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듯 쓰지 않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일.
"하…. 책갈피 또 안 챙겼네."
평소 덤벙대는 성격이기에, 밖에서 책을 읽을 때를 대비하여 책갈피를 챙긴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의 책갈피는 일상다반사에서 발견되기 마련이다.
우선 가장 많이 쓰이는 책갈피로는 명함이 있다. 명함 지갑에 늘 여유 있게 준비되어 있고 종이의 굵기도 적당하다. 책갈피로 딱이다. 그래서 예전 샀던 책을 들춰보면, 이제는 망하고 사라진 옛 회사의 명함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다음으로는 띠지가 있다. 띠지는 보통 홍보 수단으로 책 표지를 둘러 감는 형태로 제작되곤 하는데, 그렇기에 읽은 페이지에 둘러 감기 좋다. 하지만 나는 띠지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책을 사면 바로 버리곤 한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하기에, 표지 디자인 커버도 벗기는 편이다) 그래서 막상 필요할 때는 띠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는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책갈피가 될 수 있다. 카페에서 챙겨 온 냅킨이 될 때도 있고, 노트 한 면을 찢어서 책갈피로 사용하기도 한다. 포켓몬 스티커를 떼지 않고, 책갈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퀘스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갈피를 구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① 목표: 책갈피로 쓸 만한 물건을 주변에서 찾아보세요. 꼭 전통적인 책갈피일 필요는 없고, 창의적이고 독특한 물건을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② 조건: 집 안, 가방, 책상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활용하세요. 종이, 리본, 작은 그림, 심지어 나뭇잎 같은 자연물도 괜찮습니다.
③ 기록하기: 선택한 물건과 그 이유를 1,000자 이상의 글로 기록하세요. 그 물건이 책갈피로 적합한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써보세요.
이 퀘스트는 소소하면서도 흥미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도전이에요. 어떠세요?
나는 기획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되도록 GPT의 퀘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모든 기획은 고민의 깊이에 비례하여 발전하기 마련이다.
일단, 집 안에서 책갈피를 찾는 방법은 식상했다. 사실 집 안에 있는 것들을 이미 책갈피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패스.
나뭇잎을 주워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효용성을 생각했을 때 오래 쓰지 못할 확률이 높다. 코팅을 하기에는 공수가 많이 들고, 나뭇잎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책에 곰팡이가 필 수도 있다. 그래서 집 주변 문구점을 찾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나름 괜찮은 문구 편집숍이 몇몇 있다. 가끔 엽서 혹은 필기류를 사곤 했는데, 이참에 책갈피를 사 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퀘스트가 ‘책갈피로 쓸 것 찾기’인 만큼 책갈피로 판매되는 제품은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책갈피로 쓸 것을 찾아볼 셈이다.
새삼 느끼지만, 취향과 성향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쓰는 도구에 대한 애착은 없다. 지금 쓰고 있는 펜은 이전 회사에 입사할 때 웰컴 기프트로 받았다. 언제 샀는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는 펜과 노트도 많다. 물론 예쁘면 좋겠다만, 내게 글쓰기 도구는 효용성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 문구 편집숍에 방문했을 때 놀랐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줄이야. 편집숍에 방문한 사람들은 놀이기구 탑승을 기다리는 손님처럼 줄줄이 꼬리를 물며, 다이어리와 스티커와 수십 가지 펜을 살피고 끄적이며 쇼핑에 몰입했다.
나는 몰입한 사람들을 뒤편에 서성이며 상품들을 곁눈질로 살폈다. 아쉽게도 마음에 내키는 상품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아직 2개의 매장이 더 남아있다.
첫 번째 매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책갈피로 쓸 것의 기준을 세우자. 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히 정리됐다.
1.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너무 얇거나 작거나 가볍지 않아야 한다.
2.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고로, 의미 없는 책갈피도 없다. 단순히 예쁜 것에 그치지 않고, 책갈피로써의 의미를 발견하자.
이왕 책갈피로 쓸 것을 찾기로 마음먹은 이상, 책갈피로 선택한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매장에서 그 의미를 발견했다.
엽서는 그것을 읽을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엽서로 책갈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낯간지럽고 부끄럽지만…. 뭐 어때? 어차피 책갈피는 나만 보잖아.
그렇게 3장의 엽서를 골랐다. 그리고 각 엽서에 담고 싶은 단어와 문장을 골랐다.
양지바른 자리에서
따듯한 온기로 맞이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당신을 위한 자리는
늘 비워두도록 할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시점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일까?
결국,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까?
당신과
나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치는 자리에도
마음은 피어납니다
지나치듯 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