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조직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의 감각>을 읽고 느낀 것

by Jay

요즘 출근길이 묘하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며 차에서 흘러나오는 Drowning 보다 먼저 재생되는 게 있다. 오늘 팀 분위기는 어떨까.

분명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력서만 펼치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사람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조직은 흔들린다. 삼시세끼 맛있는 밥 잘 나오고, 간식 바구니가 넘치고, 수평적 호칭을 쓰는데도 사람들의 눈빛에서 몰입이라는 단어가 증발해 버린 느낌.



안정감 없는 조직의 풍경

이유야 수백 가지일 거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없다. 우리가 만드는 게 정말 세상에 필요한 건지, 그냥 누군가가 큰 고민 없이 뜬 삽을 따라 파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 시장에서 증명한 게 없다. Product Market Fit이 슬라이드 위에서만 빛나고, MAU, 유저 피드백은 바닥을 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조직이 통째로 리셋될지 모른다는, 외세의 압력.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따라" 이 한 문장이 사람들의 허리를 보이지 않게 구부린다.

그래서 다들 70%짜리 마음으로 출근한다. 30%는 보험용으로 남겨둔 채. 링크드인 프로필은 슬쩍 'Open to Work'로 바꿔놓고, 점심시간에 커피챗 일정을 잡는다. 탓할 수 없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 가만히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조수용이라는 사람

조수용.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디자이너인 줄 알았다. 그다음엔 기획자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부동산 개발자인 줄 알았고, 나중에는 카카오 대표라는 걸 알고 좀 당황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직업란에는 뭘 적어야 하는 걸까.


20대에 네이버 이해진 의장에게 디자인 전권을 받았다. 나는 20대에 노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 전권으로 그는 네이버의 얼굴인 초록색 검색창을 만들었고, 이후 네스트 호텔을 짓고, 사운즈 한남을 세상에 내놓았다. 호텔과 복합문화공간이라니. 디자이너 출신이 왜 건물을 짓고 있는 건가 싶지만, 그의 논리는 명쾌했다.

크리에이티브 영역에는 구분이 없다.

유통도, 재무도, 부동산도 거기에 '왜 이렇게밖에 안 되지?'라고 의문을 품고 들여다보는 순간, 그건 이미 디자인의 영역이 된다는 것. 무시하지 않고, 공감하고, 녹여내는 것. 그게 그가 말하는 일의 범위였다.


최근 그의 책 『일의 감각』을 읽었다. 조직을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펼친 책이었는데, 몇 문장이 형광펜도 없이 눈에 박혔다.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마음먹는 것이다

감각의 시작은 마음가짐이다. 맡은 일은 대충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
모든 일을 10억짜리 의뢰로 여기는 겁니다.


10억짜리 의뢰. 이 비유가 좋았다.

우리는 보통 일의 크기로 태도를 결정한다. 큰 프로젝트에는 정성을 쏟고, 자잘한 업무에는 대충의 마음을 허락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 순서를 뒤집는다. 태도가 먼저고, 일의 크기는 나중이라고. 사소한 일을 큰일처럼 대하는 사람이 결국 큰일도 해내는 사람이라고.


이걸 조직에 대입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팀원들이 몰입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일이 시시해서가 아니라 일을 시시하게 대해도 되는 분위기가 조직 안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누군가 대충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공기. 그게 쌓이면 '몰입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조직이 완성된다.



좋아하는 일이 없다고? 그건 핑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한때 이런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몰입할 수 있다. 맞는 말 같지만, 이건 함정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모든 일에 70%의 마음만 쓰겠다는 선언이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연애에서나 쓸 법한 표현을 일에 붙이다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진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경험은 대부분 그랬다. 처음엔 별 감흥 없이 시작했는데, 조금씩 들여다보고, 파고들다 보니 어느 순간 재밌어진 것들. 러닝도 그랬고, 투자도 그랬고, 결국 지금 하는 일도 그럴 것이다.


조직 안에서 "이 일이 재미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재미있는 일 찾아보세요"라고 답하는 건 리더의 직무유기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일의 어디까지 들여다봤어요?"



사공은 하나여야 한다

여기서 하나 더. 작가가 네이버에서 해낸 일의 본질은 결국 이거였다. 사공이 하나였다는 것.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전권을 가진 한 사람이 일관되게 밀고 나간 것. 사운즈 한남도, 네스트 호텔도 그렇게 탄생했다. 위원회가 만든 게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 관통한 결과물이다.

좋은 조직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전이 열두 개면 비전이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걸 만든다"는 한 문장을 모두가 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한 해석권은, 미안하지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분배될 수 없다. 누군가 하나가 끝까지 책임지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

일관성.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않는 용기.


이 문장이 특히 와닿았다. 보통 우리는 하는 것으로 성과를 증명하려 한다. 새 기능 추가, 새 파트너사 계약, 새 시장 진출. 그런데 정말 용기 있는 리더는 하지 않는 것을 지킨다. "이건 우리가 안 합니다"를 백 번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일관성이 결국 조직의 세계관이 된다.



내가 정의하는 안정감

결국 이 글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책의 한 문장이 그 질문에 가장 가까운 답이 되어주었다.

제가 정의하는 안정감이란,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화려한 복지도, 수평적 문화도, 주 4일제도 아니다.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느낌. 그 느낌이 도는 조직은, 복지가 부족해도 사람이 남는다. 반대로 그 느낌이 없는 조직은, 연봉을 올려도 사람이 떠난다.

그러니까 결국, 좋은 조직을 만드는 건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공기를 바꾸는 일이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옆 사람이 슬쩍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그 시선이 모이면 분위기가 되고, 분위기가 쌓이면 문화가 된다.


나부터 10억짜리 의뢰를 받은 것처럼 내일 출근해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아이들에게 돈을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