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런 말이 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은 지극히 노골적인 질문.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표현해보실래요?”
“스스로에게 값을 매긴다면?”
“당신은 얼마입니까?”
글자 수만 다를 뿐, 사실 다 같은 말이다. 금방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좀 진지한 타입이라 이렇게 곱씹어야 하는 질문은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우습고 은근히 철학적인 질문이라 예능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나 볼법한데, 실제로 맞닥뜨릴 때가 있다. 구직 과정에서다.
이미 낡은 질문이라 요즘 면접 자리나 사전 인터뷰에서는 별로 묻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 별것 아닌 듯해도 서로의 눈치를 제일 많이 보는 첫 번째 또는 마지막 단계. ‘만원’ 앞의 네 자리 숫자, 희망연봉이다.
희망연봉은 이상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상형을 바라지만 정말로 이상형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요새는 이상형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네가 감히?”라며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희망연봉은 희망연봉일 뿐인데 말이다.
내가 ‘희망’하는 연봉이므로 그걸 굳이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시선이 있어 이상형처럼 터무니없는 값을 적지는 않았다. 직전 연봉을 기준으로 적정선을 기재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같은 시기에 취업을 준비했던 동기들은 유사 경력이 있는 내가 가장 빨리 취업할 거라고 했다. 가르쳤던 선생마저 나를 콕 집어 이력서 넣자마자 연락이 올 테니 수료 전, 미리 지원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호응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말을 듣고 나도 모르는 자신감이 싹텄던 것 같다. 그들에게 당신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둥 자기소개서에 이런 내용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둥 얘기하곤 했다. 지금은 그들이 나보다 더 일찍 취업하여 도리어 응원을 받는 입장이 돼버렸지만.
첫 직장은 출퇴근길만 3시간이 넘었다. 지하철에서도 멀미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구역질 나는 하루들이었다. 유일하게 하늘을 보는 시간은 지금은 자양역이 된 뚝섬유원지역의 문이 닫힌 뒤, 3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한 기관사가 청담대교를 건널 때면 힘내라고 아침 방송을 해주었다. 낮은 음질이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꽂은 핸드폰의 음량을 0으로 줄여야 했다. 사람들 틈에 껴 꾸역꾸역 본 바깥 풍경은 눈물 날 정도로 평화로웠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한강을 건널 때마다 울고 싶었다. 죽을 만큼 회사에 가기 싫었다. 나와 같이 지하철을 탔던 사람들은 그 방송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그 시간에 그 풍경을 보고 있을까?
그때는 거리나 급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졸업 후 다들 일자리를 찾는 시기에 나 혼자 멍청히 있을 수 없었다. 최저시급과 별 차이도 없는 급여를 주는 회사를 몇 군데 더 다니고서야 대기업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긴 해도 구내식당도 무료였고 기본 시급이 최저시급보다 높았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나았다. 사실 지금껏 다닌 회사 중 가장 높은 월급이었다.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앞자리가 바뀐 월급을 받고 눈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 값어치도 그만큼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한번 맛본 달달한 숫자는 다신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직종 변경을 하는 중고신입에게 그만큼 주는 기업은 찾기 어려웠다. 어떻게 아르바이트보다 정규직 급여가 더 적을 수가 있냐며 정당한 의문을 품고 친구들과 열을 내곤 했다.
그래서 또 대기업에 들어갔다. 이번엔 아르바이트가 아닌 파견직이었다. 급여가 적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일의 무게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단체대화방엔 나는 없었다. 부서 일정은 당일에 알기 일쑤였다. 파견직은 많은 걸 바라면 안 됐기에 점심시간이면 혼자 큰 호수를 빙글 돌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동호에서 시작해 서호까지 가서 벤치에 앉아 꺅꺅대며 놀이기구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시간이 딱 맞았다. 퇴사할 때쯤엔 복리후생비가 올라 꽤 괜찮은 연봉으로 마무리했다. 더 늦기 전에 정규직으로 경력을 쌓고 싶어 연장할 수 있는 계약 기간을 남겨놓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현재, 몇 번의 입사 제의를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기본적으로 연봉이 성에 차지 않았다. 다른 조건이 아쉬워도 급여만 괜찮다면 다니려고 했는데 그럴만한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연봉을 낮춰 들어가면 다시 올리기 어렵고 그만큼 내 값어치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욕심이었는지 오늘도 여전히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적은 기회로 겨우 면접까지 가서 얻은 건 눈치 없이 부푼 물집뿐이었다. 발가락마다 테이프를 붙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정말, 능력에 비해 과분한 급여를 받았던 건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하니 욕이 나왔고 울진 않았다.
찾아보니, 희망연봉도 나름 전략법이 있었다. 타인의 전략을 차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거의 천만 원의 연봉을 낮췄다. 이로써 나의 값어치, 나의 가치가 천만 원이나 하락했다. 분하지만 현실에 대한 나의 패배다. 나는 이제 조롱받지 않는 이상형처럼 타협해야 했다. 불쾌해도 그게 내 값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