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야 살리는 응급실의 철학

닥터 로비와 <더 피트>가 가르쳐 준 '비움'의 윤리

by Jwook

15초, 그 냉혹한 선택의 순간


제83회 골든글로브에서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HBO 드라마 〈더 피트(The Pitt)〉. 피츠버그 외상 센터 응급실을 배경으로, 15시간의 교대 근무를 실시간(Real-time)으로 따라가는 이 작품은 기존의 정제된 의학 드라마와 달리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날 것 그 자체를 보여준다.


시즌 1 제8화 〈2:00 P.M.〉. 물에 빠진 여섯 살 아이 앰버가 실려 온다. 베테랑 의사 로비 플랫과 의료진은 가능한 모든 시도를 다한다. 심폐소생술, 에피네프린 투여, 제세동기. 하지만 칼륨 수치가 치명적 수준에 도달하고, 모니터의 선은 끝내 평탄해진다.


로비의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 베드에서 간호사의 외침이 터진다. "닥터 로비! 총상 환자 혈압 떨어져요!" 부모의 '아니야, 제발!'이라는 절규가 벽을 타고 번지는 동안, 로비는 이미 장갑을 바꿔 끼고 있다. 방금 씻은 손으로 그는 총상 환자의 가슴을 절개한다. 죽은 아이와 산 환자 사이, 그 15초의 공백을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흐른다.


이것이 로비 플랫이다. 신의 손을 가진 천재가 아니라, 붕괴 중인 의료 시스템에서 '누구를 먼저 살릴까'가 아니라 '누구를 늦게 죽게 할까'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피로한 관리자다. 그의 단호함은 무정함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규율이다.


늑대를 깨우는 자비


불교의 사물(四物) 타종 이야기가 있다. 새벽 예불 전, 수행자는 범종·법고·목어·운판을 차례로 쳐서 만물을 깨운다. 토끼를 깨울 때는 부드럽게, 사슴은 조금 세게, 그러나 늑대를 깨울 때는 큰 소리로 "방금 깨운 토끼라도 잡아먹으라"고 일갈한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가르침의 본질은, 어느 한 존재에만 매달리지 않고 전체 생명의 흐름을 꿰뚫는 지혜다. 이를 불교에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분별 없는 자비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최선의 자비—라 부른다.


로비 플랫의 사망 선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다음 생명'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다. 만약 그가 이미 멈춘 심장 앞에서 1분을 더 머문다면, 그 1분은 옆 베드 환자의 골든타임을 갉아먹는다.


응급실에서 무집착(無執着)은 감정을 지우는 게 아니다. 감정을 안고도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그것은 기술이다. 고독하고 필사적인.


어느 장면, 로비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멈춘다. 거울에 비친 그의 눈에는 방금 그 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물에 젖은 금발, 입술에 남은 거품. 하지만 손을 씻는 물소리가 그 이미지를 지운다. 5초, 그가 자신에게 허락한 애도의 시간이 끝난다. 복도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그는 물기를 닦고, 다시 뛰어나간다.


비어 있어야 기능하는 공간


병원의 응급실을 보면, 이곳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흐르는 공간'이다. 건축에서 '프로그램'이란 공간의 용도를 뜻한다. 응급실 베드는 매번 그 프로그램을 리셋당한다. 어제의 교통사고 환자도, 오늘의 심정지 환자도 같은 베드에서 같은 긴박함으로 대우받는다. 환자의 체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트가 교체되고, 혈흔이 닦여 나가며, 공간은 다시 백지가 된다.


이 공간에서 15년을 일한 로비는, 자신의 마음도 이 베드처럼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공간이 기억을 거부할 때, 그 자리는 순수한 '현재'가 된다. 의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만약 의사가 한 죽음에 마음의 방 한 칸을 내어준다면, 그 방은 곧 폐쇄되어 새로운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건축에서 비움(Void)이 있어야 채움(Mass)이 가능하듯, 응급실에서 의사의 심리적 빈 공간은 오직 다음 생존 가능성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로비가 유지하는 것은 무감각이 아니라, 적정 온도다. 수술실이 감염 방지를 위해 섭씨 22도를 유지하듯, 로비의 마음에도 최적의 온도가 있다. 너무 뜨거우면 판단을 흐리고, 너무 차가우면 생명을 놓친다. 그가 지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최적의 차가움이다. 동료 의사가 "로비, 당신은 너무 냉정해"라고 비난할 때, 그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 환자의 차트를 집어 든다. 그의 냉정함은 방어기제가 아니라 직업적 책임이며, 살리기 위해 선택한 온도 조절이다.


지금을 살리는 법


우리의 일상 또한 하나의 거대한 응급실이다. 자녀의 어제 시험 점수를 질책하는 동안, 오늘 아이가 식탁에서 건넨 "엄마 있잖아..."는 들리지 않는다. 지난 기획서가 왜 통과되지 못했는지 복기하는 동안, 오늘 아침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는 메모되지 못한 채 증발한다. 로비 플랫의 단호한 손길은 묻는다. 우리는 이미 숨이 멎은 것에 집착하느라, 지금 살릴 수 있는 것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놓아준다는 것은 비겁한 퇴장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장면을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며, 아직 숨 쉬는 현재에 손을 내미는 가장 윤리적인 자비다. 자비란 모든 것을 움켜쥐는 탐욕이 아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곳에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다음 교대 근무가 시작되기 전, 로비는 락커룸에서 유니폼을 벗으며 오늘 놓친 생명을 세지 않는다. 대신 내일 아침 첫 환자가 누구일지 생각한다. 응급실의 베드가 다시 하얗게 소독된다.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안착한다. 그는 어제를 놓아줌으로써,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더 피트〉는 2026년 1월, 시즌 2로 돌아온다.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15시간의 리얼타임. 로비는 여전히 응급실에 서 있을 것이다. 어제를 놓고, 오늘을 살리기 위해. 그것이 그가 선택한, 살아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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