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는 2024년을 정리하고 한숨 돌리는 시기를 맞이했다. 정시 퇴근 이후의 여유로운 시간 덕분에 밥을 해 먹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퀘스트에 몰입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덕분에 1주일 1 퀘스트라는 목표를 넘어, 1주일에 2개의 퀘스트를 소화해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연말이 지나면 회사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해 다시금 분주히 움직일 테니, 여유 있을 때 최대한 많은 퀘스트를 수행해보려 한다. 확실한 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던 때보다는 확실히 삶 자체의 생동감이 달라졌다.
세 번째 퀘스트 : “소소한 작품 감상하기”
① 목표: 출퇴근길이나 여유 시간에 짧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세요. 예를 들어,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10분 내외의 클래식 음악, 혹은 짧은 시 한 편 등을 선택하세요.
② 조건:
• 감상할 작품은 이전에 접해본 적 없는 것으로 선택하세요.
• 유튜브, 스트리밍 서비스, 또는 책 등 접근 가능한 매체를 사용하면 됩니다.
• 감상 중 느낀 점에 집중하며, 무엇이 좋았고 흥미로웠는지 생각해 보세요.
③ 기록하기:
• 감상한 작품과 느낀 점에 대해 1,000자 이상으로 기록하세요.
• 작품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마음에 남은 포인트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써보세요.
집 근처의 미술관과 독립 영화관이 떠올랐지만, 짧은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무엇이 좋을까? 유튜브? 애니메이션? 평소 흔히 감상하는 익숙한 선택지였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 침대 머리맡에 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에세이다. 그의 소설에는 항상 음악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는 지나치듯 흘러가는 음악도 있고, 세세히 설명하는 음악도 있다. 음악에 대한 하루키의 깊은 지식 덕분에 가능한 글들이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음악, 추천하는 음악에 관하여 소개한다. 그래, 오늘의 퀘스트를 정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음악을 듣자.
나는 평소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재즈를 즐겨 듣는 편이다. 그렇다고 재즈를 잘 아는 건 아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정도다.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물론 다른 누군가 만들어놓은 하루키 플레이리스트가 있겠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야근과 귀찮음에 치여 플레이리스트는 점점 뒤로 밀렸고 결국 잊혔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나.
1~20년이 흐른 어느 날, 괜찮은 음악을 찾으려고 스트리밍 플랫폼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미완성의 하루키 플레이리스트를 보며, "그래, 이런 것도 해보려 했었지"라며 추억에 잠기는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그 플레이리스트가, GPT의 퀘스트 덕분에 완성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좋다. 하루키 에세이에 나오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하루키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하자. 비록 너무 돌아왔고 오랜 시간 미뤄왔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하루키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공유하도록 하겠다. 참고로 나는 유튜브 뮤직으로 음악을 듣는다.)
Brian wilson - Love and Mercy
나는 낡은 영화관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어
화면 속 폭력은 마치 우리가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아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그러니 사랑과 자비를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에게 전해요, 오늘 밤
방에 누워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왔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무섭더라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그러니 사랑과 자비를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에게 전해요, 오늘 밤
술집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이 세상의 외로움은 정말 부당하다고 느껴져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오오오오-오오오오
헤이,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그러니 사랑과 자비를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에게 전해요, 오늘 밤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사랑과 자비, 오늘 밤
사랑과 자비
I was sittin' in a crummy movie with my hands on my chin
Oh the violence that occurs seems like we never win
Love and mercy that's what you need tonight
So, love and mercy to you and your friends tonight
I was lyin' in my room and the news came on t.v.
A lotta people out there hurtin' and it really scares me
Love and mercy that's what you need tonight
So, love and mercy to you and your friends tonight
I was standin' in a bar and watchin' all the people there
Oh the lonliness in this world well it's just not fair
Oooooo-ooooooo-ooooooo
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
Ahhhhh-ahhhhhh-ahhhhhh-ohhhhhh-ohhhhhh
Hey love and mercy that's what you need tonight
So, love and mercy to you and your friends tonight
Love and mercy that's what you need tonight
Love and mercy tonight
Love and mercy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은 1960년대 데뷔한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치보이스'의 멤버다. 브라이언 윌슨은 2명의 형제 '데니스 윌슨', '칼 윌슨', 그리고 친구 '알 자딘'과 함께 비치보이스를 결성했다.
하지만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낸 비치보이스는 슬럼프로 인해 멤버 간의 불화가 심해지고, 데니스 윌슨이 마약에 얽힌 사고로 익사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Love and Mercy'는 그러한 역경을 버텨내고, 다시 복귀한 브라이언 윌슨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재기의 의지를 표현한 곡 중 하나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잔잔한 멜로디 위로 브라이언 윌슨의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흐른다.
“화면 속 폭력은 마치 우리가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아.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방에 누워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왔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무섭더라.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자극과 폭력, 고통, 불합리, 억압.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켜면 1분 안에 마주할 수 있는 것들. 오죽하면 끊임없이 생산되는 소셜 매체의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디지털 디톡스'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퀘스트를 시작한 이후로 의도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공부를 위해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 외에는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려 한다. 아무래도 자극을 줄이려는 마음이 크다.
최근 몇 개월 간, 자극에 절여진 삶을 살았기에 더는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 한다. 그리하여 나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
한 곡만 듣고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책을 연이어 더 펼쳐보았다.
Schubert - Piano Sonata No. 17 in D, D.850
책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돈이나 명예가 아닌, '머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악보에 옮기는 일'에만 몰입했다고 한다. 즉,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살아생전에는 음악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키가 추천한 '피아노 소나타 17번 D장조'는 슈베르트의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 곡이라고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평론가 ‘요시다 히데가즈’는 D장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고질병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겠지만, D장조 소나타는 너무나도 장황하고 지루하다. 이번에 CD가 나와 다시 들어보았을 때에도 A단조에서 시작해 그 곡이 끝나자 D장조는 듣지도 않고 끄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야 큰맘 먹고 들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곡은 무서울 정도로 마음속으로부터 용솟음치는 ‘정신적인 힘’이 그대로 음악이 된 듯한 곡이다."
사실 나는 클래식을 모른다. 재즈 또는 록에 지겨울 때 가끔 들을 뿐이다. 그래서 요시다 히데가즈의 평론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그래서 다른 작곡가와의 차이점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느낀 점은 음악의 템포가 변칙적으로 자주 바뀌며, 그렇기에 다음을 예측하기 어렵고, 불리불안을 앓는 강아지가 애타게 주인을 찾는 것처럼 분주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 곡의 변칙성과 혼란함을 뒤쫓다 보면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20년 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중학교 친구와 자연스럽게 길을 걷다 보면, 10년 전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그들과 서글픈 인사를 나누더니 군에 입대한다. 2회 차의 군생활이 시작됐지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과거 후임과 선임을 다시 만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에는 듣기 어려울 듯하다. 대체로 음악이 통통 튀고 빠른 템포로 이어지다 보니, 음악이 업무의 저변에 깔리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힘껏 드러낸다. 집중력을 깨기 쉬운 음악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곡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 플레이리스트의 다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곡이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잊고 지냈던 하루키 플레이리스트 작업을 다시 재개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GPT를 통한 퀘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쯤 OTT의 흐름에 빠져있거나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거나, 유튜브 쇼츠를 넘기고 있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 몇 페이지 들춰보며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긍정적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