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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enses of Time

카라얀 시대의 두 음악가

안네-소피 무터와 자비네 마이어의 평행선

by Jwook

유튜브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클래식을 듣는 시대가 되면서, 클래식은 더 이상 일부 애호가의 취향이 아니다. 누구든 베를린 필의 연주를 실시간으로 보고, 무터나 랑랑의 협주를 클릭 한 번으로 찾아낸다.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질문도 생긴다.

“이 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알고리즘은 빠르고 화려한 연주를 상위에 배치한다. 조회 수가 곧 권위가 되는 시대. 그러나 깊이 있는 음악은, 오히려 선택지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절에 더 강렬하게 남았다. 권위가 뚜렷했고, 체계가 명확했고, 연주자들은 해석을 벼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청중 역시 그 미세한 차이를 듣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클래식을 많이 아는 편은 아니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누가 연주하느냐’를 먼저 선택한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의 숨, 공간의 울림, 해석의 결이 완전히 달라서다. 그 차이를 듣는 순간, 음악은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의 공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카라얀 시대’의 음반으로 돌아간다. 오늘의 알고리즘이 주는 화려한 영상과는 다른, 완벽한 질서와 권위가 지배하던 세계. 그 중심에는 지휘자를 넘어 하나의 시스템을 상징했던 이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이 있었다.


카라얀의 제국 — 용해의 미학


카라얀 후기의 베토벤 7번을 들으면, 각 악기의 개별성보다 전체의 파동이 먼저 다가온다. 소리는 층층이 쌓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진다. 그가 말년에 도달한 미학은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된다.

‘용해(融解)’ — 모든 소리가 오케스트라라는 건축물에 스며드는 순간.


물론 카라얀의 모든 연주가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녹음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선명하며, 개별 악기의 텍스처가 살아 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카라얀은 완전히 다른 극점으로 향했고, 그 미학은 거대한 ‘제국의 음향’을 만들었다.

Beethoven Symphony No.7 -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1983)

그런데 바로 그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 서로 다른 온도를 지닌 두 명의 연주자가 있었다. 카라얀이 선택하거나, 혹은 카라얀이 감당하지 못했던 두 사람.

안네-소피 무터(Anne-Sophie Mutte)와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


안네-소피 무터 — 권위 안에서 완성된 냉정한 열정


무터는 13세에 카라얀에게 발탁되며 클래식계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카라얀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미학을 계승하고 확장할 ‘후계자’를 보았다.


초기 무터의 모차르트와 브람스는 그야말로 건축적이다. 카덴차는 설계도처럼 정확했고, 음정은 흔들림이 없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절제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오히려 뜨거움을 만든다. 카라얀의 체계 안에서 무터는 완벽의 미학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한 존재였다.

거장의 지휘와 천재의 호흡이 교차하는 순간. 무터의 선율 위에 카라얀의 그림자가 조용히 겹쳐진다.

카라얀 사후에도 그 완벽주의는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펜데레츠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초연하며, 그녀는 과거의 질서를 불협화음과 현대적 긴장 속에서 다시 구축했다. 무터의 음악은 체계 안에서 완성된 해방이었다.


자비네 마이어 — 체계 밖으로 밀려난 자유의 호흡


1983년, 마이어는 카라얀의 강력한 지지로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단원이 되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달랐다.
표면적으로는 ‘음색 문제’였다.


하지만 그 ‘음색’이 정말 순수하게 음악적 판단이었을까? 1982년까지 단 한 명의 여성 단원도 없었던 오케스트라. ‘용해의 미학’은 균질성에 대한 집착이기도 했고, 그 균질성을 위협하는 타자를 향한 거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금도 클래식계에서 논쟁적이다. 어디까지가 음악이고, 어디부터가 구조적 편견이었는지 그 경계를 가를 수 없다.


마이어는 1년 만에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그것이 개인의 실패였는지, 시스템의 실패였는지는 여전히 해석의 영역에 남아 있다. 하지만 체계 밖에서 만난 그녀의 모차르트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음악은 구조가 아니라 숨이었다. 프레이즈의 끝마다 여백이 있고, 그 여백 속에서 청중은 자기 호흡을 발견한다. 바셋 클라리넷을 사용해 모차르트의 원래 음색을 복원한 것도 마이어의 결정적 선택이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명료함 대신, 악기 고유의 목소리를 선택한 용기였다.


무터의 연주가 건축이라면, 마이어의 연주는 숨을 쉬는 시간이었다.

클라리넷을 잘 몰라도, 이 순간은 그냥 귀로 바로 느껴진다. 마이어와 아르미다 콰르텟이 모차르트를 이렇게 빛나게 한다.

두 개의 해방 — 완벽과 진정성 사이에서


두 연주자는 같은 거장의 손에서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해방을 찾아갔다. 무터는 체계 안에서 완벽을 재해석했고, 마이어는 체계 밖에서 진정성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하나의 해석이다. 카라얀의 시대가 언제나 깊이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의 디지털 감상 환경이 곧 ‘화려함’만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무터와 마이어를 ‘완벽 대 진정성’으로 나누는 것도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그보다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연주자를 평행선 위에 놓고 바라보는 그 순간 — 음악은 또 다른 사유의 창을 열어준다.


듣는 이의 선택


무터의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세계가 흐트러졌을 때, 완벽한 구조가 주는 안정감. 마이어의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정돈되었을 때, 사람의 숨이 들리는 음악.


어떤 것이 더 나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음악을 어떻게 듣고 싶은지를 발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들의 음악은 제국의 그림자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빛으로 걸어간 두 개의 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만의 음악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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