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를 가로막는 것 사이에서
반 구십이다. 이 나이에 나는 ‘진로 찾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십 대와 이십 대를 허투루 보낸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열심히 살았었다. 학창 시절 12년을 개근했고, 평범한 공부머리를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되돌아보면 이룬 것도 없어 보인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공허하다.
어린 시절,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지금 그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머뭇거려진다. “니까짓 게 뭘 해” 라는 머릿속 메아리. 엄마에게 하고 싶던 일을 말했을 때, 내게 되돌아온 말이다. 삼십 년이 지나도 어쩜 아직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엄마의 말과 행동의 모든 기준은
‘돈’이 되느냐 아니냐였던 거 같다. 엄마는 ‘그런 건 돈만 많이 들고 돈이 되지 않으니 관두라’고 했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방황한 게 아닌가 싶다. 수재였던 오빠는 엄마의 바람대로 돈 잘 버는 전문직인이 되었다. 나에게는 쓸 돈이 없다고 했던 엄마는, 내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자 ‘키워준 값’을 받아갔다. 굳이 그렇게 받아가지 않아도 줬을 텐데, 키워준 값을 돌려줄 때마다 부모에 대한 정도 함께 줄어들었다.
그래서, 돈 잘 버는 오빠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오빠는 아직도 엄마에게 키워준 값을 갚고 있다. 행복의 기준이라는 게 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신 옆에서 돈만 벌어다 주고 있는 아들을 끼고 사는 엄마는 그래서 행복할까?
엄마의 말은, 엄마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모르는 게 있다. 나도, 오빠도 엄마에게 준 돈은 키워준 값이 아니다. 그건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정이고 사랑이다. 평생을 백화점에서 산 옷과 장식물로만 엄마가 행복을 느낀다면 퍽 애석한 일이다. 삶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나이가 많아진다고 가능한 건 아닌가 보다.
꿈을 꾼다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이다. 분명한 건, 꿈꾸는 동안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로소 행복에 가까워진 걸까.
이제 나를 가로막는 머릿속의 작은 목소리에게
“꺼지라”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