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를 부른다

제 1부. 중년. 길 위에서 멈춰서다

by cej

잘 버틴 인생과 잘 산 인생은 다르다


나는 한때 스스로를 꽤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웬만한 일에는 잘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샘도 했고, 억울한 일도 참았고, 피곤해도 티를 안 냈다.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은 ‘잘 버티는 인간’. 누가 봐도 성실해 보였고, 나름 괜찮은 어른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잘 버티고 나서 남는 게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늘 비슷했다. 씻고, 누워서 휴대폰 보고, 다시 자고. 그날 뭐가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났다. 대신 뭐가 힘들었는지는 또렷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바로 ‘잘 버틴 하루’라는 걸. 살아는 있었지만, 살았다는 느낌은 희미한 하루였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요즘 뭐 때문에 웃지?” 웃긴 영상을 봐서 웃는 건 있었는데, 하루를 떠올리며 웃은 기억은 없었다. 내가 잘 버텼던 날들은 기록이 없었다. 기억도 없고, 이야기로 할 것도 없었다. 반면에 예전에 여행 가서 길을 헤맸던 날이나, 친구랑 쓸데없는 얘기를 하다 밤을 새운 날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 차이가 좀 억울했다. 힘든 날이 더 많이 쌓였는데, 남는 건 적었다.

그제야 알았다. 잘 버틴 날과 잘 산 날은 다르다는 걸. 잘 버틴 날은 “별일 없었다”로 끝난다. 잘 산 날은 “그날 이런 일이 있었어”로 시작한다. 둘 다 하루인데, 남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그동안 ‘별일 없었다’는 날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었다.

웃긴 건, 나는 늘 잘 살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좋은 선택을 하려고 했고, 틀리지 않으려고 했다. 위험한 선택은 피했고, 무난한 쪽을 골랐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숨는 쪽에 가까웠다. 다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다 보니, 재미도 같이 피해버린 셈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게 귀찮았다. 헬스장을 끊는 대신 집에서 스트레칭 앱을 깔았고, 모임에 나가는 대신 다음에 보자고 미뤘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보다는, 실패하지 않을 일을 골랐다. 덕분에 크게 망한 적은 없었다. 대신 크게 기억나는 일도 없었다.

중년이 되고 나서, 이 구조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시간은 빨리 가는데, 기억은 별로 없다. 그게 이상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조용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라, 선택이 늘 비슷해서 조용했던 거였다. 그래서 요즘 나는 기준을 조금 바꿨다. ‘안 힘든 선택’ 말고, ‘조금 기억에 남을 선택’을 해보려고 한다. 대단한 건 아니다. 늘 가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본다거나, 안 먹던 메뉴를 시켜본다거나, 혼자 영화 보러 가본다거나. 실패해도 별일 없고, 성공하면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최소한 하루가 한 장면으로 남는다.

이렇게 살다 보니 알게 된 게 있다. 잘 버틴 인생은 주로 참고 지나간 인생이고, 잘 산 인생은 조금 어수선한 인생이라는 것. 잘 산 날에는 늘 약간의 빈틈이 있다. 계획대로 안 된 일, 예상 못 한 대화, 쓸데없는 웃음 같은 것들. 반대로 잘 버틴 날은 깔끔하다. 일정도 깔끔하고, 감정도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 깔끔해서 기억이 없다.


나는 아직도 자주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습관이니까. 하지만 예전처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가끔 묻는다. “이건 버티는 쪽이야, 사는 쪽이야?”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선택이 조금 달라진다. 피곤해도 나가볼까, 귀찮아도 만나볼까, 그냥 넘어가지 말고 말해볼까. 그렇게 하루가 조금씩 달라진다.

재미있는 건, 잘 산 날이 꼭 편한 날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약간 피곤하고, 약간 번거롭다. 하지만 그날 밤에 누우면 “오늘은 뭐라도 했다”는 느낌이 남는다. 잘 버틴 날에는 그런 느낌이 없다. 대신 “드디어 끝났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둘 다 하루를 넘겼는데, 남는 말이 다르다.

요즘 나는 내 인생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버텨온 인생’ 말고, ‘조금씩 살아보는 인생’. 대단하게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버티는 데만 쓰던 힘을, 가끔은 사는 데도 써보자는 쪽이다. 어차피 인생이 완벽해질 일은 없으니까, 차라리 기억에 남게라도 살자는 마음이다.

잘 버틴 인생은 존경받기 쉽다. 책임감 있고, 묵묵하고, 문제없이 굴러가니까. 잘 산 인생은 설명하기 어렵다. 왜 그걸 했는지, 왜 그렇게 웃었는지 말로 다 하기 힘들다. 대신 얼굴에 남는다. 조금 느슨한 표정으로.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미 잘 버텨왔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거기에 ‘잘 산 날’을 조금씩 섞어보고 싶다. 참은 날 말고, 웃은 날을 세어보면서.

견딘 시간 말고, 기억나는 시간을 늘리면서.

잘 버틴 인생과 잘 산 인생은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둘 중 하나만 고르지 않기로 했다.

버틸 줄도 알지만, 살 줄도 아는 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보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이제야 나를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