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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l 14. 2021

공무원 시험이 뭐길래(2)

두 달간의 수험생활을 돌아보며

  다른 공무원 수험생 분들이 본다면 소제목부터 굉장히 오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각 잡고 공부한 시간은 2개월 남짓이니까. 올해 1월부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고 호기롭게 떠들고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보궐선거 때문에 선관위에서 일을 하느라 공부를 시작한 건 4월부터였다. 국가직 시험이 4월 중순이니 경험 삼아 본다고 쳐도, 6월 지방직 시험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난 시간이 생기면 나태해지는 사람인가 보다. 물론 일을 하느라 공부를 붙잡을 시간조차 녹록지 않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내년 시험을 바라보고 하는 거니까.'라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를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믿고 하루에 문법 인강 2~3개 수강, 단어 3일 치 암기만 빠지지 않고 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4월까지 빠르게 흘러갔고, 선거운동 기간에는 스케줄 근무를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도대체 이렇게 공부를 해서 되긴 하는 걸까. 하지만 괜찮다. 나는 2022년 시험을 바라보고 있는 거니까!


  선거가 끝나고 그 주 토요일에 국가직 시험을 봤다. 영어는 공부를 조금이라도 했고, 나머지는 상식의 영역에서 풀기로 했다. 어차피 붙지 못할 시험인데 시험장 분위기나 보자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과락이 없었다. 심지어 영어는 점수가 80점으로 꽤 높았다. 그때부터 올해 시험으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잘해서 이번에 운으로라도 붙으면 빠르게라도 입직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였다.


  이때부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붙자.  처음엔 의욕이 충만해서 인강을 하루에 세 과목 나누어 12개씩 들으며 공부했다. 한동안 손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니 등, 허리, 목이 아파왔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 일을 수년씩 해왔던 거지? 이 짓을 1년 내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원 입시 때도 이렇게 공부한 적이 없었는데. 전례 없던 학습 강도에 몸이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일 남짓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 우울과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안 되면 어떡하지? 계속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대로 낙오자가 되면 어떡하지? 하던 일을 계속할걸 괜히 퇴사했구나. 젠장.' 각종 후회와 걱정이 내 머릿속을 짓눌렀고, 오히려 이런 생각들이 공부를 방해했다.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인데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려 시작한 양 매일 눈물을 흘리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싶었다. 왜 그렇게 나 자신을 나무랐을까 싶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인데 마치 머릿속에선 내가 합격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왜 나는 내가 바라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스스로 공무원 시험이 내 인생 마지막이라고 채찍질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세상에 할 일은 많고 아직 나는 젊다고 위로해주지만,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결국 정신과에 갔다. 심리상담만으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머리가 고장 난 듯 비합리적인 생각이 반복되었다. 우울감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니 마법처럼 우울감이 줄어들었다. 대신 내가 정서적으로 무딘 사람이 되었다.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웃거나 울지 않고, 기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마치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그래,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터디 카페와 독서실을 전전했다. 스터디 카페는 내 자리가 없어 매일같이 짐을 옮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외로움을 잊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미련한 짓이지만. 내적 친구라고 하던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며 괜스레 친밀감도 생겼다. 오늘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무슨 일이 있나 생각도 해보고. 스터디 카페 앞 백반집 사장님과도 친분이 생길 무렵, 지방직 시험을 봤다.


  기출문제도 다 못 보고 들어가 조바심이 컸다. 영어를 제외하고는 진도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난 국가직 시험 때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던 나는 이번 시험에서 시간 분배라도 확실히 하자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너무 빠르게 풀었는지 시간이 20분이나 남아버렸지만, 답을 고치면 틀릴 것이고, 나머지는 어차피 풀지 못할 문제이기 때문에 미련은 버렸다.


  결과는 필기시험 합격.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와 찬사가 이어졌다. 필기 합격의 기쁨도 있지만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건 아니기에 1 배수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는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필기시험에 떨어졌으면 수술 일정부터 틀어지고,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지난날 마냥 높은 산을 보고 지레 겁먹어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내가 이번엔 미끄러지든 자빠지든 포기하지 않고 산에 오르기를 시도하지 않았나. 물론 그 산의 큰 고개 하나도 넘었고.




  이번 공무원 시험의 경험은 나에게 단지 지나가는 시험 그 이상의 의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렵다고 하는 시험을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맞섰다는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혹평하던 내 머리가 그렇게 멍청이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면 된다는 말보다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더불어 목디스크도 얻었지만.


   내 점수가 어떻든, 등수가 어떻든 간에 면접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거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힘을 알았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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