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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n 17. 2021

공무원 시험이 뭐길래(1)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다

2019년 9월 퇴사를 감행한 뒤, 이런저런 일을 시도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공기업에서 총 세 번 계약직으로 전전하며 일했다. 친구와 해외 쇼핑몰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쇼핑몰은 중간에 빠져나오긴 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부모님께서는 거의 20년가량을 공무원을 하라고 나에게 강권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거절해왔다. 내 삶을 온전히 부모님의 손에 맡기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 1년 4개월간 일을 하면서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을 찾았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난 명확한 규칙에 따라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이었다. 창의적인 일에는 소질이 없지만, 내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에는 익숙하고 또 잘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공무원이 내가 견딜만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과감히 공무원 수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한다고 했지만, 두려웠다. 매년 수십만 명이 뛰어들고 그중 극소수만 성공이라는 기쁨을 얻는 비정한 세계였으니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계속된 실패로 경력 없이 시간만 지나 취업시장에서 낙오되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이 났다. 하지만 나에게 두 가지 메리트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 구분모집을 통해 따로 경쟁하여 합격선이 일반 전형보다 다소 합격선이 낮다는 점과, 석사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논문을 보며 영어에 대해 익숙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두 가지를 믿고 시험에 도전했다.


공무원 수험생활에는 많은 돈이 든다. 학원비 혹은 인터넷 강의료, 도서비, 독서실비 등. 하지만 찾다 보니 장애인 고용공단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박문각과 에듀윌, EBS와 제휴하여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다만 박문각과 에듀윌 같은 경우는 장애인 고용공단 자체 선발고사를 통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사람을 선발한다. 다행히 인원 제한 없이 평균 일정 점수만 넘으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선관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선거가 끝나면 돈 나올 구석이 없던 나는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이 제도를 이용했다. 한국사에서 눈물 나는 점수를 받았지만 다행히 커트라인을 넘어 강의를 수강했.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보다. 들어야 할 강의는 왜 이렇게 많으며, 사야 할 책은 왜 이렇게 많고 비싼가. 기본서는 과목 당 1000페이지가 넘고 강의는 각각 100 강의에 육박했다. 이걸 기본으로 하고 기출문제까지 완벽히 독파해야 한단다. 문제만 맞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와 보기를 모두 외워야 한단다. 이 말에 더럭 겁을 먹기 시작했다. 1월에 시작한 나는 4월 국가직, 6월 지방직까지 모두 완성해야 했다. 이걸 해내려면 당장 선관위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책임감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전업 수험생들은 하루에 공부만 10~12시간씩 하며 이 일들을 해냈을 텐데, 일하며 준비하는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단 2022년 시험을 대비하여 준비한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온해 안에 끝장을 봐버리고 싶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시험은커녕 이 수험생활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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