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엔딩노트로 치열하게 살아가자
36년간 소방관으로 일했던 주진복 작가는 <<불꽃 속에서 문학을 피우다>>에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엔딩 노트를 쓰자’라고 했다. 그래서 1주일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나만의 엔딩노트를 써보았다.
지난 6월 새벽 시간에 살아온 지난 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 갈래길 중 내가 아닌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은 안전만을 추구하였습니다. 안전함을 위안 삼아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도전하는 길로 가면 위험하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그러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우연히 도전하는 길로 가보았습니다. 그곳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번 힘들었지만 가는 길이 너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로서 살아가니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도전하는 길에서 다른 길로 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 길은 때가 되면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기에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살아온 여러 길에서 좋은 은인들을 만났습니다.
저의 첫 은인은 항상 사랑으로 대해주신 부모님입니다. 아버지는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농부로 광부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습니다. 평생 근검 절약하시다 본인을 위해 한 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24년 전 병세가 악화되어 먼저 다른 길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제가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빠가 된 제가 그때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 덕분에 저희 가족은 빈곤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하지만 너무 미안했습니다.
어머니는 똑순이였습니다. 똑똑하고 현명한 대장부 스타일이었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나 손해를 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7남매 중 장남에게 시집온 맏며느리여서 집안의 대소사를 평생 떠안았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 삶의 의욕까지 잃어버리셨습니다. 혼자 사신지 24년이 넘어가면서 우울증도 왔습니다. 자식 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로 만난 은인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입니다. 아내는 첫 번째 직장에서 만났습니다. 키가 저보다 크고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첫눈에 반했습니다. 제겐 절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16년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 인생의 참된 동반자를 만나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제게 항상 힘이 돼주었습니다. 직장 생활이 힘들어 여러 번 이직을 할 때도,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할 때도 항상 저를 믿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존재입니다. 결혼하면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라는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 여보.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가 또 다른 사랑을 낳아 주었습니다. 우리 둘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은 항상 제게 웃음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와 닮아서 더 그랬습니다. 착한 우리 아들 아주 잘 크고 있습니다. 그런데 못난 아빠를 만나 도전을 두려워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 <<연금술사>>의 주인공 양치기 산티아고와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무모하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아빠를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세 번째 은인은 책 속의 저자들입니다. 자기 계발, 소설, 역사, 과학, 경제 등의 책들에서 저자들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깨우치지 못한 것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저자들은 제게 매일 작게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 것을 당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매번 고민했습니다. 고민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았습니다. 우연히 산책을 하다 달리기를 시작해 마라톤에 도전해 보았고, 자전거 타는 게 너무나 재미있어 자전거 대회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책 읽고 글 쓰는 열정이 불타올라 글쓰기를 1년 넘게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기자는 생각에 이렇게 책도 써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책 속의 저자들이 제게 준 커다란 선물입니다. 읽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다양한 은인들을 만난 길에서 이제는 다른 길로 떠납니다. 아마 그곳에 가서 생각이 나면 한 번씩 회상해보지 않을까요? 아참, 아버지는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겠네요. 막상 떠나려 하니 24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는 설렘도 생기네요. “아버지 잘 지내고 계셨죠?” 어머니도 조만간 만나 뵐 수 있겠네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들은 되도록 아주 먼 날에 보자꾸나.
부모님의 아들로, 아내의 남편으로, 아들의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제일 좋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니 마흔 넘어 책을 접한 시기였네요. 기간은 짧았지만 직책과 직함이 아닌 오로지 ‘산티아고 나 자신’으로 살아보았으니까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최진석 교수님은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해보니 의미 있는 세상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길에서 도전은 마무리되지만 미지의 다른 길에서도 도전은 계속됩니다. 그곳은 어떤 곳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또 다른 은인이 살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 길에서 은인들을 많이 만난 것처럼 또 다른 길에서도 만나고 싶네요. 나의 모든 인연들 항상 행복하세요.
이렇게 엔딩 노트를 써보니 남은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 나 자신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본다. 성공보다는 매일 성장하는 삶을 통해 과정을 즐겨본다. 매일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생의 마지막에 웃으며 떠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