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를 처벌한 역사

『삼체』 드라마가 인민재판으로 시작한 이유

by Jwook

첫 장면이 묻는 질문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원작 소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소설에서는 어느 정도 전개된 뒤 등장하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인민재판 장면을, 드라마는 첫 장면으로 끌어올린다. 물리학자 예저타이가 학생들과 군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받고, 폭력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삼체』는 끝까지 물음표로 남는다. 왜 과학자가 처벌받았는지, 왜 하필 상대성이론이 문제가 되었는지 납득되지 않는 순간, 이 작품 전체는 과도한 설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설명되지 않지만, 반드시 이해되어야 하는 출발점이다.

드라마 시즌 1 종료. 시즌 2 확정 제작 중. 『삼체』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왜 물리학자가 죄인이 되었는가


예저타이의 죄목은 단순하다. 그는 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가르쳤다. 그리고 인민재판 자리에서 그는 일관되게 같은 태도를 보인다. 과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험과 경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었다. 과학 역시 정치 이념에 복무해야 했고, 자연 법칙조차 혁명 노선을 따라야 했다.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가 아니라, 체제가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세계만이 허용되었다.


군중은 그의 태도를 부르주아 반동 사상으로 규정했고, 그의 딸 예원제는 무대 아래에서 아버지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학생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벨트로 내리치는 순간, 그녀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사유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세계의 작동 방식이었다.


상대적인 세계는 통제할 수 없었다


상대성이론은 위험했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주장, 관측자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설명은 “하나의 기준, 하나의 진리”를 전제로 하는 체제에 균열을 냈다. 세계가 상대적이라는 말은 곧 설명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이는 통제 불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래서 뉴턴은 허용되었고, 아인슈타인은 배척되었다. 뉴턴 역학이 제시하는 세계는 예측 가능했다. 힘을 가하면 물체는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궤도는 계산되며, 미래는 방정식으로 도출된다. 기계처럼 작동하는 세계는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세계는 달랐다.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고,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공간이 수축한다.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단일한 해석이 불가능했다. 체제가 원한 것은 하나의 정답이었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복수의 진리가 아니었다. 이 차이는 과학의 진보가 아니라, 권력이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였다.


그는 틀려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예저타이는 잘못된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너무 정확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제거되었다. 그의 믿음은 과학적 주장인 동시에 정치적 도전이었다. 자연은 이념을 따르지 않으며, 진리는 소유될 수 없고, 인간의 설명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인민재판의 목적은 진실 규명이 아니었다. 질서 복원이었고, 그 과정에서 사유는 위험 요소가 되었다. 그는 이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사고 방식 때문에 처벌받았다.


이것이 『삼체』가 품고 있는 차가운 통찰이다. 인간은 복잡성을 견디지 못한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단순한 거짓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거짓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제거한다.


이 장면이 남긴 상처


이 장면은 예원제의 선택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는 홍안(紅岸) 기지로 보내진다. 거기서 그녀는 우주로 신호를 보낸다. 인류 문명의 좌표를 외계에 알리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었다. 환멸이었다. 인간 사회가 진리를 다루는 방식,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 알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절망이 그녀를 그곳까지 이끌었다.


『삼체』는 이 장면을 통해 외계 문명보다 먼저 인간 문명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우주에서 오는 위협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작동해온 사유의 처벌 메커니즘이 진짜 위험이었다는 것을.


아직,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현재 드라마 『삼체』를 모두 본 상태에서, 소설 1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가 던진 질문의 윤곽을 따라가며 원작을 읽다 보니, 이 이야기가 얼마나 넓고 깊은 사유의 장을 품고 있는지 조금씩 체감하게 된다.

이 글은 완결된 해석이 아니다. 함께 읽어가는 과정의 첫 메모에 가깝다. 삼체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과학과 문명, 생존과 윤리, 인간의 오만과 겸손, 그리고 우리가 끝내 견뎌야 할 ‘알 수 없음’에 대한 질문까지. 앞으로도 이 작품을 통해 풀어낼 이야기는 너무 많다.


『삼체』가 던지는 첫 질문


그래서 『삼체』는 과학소설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이 작품이 묻는 첫 질문은 기술도, 외계인도 아니다.


우리는 세계가 하나의 설명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명은, 언젠가 반드시 더 큰 미지와 충돌하게 된다. 드라마가 이 장면을 첫 장면으로 배치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외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유를 처벌해온 인간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역사는 1960년대 중국에서 끝나지 않았다.우리는 지금도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며,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이해 가능한 세계 안에서만 안전함을 느낀다. 질문은 여전히 위험하고, 사유는 여전히 불편하다.


『삼체』의 첫 장면은 묻는다. 우리는 질문을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사유를 처벌하고 싶은 존재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같은 이야기, 다른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