던 메모장을 발견했다. 거기엔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 적혀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지금의 나는 그 문장과는 꽤 멀리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억울해졌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실패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망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자꾸 “이게 맞아?”라고 묻는 느낌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게 중년의 위기라는 거구나.


중년의 위기가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내가 느낀 중년의 위기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사고도 없었고, 이혼도 없었고, 실직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들이 조금씩 재미없어졌을 뿐이다. 웃을 일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할 일도 있는데 이상하게 허무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이유 없는 감정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래 같은 방향으로만 달려왔고, 너무 오래 멈추지 않았다.

차는 정기검진을 받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이상해도 그냥 버틴다. 나도 그랬다. 피곤하면 커피를 마셨고, 지치면 주말에 잠으로 때웠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서 작은 경고등이 켜졌던 것 같다. 큰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재미없다”, “지겹다”, “모르겠다” 같은 말로 깜빡였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런데 무시할수록 더 자주 깜빡였다.


그래서 나는 중년의 위기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내 인생 점검 알림’. 고장이 아니라 점검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나를 존중하고 있는지, 하루에 나를 웃게 하는 시간이 있는지, 지금 사는 방식이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지. 답은 대부분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질문을 피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고, 지금의 나는 생각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중년의 위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인생을 통째로 바꿔야 할 것처럼 말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도시를 떠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런 상상을 잠깐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나는 알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내 인생을 버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조금 덜 지치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부터 바꿨다. 주말에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 날을 만들었고,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들었고,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남들 보기엔 별것 아닌 변화였지만, 나에게는 “아직 조정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상하게도 중년의 위기가 오고 나서 삶이 더 솔직해졌다. 예전에는 잘 살아 보이려고 애썼다면, 요즘은 덜 망가지려고 애쓴다. 예전에는 남들 기준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내가 버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더 높은 자리에 가는 것보다, 덜 힘든 하루를 만드는 게 목표가 됐다. 그게 나이 든다는 건지, 철이 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예전처럼 무작정 달리지는 않게 됐다.


중년의 위기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 지금까지 꽤 잘 왔어. 그런데 이제는 방향을 한 번쯤 봐도 되지 않겠어?” 이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망했다는 말도 아니고,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잠깐 고개 들어서 길을 보라는 말 같다. 그래서 나는 중년의 위기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불청객이 아니라 안내문처럼 대한다. “당신 인생, 점검 시기입니다.” 그 문장이 예전보다 덜 무섭게 들린다.


아직도 가끔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더 좋아하게 될지.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질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는 나에게 질문을 줬고, 나는 그 질문 덕분에 처음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이게 고장이라면, 더 망가지기 전에 알아차린 게 다행이다. 멈추기 전에, 아직 조정할 수 있을 때 왔으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중년의 위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추락이 아니라 정렬. 끝이 아니라 점검. 인생이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설문지 같은 것. 답을 잘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체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 점검표 앞에서 천천히 답을 써 내려간다. 예전처럼 자동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적어도 나에게는 설명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생각보다 중년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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