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지금 생각해 보면 데스게임(Death Game)에 빠지게 된 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오답노트에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이면지에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아빠는 허구한 날 공상질이라며 큰 소리로 화내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눈물을 삼키며, 책상 밑에 숨어 꿋꿋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이디어는 항상 넘쳐났기에 시작은 잘했다. 문제는 끝이었다. 책장에는 채 열 쪽이 넘어가지 않는 공책들이 수두룩했다. 성미는 급하지만 나름 완벽주의라 긴 호흡을 이어가는 게 고역이었다. 어서 사건을 일으키고 싶은데 그것을 쌓아가기 위한 전개 과정을 꾸미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죽였다.
어떻게든 끝내고 싶었다. 주요 등장인물이 죽으면 이야기는 마무리되니까. 갑자기 핵폭탄이 터진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들. 그것이 창조자로서 가장 무책임한 짓임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짓다가 수가 틀리면 종종 그렇게 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자포자기로 시작한 ‘죽음’이 찾아보게 될 정도의 키워드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OCN이나 CGV 같은 영화 전문 채널에서 단골로 방영되던 ‘큐브 2’라는 영화가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할 때마다 봤던 기억이 난다. 공포 장르로 분류되는 ‘큐브 시리즈’ 중에는 유일한 15세 이상 관람가였다고 한다. 본 게 오래돼서인지 아니면 수위가 높지 않았던 건지 특별히 떠오르는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은 없다. 내 기억 속의 ‘큐브 2’는 최후의 1인이 남는, 긴장감 넘치는 탈출 영화였다. 단순히 무섭기만 했다면 중간에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나는 무서운 걸 싫어한다. 특히 귀신이나 유령 따위의 영적 존재가 나오는 미디어를 보고 난 후에는 며칠 동안 악몽을 꿀 정도로 겁이 많다. 예전엔 좀비까지는 괜찮았는데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요즘 것들을 접한 이후론 좀비마저 무서워졌다. 혹자는 인간이 악역인 공포 영화가 현실감이 있어 더 무섭다는데 나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끔찍한 형상이 더 무서웠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맞붙는 데스게임은 무섭지는 않았다. 물론 죽음의 게임이다 보니,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많지만 그것만 견딜 수 있다면 쉽게 즐길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스플래터, 고어, 슬래셔 등의 장르는 즐기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밝힌다. 위 장르는 굳이 찾아보지 않는 걸 추천한다.
데스게임은 데스(Death)와 게임(Game)의 합성어로 목숨을 건 게임을 소재로 하는 장르다. 나는 그중에서도 파생 장르인 배틀로얄(Battle Royale)을 특히 좋아한다. 명칭은 프로레슬링 경기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나의 링 위에 여러 명이 동시에 올라 경기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한 사람이나 한 팀이 승자가 되는 방식이다.
2000년에 개봉한 ‘배틀로얄’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이걸 보면 배틀로얄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각 인물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점이 내가 배틀로얄을 좋아하는 포인트다. 장르 특성상 감정이나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인데, 그 과정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에 무척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과한 캐릭터라고 해도 어차피 죽어버린다면 그리 엄청난 개연성은 필요 없다. 운이 따를 때도 있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능력껏 타인을 죽이는 과정이 오히려 매우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에서 볼 수 있듯,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는 인간이 무엇보다 먼저 충족하려 하는 절대 조건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명한 ‘쏘우 시리즈’는 데스게임이라고 해도 나와 맞지 않는다. 우선 지나치게 잔혹하고, 희생자의 탈출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상황도 제각각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함정은 시청자에게 그저 ‘죽음 모음집’을 전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며 결국 하나둘 죽어가는 과정을 보며 알았다. 내가 흥미를 갖는 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 게임의 존재 이유나 참가 이유보다 어떤 무기로, 어떤 방법을 써서 이기는지가 더 중요했다. 유난히 어려워했던 전개를 타인이 만든 것을 보며, 나는 매료되었다.
난 케이퍼 무비(Caper movie)도 좋아한다. 이 장르는 범죄 영화인데 주로 무언가를 강탈하거나 훔치는 내용을 다룬다. 데스게임이 각자의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해 살아남는 이야기라면, 케이퍼 무비는 그 능력을 합심해 목표를 이루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장르 모두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이 닮았다.
사실 케이퍼 무비를 더 먼저 좋아했다. 이런 영화는 대부분 배경음악이 좋다. 도주씬이 있기 때문인 듯한데,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연료 삼아 달리는 주인공 무리들을 보면 악인이라도 손뼉 치며 응원하게 된다. 데스게임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의 서사보다는 범죄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춘다. 설계자, 운전 담당, 총기 담당, 금고 담당 등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게 선한 이유였다면 분명 박수까지 치진 않았을 것이다.
데스게임이나 케이퍼 무비같은 고자극 미디어를 보고 난 후에 꼭 하는 나만의 습관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힐링 영화를 보는 것이다. 디즈니나 지브리 작품의 대부분이 전체관람가였기 때문에 덩달아 자주 보게 된 것 같다. 따뜻하고 사랑스럽지만 인간적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운 영화들을 보며 균형을 맞춘다. 목숨을 걸든 금고를 털든 다음 날이면 요정과 귀여운 동물들로 잠시 순수한 어른이 된다.
아직은 완전한 주류 장르가 아닌 탓에 웬만한 작품은 다 본 듯하다. 책장 속 앞부분만 도톰한 공책들을 꺼내 본다. 신경질적으로 끝낸 갑작스러운 죽음들은 역시나 우습다. 죽임이면 모를까 이런 죽음은 이젠 쓰지 않을 것이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