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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etween Words

글을 가둬두는 일

머무름의 형태를 한 흩어짐의 철학

by Jwook

글을 쓴다는 것은 흩어지는 생각을 잠시 붙잡으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생각은 늘 바람처럼 흩어지고, 감정은 미세한 파문처럼 사라진다.


그 휘발성의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언어라는 그릇을 꺼내든다.


그러나 붙잡는 순간, 이미 놓아주는 일이 시작된다.
글쓰기는 머무름과 흩어짐의 경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존재의 집, 벽돌을 쌓는 행위 - 하이데거의 머묾


하이데거는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사라져가는 존재를 잠시 머물게 하는 일, 언어 안에 존재를 정주(定住)시키는 건축이었다.


글 한 줄은 불안한 내면의 파편을 모아 세우는 작은 구조물이다.


휘몰아치는 생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최소한의 형태.


글쓰기는 결국 사유가 머물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 틀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언어로 포획되는 순간, 사유는 변형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말할 수 없는 것은 언어의 밖으로 밀려난다.


언어의 그물망은 촘촘하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는 완결된 건축이 아니라, 언제나 조금은 새어 나가는 공간이다.


의미는 흔적으로 남고, 저자는 사라진다 - 데리다와 바르트의 해체


하이데거의 집이 완성되는 순간, 데리다는 그 벽을 무너뜨린다.


그에게 글은 언제나 흔적(trace) 으로 남는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지연과 차이를 따라 계속 미끄러진다.


현재에 도착하는 의미는 없다. 오직 지연된 도착만 있을 뿐이다.


내가 문장으로 붙잡은 순간, 그 의미는 이미 나를 떠난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나의 감정이 아니라,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살아나는 여러 겹의 감정이 된다.


롤랑 바르트는 이를 “저자의 죽음”이라 불렀다.
글은 저자를 떠나 텍스트로 살아간다. 독자는 그 흔적 위에 각자의 세계를 다시 짓는다.


그날의 일기를 다시 읽었다.

분명 외로움을 적었는데, 지금은 평온이 느껴졌다.

시간이 내 문장을 다시 써버린 것이다.


이제 그 글의 저자는 ‘그때의 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였다.


글은 늘 변하고, 저자는 그 변화의 그림자 속에서 사라진다.


가둠과 해방의 이율배반 - 역설을 긍정하는 글쓰기


글쓰기는 가두는 동시에 풀어주는 행위다.
그 모순은 오류가 아니라, 글쓰기의 본질이다.


들뢰즈의 리좀(rhizome)처럼, 글은 한 지점에서 시작되어 다른 방향으로 끝없이 뻗어 나간다.


나는 흩어짐을 막기 위해 쓴다. 그러나 글은 흩어짐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머무름과 이동, 고정과 유동은 서로를 전제로 한다.

디지털 시대에 이 역설은 더욱 명료하다.


글은 올려지는 즉시 변형된다.
댓글, 공유, 재해석을 통해 의미는 확장되고 다른 리듬을 얻는다.


저자는 더 이상 소멸하지 않고, 텍스트와 함께 순환한다.


나는 여전히 언어로 생각의 잔해를 붙잡으려 한다.
수학자는 수식으로, 음악가는 음표로, 화가는 선과 색으로. 모두 같은 충동에서 출발한다.


사유를 남기되, 완전히 고정하지 않으려는 시도.


글은 결국, 흩어짐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머물려는 인간의 시선이다.


그 한순간의 머묾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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