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어차피 너도 나 사랑까진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히 사랑한단 말은 하지 말자, 어때?”
“같은 생각이야.”
나는 제안했고, 너는 받아들였다. 그 시절 난 모든 의미를 과도하게 따져보던 사람이었고, 넌 자존심이 세거나 무척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계약처럼 시작되었다.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내뱉은 말을 바꾸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 했다. 정확히는 못 했다.
사랑은 패딩 주머니 속 깍지 낀 두 손으로 시작해 손부채질하고 땀을 훔치며 끝이 났다. 평소처럼 ‘안녕.’ 인사하며 전화를 끊고 헤어졌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너는 날 진정 사랑했던 게 맞는지.
스무 살에 사귀었던 애는 나와 동갑이었다. 나는 그 애의 첫 여자친구였고 나도 그 애가 거의 처음이었다. 그 애는 자주 삐졌는데 연애가 미숙했던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솔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야말로 ‘애’였다.
기념일마다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사랑’한다고 쓰지 않아서 그 애는 또 삐졌었다. 나는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널 좋아하는 것엔 변함이 없는데 왜 그렇게 그 말에 집착하냐고 했다. ‘집착’이란 말이 경기 신호총이라도 된 듯 그 애는 곧바로 눈을 부릅떴고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그 다툼의 결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관계에서 결과적으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하게 됐다.
그것은 일종의 놀이, 규칙이었다. 00:00, 숫자가 리셋되고 하루가 시작되면 메신저로 먼저 ‘사랑해.’라고 하는 것. 먼저 말하지 못하면 ‘내가 더 사랑해.’라고 해야 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정이 되면 기계적으로 사랑한다고 적었고 덕분에 ‘내가 더.’ 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하게 됐을 때도 표정 없이 보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땐 대상이 한정적이긴 해도 사랑한다는 글이 술술 나왔다. 그때도 말은 힘들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신 때 쓰는 편지의 마무리는 늘 ‘사랑해요.’ 였다. 그것은 부모님께 쓰는 편지의 정형문이었기에 그냥 썼다. 남들도 다 그렇게 했으니까. 실제로 내 동생이 어버이날 쓴 편지와 내가 쓴 편지를 비교해 보면 글씨체만 빼고 거의 비슷했다. 그런가 하면 친구에게 쓰는 편지는 하트는 있어도 사랑은 없었다.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받으면 흐린 눈을 하곤 했다. ‘나는 네 부모가 아닌데, 왜…?’ 이상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에 상응하는 답장을 할 수 없음에 미안하기도 했다.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사랑의 힘이라고밖에 표현 못 할 일들이 넘친다는 걸 안다. 다만 그 힘이 나에게까지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나. 남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주고받는 척하다 보면 괜히 더 쓸쓸해졌다.
자존감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는 나 자신을 결코 싫어하지 않았다. 가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스스로를 낮게 보는 시기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첫 상대는 바로 나일 것이다. 나만큼은 내가 책임질 수 있을 테니까. 희생과 헌신을 남에게까지 할 자신이 현재로서는 없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 복이 와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복이 온다는 뜻이다. 사랑도 그런 자기암시라는 상상을 한다. 정말 그런 암시가 가능하다면 내가 아닌 타인에게 걸고 싶다. 주는 것보단 받는 게 역시 좋으니까. 말로 한다면 “사랑해.”가 아닌 “사랑해라.”가 되겠다. 다만 그렇게 암시 건 사랑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다음 연애에서 사랑은 각자의 몫으로 하려고 한다. 나도 상대가 자기만큼 표현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 가슴이 꽉 막히는 것처럼 내가 상대를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같이 하지 말자고 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니까. 나만 느끼면 될 감정을 굳이 상대까지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딱 맞는 상대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기 어렵겠지만 어딘가는 있다고, 그 사람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외롭지 않다.
내가 ‘외롭다.’고 한다면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견딜만한 현실 속, 마음의 여유가 조금 넘쳤을 때 그것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은 결국 각자의 몫이지만 언젠가 서로의 찰랑이는 마음의 저울이 나란히 멈추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