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이 하기 싫다고 나온 지 5개월쯤 되었을 무렵, 대만 여행의 여운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줄어만 가는 통장 잔고에 점차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퇴사를 하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은 다양한 경험, 특히 일 경험이었다. 일 경험은 다른 경험 없이 상담심리사로만 달려오던 나에게 새로운 진로를 설정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행여나 내가 다시 상담의 길로 돌아오게 되더라도 그때까지 경험해온 것들은 상담자로서의 큰 자산이 되어 성인들을 상담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었다.
1.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다.
일단 워크넷에 구직신청을 해놓고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계약직으로 사무직 일자리가 있다는 문자가 왔다. 이름하야 '공정선거지원단'. 얼마나 멋진가.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 장애를 얻은 이유 때문인지, 그냥 부모님들의 꿈이었던 것인지, 내가 펜을 잡고 공부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공무원을 하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그래서 그 반감으로 오히려 공무원은 나에게 하고 싶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게 외치던 공무원, 안정적이고 연금 잘 나오고 그렇게 장점만 외치던 공무원.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알까? 정말 공무원들의 일하는 환경이 나와 맞는 것 같아 내가 정말 공무원을 하게 될지.
사실 선관위 공고를 보고 올해 국회의원선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선거기간 외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무지원 업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공고를 보고 대체 어떤 업무를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선거운동 정황 수집, 불법선거운동 단속지원, 정치자금 관련 업무 지원 등. 감도 잡히지 않아 솔직히 겁이 났지만 일단 면접을 보고, 일을 하게 되었다.
2. 정말 다른 업무환경
지금까지 학교, 그중에서 꽤나 독립적인 부서에서만 일해왔던 이 업무환경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놓고 같이 있는 상담사 선생님과 사업이나 상담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던지, 학생들이 오면 자유롭게 교류하는 분위기에서 일해왔었다. 하지만 이곳은 각각 파티션이 깔려 있고 각자 자신의 모니터만 보며 말없이 할 일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느 회사든 다 이런 모습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적응할 뿐이었다.
3. 그들은 항상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거에 대해 인지하는 기간은 2주 남짓이다. 벽에 선거벽보가 붙고, 집으로 후보에 대한 공보물이 날아들고, 길거리에 각종 현수막이 나부끼며, 아침부터 선거유세차량이 우리의 달콤한 낮잠을 방해하는 기간. 이 기간 전에 지원단이 준비해야 할 일은 이 2주간의 전쟁을 대비하는 일이었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및 각종 위반사례를 공부하는 일. 법 위반 여부를 바로 단속하고 법 관련 민원에 응대하려면 미리 철저히 공부해놔야 한다. 위법사항을 놓치고 단속하지 않거나 민원에 정확히 응대하지 못하면 민원인이나 반대세력의 거친 항의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없이 교육을 받고, 시험도 본다. 처음 들어왔을 때 계장님께서 “공부하는 거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공무원은 주기적으로 부서와 기관이 순환된다. 그럴 때면 물론 인수인계도 받겠지만, 나머지는 매뉴얼을 보고 스스로 익혀야 하는 부분이 많다. 사기업과 비교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공무원이 편하게 일한다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당장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수많은 민원인과 전쟁을 치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 전교 3등을 했다. 담임선생님이며 부모님은 내가 될 놈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좋은 학교도 가고 사법고시를 봐서 판검사를 하라고 하셨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게 멋있어 보이니까 장래희망도 그리 정했었다. 근 20년이 지난 후 선거 관련 법률 몇 가지를 공부해보고선 깨달았다. 법은 아무나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선거운동 기간 전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이다음은 폭풍 같은 선거운동 기간의 전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