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One Battle After Another』 리뷰
추석 연휴, 극장가를 훑던 중 폴 토마스 앤더슨(PTA)의 신작이 눈에 들어왔다.『마스터(The Master)』의 종교적 탐닉과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을 통해 인간 본성을 해부하던 그 냉철한 시선은 늘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영화는 때때로 불편하고 난해하지만, 그 불편함은 인간의 진실에 닿기 위한 유일한 통로다. 그래서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1픽으로 선택했다.
이 글은 스포일러 없는 리뷰다. 영화의 세부 장면과 상징 해석은 다음 글에서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PTA는 언제나 '믿음'이라는 테마를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마스터』가 콰엘(The Cause)이라는 사이비 종교의 허상을 파고들었다면, 『One Battle After Another』는 혁명이라는 거대 신념의 허상을 해부한다.
감독은 이 거대한 전쟁 서사에 뛰어들면서도, 카메라를 깃발이 아닌 그 깃발을 쥔 개인의 떨리는 손으로 향하게 한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 『Vineland』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PTA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수년간 써온 여러 이야기들을 핀천의 서사 골격에 덧입혔다.
그 결과물은 레이건 시대의 좌파 급진주의를 배경으로 하지만,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향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이민자 수용소, 백인 민족주의, 군사화된 국가권력을 정면으로 다루며, "이것이 미국의 미래인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골든글로브가 이 영화를 코미디 부문에 출품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PTA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한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크리스마스 어드벤처러스(Christmas Adventurers)'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PTA는 이들을 "웃기면서도 소름 끼치게" 만든다. 권위주의 체제를 풍자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절박함을 놓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게토" 팻 칼혼(Bob Ferguson)은 16년 전 극좌 무장단체 '프렌치 75'의 폭파 전문가였다. 이제 그는 대마초에 취해 편집증적 은둔 생활을 하며,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키운다.
숀 펜이 연기하는 스티븐 J. 록조 대령은 그의 과거를 쫓는 악몽 같은 존재다. 영화는 아버지와 딸, 혁명가와 권력, 이상과 생존 사이의 긴장을 162분 내내 팽팽하게 유지한다.
162분의 러닝타임은 분명 길다. 하지만 이 길이는 감독의 욕망이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필연적 시간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durée)' 개념처럼, PTA가 만들어낸 시간은 시계로 측정되는 길이가 아니라 의식의 밀도로 구성된다.
편집자 앤디 유르겐센(Andy Jurgensen)은 이 영화를 "단 한 온스의 군더더기도 없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프롤로그만 40분이지만, 장면은 스냅샷처럼 빠르게 전환된다.
특히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기하는 센세이 세르히오 장면은 25분 동안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며, 심문-탈출-추격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VistaVision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70mm, IMAX 70mm, Dolby Vision 등 다양한 포맷으로 상영되며, 프레임 하나하나에 극도의 디테일과 질감을 담아낸다. 캘리포니아 사막의 언덕에서 펼쳐지는 추격 장면은 카메라가 차량 범퍼에 부착되어 촬영되었고, 관객은 마치 그 안에서 함께 숨 쉬는 것처럼 느낀다.
조니 그린우드와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스코어는, 불협화음과 절제를 오가며 인물의 감정선과 장면의 여백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서사'로 작동한다. 18개의 트랙은 재즈적인 피아노 선율에서 오페라틱한 웅장함까지, 영화의 긴장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
"Mo Bamba"와 "Goosebumps" 같은 현대 힙합 트랙이 삽입되는 순간은 기묘하면서도 완벽하게 작동한다. 이 곡들은 단순한 BGM이 아니라, 세대 간 단절과 현재성을 환기시키는 장치다.
그린우드는 이 영화에서 피아노, 기타, 베이스, 퍼커션, 심지어 온드 마르트노까지 직접 연주하며, PTA와의 여섯 번째 협업에서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PTA 커리어 중 가장 큰 예산(1억 7,500만 달러)이 투입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 거대함을 자신의 언어로 '전유'한다. 대부분의 감독이 이런 상황에서 폭발적인 스펙터클로 흐를 때, PTA는 절제와 통제의 미학으로 돌아선다.
거대한 세트와 화려한 조명은 모두 인물의 감정선을 뒷받침하는 악보일 뿐이다. 오타이 메사 이민자 수용소 습격 장면은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를 연상시키지만, PTA는 혁명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폭력의 무작위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디카프리오는 타락한 이상주의자 밥 역으로, 불안과 편집증과 아버지로서의 절박함을 섬세하게 구축한다. 특히 윌라의 머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장면에서, 그는 혁명가도 악당도 아닌 그저 한 명의 서툰 아버지가 된다.
숀 펜의 록조 대령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는 권력욕, 인종적 집착, 왜곡된 부성애가 뒤엉킨 복잡한 인물이다. 테야나 테일러가 연기하는 퍼피디아 베벌리힐스는 영화의 처음 30분을 지배하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PTA의 "불가해한 욕망의 대상들" 계보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다.
『One Battle After Another』는 혁명을 배경으로 하지만, 혁명을 믿지 않는다. 대신 믿음의 대상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붙잡는지를 묻는다.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 질문이지만, PTA는 이 공허함 속에서 새로운 '믿음'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모순과 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영화의 힘이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한 인간의 내면은 영화 한 편으로 변할 수 있다. PTA는 증명한다.
혁명은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영화는 인간을 꿰뚫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꿰뚫림이야말로 우리가 아직도 극장을 찾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