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 때로는 감정에 휘둘려보자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by Jay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돌아가신 시각이 어제 일지, 오늘 일지 고민하는 뫼르소.

장례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게 내 탓은 아니지 않냐고 상사에게 말하는 무심함.


마리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데이트는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뫼르소. 그래도 마리의 청혼에 결혼은 하겠다는 그. 내가 아니라 누구든 데이트하고 청혼하면 결혼했을 거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뫼르소.


동네에선 포주로 소문난 레몽. 여자친구를 거칠게 폭행하고, 뫼르소에게는 본인을 창고관리인으로 소개한다. 레몽이 폭력에 대한 변호를 요청하자 대수롭지 않게 수락하고 그와 친구가 되는 뫼르소.




이 주인공은 대체 무슨 캐릭터일까. 세상만사가 귀찮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허무주의자? 염세주의자? 통상적인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소시오패스? 아니다. 다 조금씩 애매하다.


뫼르소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런 포장도 해석도 없이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보고 들은 input을 통해서만 상대방을 정의한다. 본인의 경험과 감정도 각색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그래, 컴퓨터 같은 사람이다!




컴퓨터 같은 뫼르소가 우연찮게 싸움에 휘말리고, 어쩌다 보니 레몽 대신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아랍인에게 발사하여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죄에 대한 재판을 할 때, 사건 이전에 있었던 이벤트들은 어디까지 참고하는 게 적당할까. 아랍인과 싸움이 벌어진 계기, 레몽과의 관계, 직전에 일어난 어머니의 부고는 사건의 배경일 수 있으니 알아봐야 한다.


반면, 노모를 양로원에 홀로 모셨고, 장례식에서 관을 열어 어머니를 보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 장례 다음날 마리를 만나 데이트를 했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들은 어떨까. 이게 살인죄를 더 무겁게 할 수 있을까.


이보다는 아랍인이 칼을 쥐고 있었고, 직전에 레몽을 칼로 베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여하튼 책의 큰 주제 중 하나인 배심원과 재판의 부조리함도 인상 깊지만 나는 뫼르소의 내면에 대해서 더 얘기하고 싶다.




사형 집행, 즉 죽음을 앞두고서야 처음으로 감정을 폭발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왜 진작 본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나 안타까웠다. 하나님을 통해 구원을 받으라는 사제의 끈질긴 전도를 끝내 거부하고, 뫼르소는 커다란 분노를 폭발한다. 분노를 표출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분노가 가라앉자 바깥세상의 별과 바람, 밤 냄새에 귀 기울이고 평화로운 소리를 받아들였다. 내 감정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세계에 마음을 연 것이다.


그전까지 뫼르소가 표현한 감정들은 배고픔, 졸림, 더움, 욕정 같은 1차원적은 욕구들이었다. 그리움, 공감, 사랑, 의심, 질투, 믿음 같은 건 다 부질없는 소모적인 낭비라고 봤다. 매정한 녀석..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하다. 이 말이 실제로 작동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증명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행복은 가만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의식적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흔히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데, 뫼르소에게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려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체계는 복잡하고, 이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복잡함 그 자체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어차피 다 죽는다고, 사사로운 감정들은 다 부질없다는 태도는 오만하고 다가올 미래를 과소평가하는 자세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중략)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파워 T들에게, 내면을 돌아보고 감정에 귀 기울여 보자. 이방인처럼 방관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 어색하고 어렵더라도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공감도 소통도 한결 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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