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pace and Time

하나의 현상, 세 겹의 시선

칸트의 세 물음으로 본 스모그 노을

by Jwook

겨울 초입. 탁 트인 전망과 그걸 보면서 먹는 따뜻한 라면이 생각날 때 식장산 전망대에 가곤 한다. 해발 598미터. 대전 도심이 점점 작아진다. 엔진의 낮은 진동이 귀에 남고, 매캐한 냄새가 섞인 바람이 창문 틈으로 밀려든다. 처음엔 안개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저 아래를 덮은 것은 수증기가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이 얽힌 스모그라는 것을.


불과 몇 달 전, 3월의 어느 날. 대전의 미세먼지 수치는 PM10 93㎍/㎥, PM2.5 43㎍/㎥을 기록했다. '나쁨'을 넘어 경보 발령 수준. 도심은 회색 장막에 갇혔고, 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숨을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학교는 야외활동을 중단했고, 병원 응급실엔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었다.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폐포 깊숙이 침투하는 동안, 도시는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모그를 통과한 노을빛은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전망대 매점에서 산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바라보는 풍경. 오염이 만든 장면인데도 고요하고, 불편함과 감탄이 동시에 밀려든다.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문득 떠오른다.

"이 풍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세 권의 비판서로 인간의 사유를 구분했다. 『순수이성비판』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실천이성비판』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판단력비판』은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의 현상은 이 세 층위를 통해 비로소 입체적인 형태를 갖는다. 식장산의 스모그 노을은 그 다층적 시선의 구조를 드러낸다.


인식의 차원 —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측정할 수 있는가."

스모그는 수치로 번역된다. PM2.5, PM10, 대기오염, 빛의 산란. 객관적 사실로 정리되고, 지도 위의 색으로 시각화된다. 그러나 칸트는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상일 뿐, 사물 그 자체는 알 수 없다." 나는 수치를 이해하지만, 그 공기가 몸 안을 지나는 감각은 모른다.


〈마션〉의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다. 그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측정한다. 물의 생산량, 감자의 칼로리, 산소의 잔량. "과학으로 해결하겠다(I'm gonna science the shit out of this)." 그에게 화성은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로 존재한다.


스모그 또한 그렇다. 수치는 대기를 설명하지만, 그 빛의 결까지 포착하지는 못한다. 인식의 차원은 세계를 구조로 보여주지만, 그 심층의 의미까지는 닿지 않는다.

〈마션〉(리들리 스콧, 2015) 중 화성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마크 와트니

실천의 차원 — 이것은 어떤 행위를 요구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계는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행동이 개입될 때 형성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말한다. "네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원하라." 스모그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공장의 굴뚝, 자동차의 배기구, 난방을 위한 연소 — 수십만 개의 선택이 축적되어 만든 집단적 결과물이다. PM2.5 43㎍/㎥라는 수치 뒤에는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인,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다.


〈1917〉의 스코필드는 전쟁터를 가로지르며 매 순간 결단한다.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끊임없는 실천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멈춤 없는 선택, 유예 없는 책임.


대기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책 결정자는 경제성장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기업은 생산비용과 배출가스 저감 사이에서 선택한다.


식장산에서 만난 노인은 말했다. "예전엔 여기서 계룡산이 또렷했지. 그래도 난 매일 올라." 그의 말 속에는 변화를 기다리며 일상을 지속하는 실천이 있다. 스모그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형성되고 있는 현재다.

〈1917〉(샘 멘데스, 2019) 중 전쟁터를 가로지르는 병사들. 원테이크 촬영으로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을 담았다.

미학의 차원 — 이것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나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스모그는 오염이지만, 그 노을은 감각의 질서 속에서 변형된다. 빛이 입자를 통과하며 굴절할 때, 불투명한 공기가 새로운 색의 결을 만든다. 칸트는 이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 불렀다. 쓸모나 도덕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조화의 감각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LA는 스모그와 네온으로 뒤덮여 있다. 오염된 대기가 만든 주황빛 하늘, 방사능 폐허의 황량한 아름다움. 그것은 재앙의 부산물이지만, 동시에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이다.


칸트에게 숭고란 자연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과 그것을 초월하는 이성의 경험이었다면, 21세기의 숭고는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 발견되는 역설적 아름다움이다.


오늘의 스모그 노을 또한 그러하다. 그 안에는 불편함과 조화, 죄책감과 감탄이 겹쳐 있다. 미학의 차원은 선악이나 효용을 넘어선, 감각과 사유의 만남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드니 빌뇌브, 2017) 중 스모그와 먼지로 뒤덮인 LA. 재앙의 부산물이 만든 역설적 아름다움.

하나의 현상, 세 개의 세계 — 그리고 그 너머


식장산의 노을은 세 겹의 얼굴을 가진다.

과학의 눈: PM2.5 43㎍/㎥ — 나쁨.

윤리의 눈: 선택과 책임 — 해야 함.

미학의 눈: 황금빛 노을 — 아름다움.

이 세 시선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있을 때 세계는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칸트의 세 비판은 인간이 세계를 접속하는 세 개의 통로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남는다. 측정할 수 없는 미세한 감각, 규범으로 정의되지 않는 판단,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빛의 질감.


칸트는 말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그 문장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의 경험."


스모그 너머의 별은 과학적 사실이자, 윤리적 요청이며, 감각적 경험이다. 하나의 현상을 하나로만 읽지 않을 때, 비로소 세계는 열린다.


식장산을 내려오는 길. 빈 라면 용기를 손에 든 채, 스모그는 여전히 도시를 덮고 있었고,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빛의 각도가 달라졌을 뿐. 세계는 그렇게 겹쳐진 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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