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써브웨이에서 발견한 것들
퇴근 후 곧장 헬스장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몸을 풀어내는 시간. 운동을 마치고 나면, 몸은 정직하게 비워진다. 근육은 기분 좋게 뻐근하고, 심장은 아직 평소보다 조금 빠른 템포로 뛴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차가운 공기가 젖은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든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하루 중 몸이 가장 가볍고, 동시에 가장 허기진 시간. 나의 발걸음은 약속이나 한 듯 대학가 골목 어귀, 초록색 간판이 빛나는 써브웨이로 향한다. 내가 찾는 매장은 대학가 근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파마산 오레가노의 짭조름한 향과 이스트가 부풀어 오르는 구수한 냄새. 그 향기는 고된 운동을 마친 내 몸에 '이제 쉴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곳에는 일반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을 위한 '특가 세트'다. 샌드위치에 쿠키와 음료까지 더해도 5천 원 남짓. 달마다 조합이 바뀌는 이 메뉴는 앱으로 미리 주문할 수 없다. 반드시 두 발로 걸어와,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와야만 만날 수 있는 아날로그의 특권이다.
계산할 때마다 나는 묘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도대체 이 가격으로 매장이 운영되는 걸까? 대학가라 손님의 대부분이 이 저렴한 세트만 찾을 텐데, 과연 마진이 남기는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의 여유가 아닐까. 미래의 잠재 고객인 학생들을 위해 일종의 기부나 투자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베풀어지는 혜택이라면, 덩달아 혜택을 보는 나 같은 아저씨가 누려도 되는 건지 슬며시 멋쩍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이든, 얇은 지갑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그리고 땀 흘린 뒤 소박한 보상을 원하는 나에게 이 5천 원짜리 세트는 확실한 위로다.
저녁 7시가 넘은 작은 매장 안은 묘한 활기로 가득하다. 좁은 공간이지만 배달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내 앞에는 하루를 마치고 온 듯한 대학생들이 줄지어 있다. 아마도 인근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전, 저녁을 해결하러 온 것이리라. 무엇을 넣고 뺄지 거침없이 말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생동감을 느낀다.
나는 퇴근 후 운동으로 억지로 땀을 뺐지만, 그들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청춘이라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들 틈에 섞여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그 젊음의 가장자리에 머문다.
나는 주문을 한다. 특가 메뉴로. 빵은 위트, 아메리칸 치즈, 야채는 전부. 소스는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게 조합해본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조리대를 바라본다. 매장은 좁지만, 그 안에서 직원들의 손놀림은 더없이 분주하다. 매장 주문과 배달 주문이 동시에 밀려드는 저녁 시간, 그들은 마치 잘 짜인 군무를 추듯 움직인다.
매일 아침 구워낸 빵을 가르고, 신선한 야채를 얹고, 소스를 뿌리는 손놀림. 그 반복은 작은 회전문처럼 쉼 없이 돌아간다. 나는 마지막으로 계산대 앞에서 쿠키를 고르고 테이크아웃을 선택하고, 비닐봉투에 담긴 샌드위치를 들고 제로 음료를 채우고 밖으로 나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닐봉투 속 따뜻한 온기가 손에 남아 있다. 그 온기를 느끼며 아까의 의문을 다시 떠올린다. 주문과 선택이 빠르게 오간다. 빵을 선택하고 주재료와 치즈가 먼저 세팅되고, 빵은 데워진다. 이어서 야채를 고르고, 소스를 고른 뒤 샌드위치는 조립된다.
이 정도의 노동이 들어가는데, 이 가격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햄버거 브랜드는 골목마다 넘쳐나지만, ‘완전 즉석 조립 샌드위치’는 왜 국내에서 여전히 하나뿐일까.
집에 도착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 아삭거리는 양상추와 토마토가 입안에서 부딪히는 순간,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가격은 매장의 노동을 줄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모든 계산이 끝난 뒤, 매장은 그 결과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이 장을 볼 때의 세계와, 수만 개의 매장이 동시에 움직이는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내가 마트에서 토마토 한 상자를 집어 들 때와, 지구 곳곳에 흩어진 매장들이 같은 품질의 토마토를 같은 조건으로 받아볼 때의 가격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빵 반죽은 이미 표준화된 형태로 국경을 넘고, 양상추와 피망, 올리브는 이름 없는 계약 농장에서 같은 규격으로 자라난다.
매장은 여전히 매일 아침 재료를 손질하고 조립한다. 그러나 그 재료가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개인의 감각이 닿지 않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관리된다. 우리가 무심코 씹는 양상추 한 장에는, 지구를 핏줄처럼 연결한 시스템의 박동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그 ‘기부 같은 가격’은 자비가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구매력의 결과. 매장 직원은 오늘도 주문을 받고, 빵을 자르고, 주재료를 올린 뒤 손질된 채소와 소스를 얹어 샌드위치를 조립한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가격은 이 매장 어디에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이미 지구 반대편의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진 숫자다.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시스템, 둘이 맞물릴 때 비로소 5천 원의 기적이 완성된다.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거대한 규모를 가진다. 하지만 써브웨이는 다른 선택을 했다. 완제품을 데워 내놓는 대신, 매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신선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냉동 반죽과 계약 재배, 그리고 매장 조리라는 세 겹의 장치를 쌓아 올렸다. 그 위에서 오늘도 한 개의 샌드위치가 조립된다.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운동으로 비워진 몸에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차오르며 몸이 채워지는 충만함이 밀려온다. 값은 부담 없고, 속도는 빠르며, 몸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편안하다.
동네마다 써브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행 때문이 아니다. 이 복잡한 물류와 운영의 난제를 '규모'로 해결하고, 동시에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까지 '썹픽'이라는 이름으로 넘어서는 브랜드가 오직 이곳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써브웨이의 주문은 처음엔 쉽지 않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정은 늦어진다. 썹픽(Sub Pick)은 그 망설임을 단번에 정리해주는 장치다. 가장 무난하고 실패 없는 조합을 제안해, 선택을 고민이 아닌 습관으로 바꾼다.
우리는 평범한 샌드위치 한 줄을 먹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유통의 세계,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서비스 디자인, 그리고 일상의 리듬에 맞춰 흘러가는 하나의 브랜드 철학이 숨어 있다.
포장지를 정리한다. 시계는 저녁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내게 써브웨이는 단순한 샌드위치가 아니다. 퇴근 후 운동을 마친 뒤 찾아오는 소박한 루틴이자, 지구를 가로지르는 물류의 정교함과 매장 안 손놀림의 성실함이 조우하는 순간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내일도 나는 퇴근하고, 땀을 흘리고, 그 작은 매장의 문을 열 것이다. 비닐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이 완벽한 질서 속에서 가장 맛있는 위로를 얻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