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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04. 2021

아오지까지_편집자후기

세 번 탈북한 소년의 나라

이런 책을 편집했습니다.


<아오지까지: 세 번 탈북한 소년의 나라>


세 번 탈북?

아오지? 아오지 탄광의 그 아오지??


궁금하시죠?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뒷부분에는 이 책을 편집한 두 사람의 편집자의 대화가 있어요. 책이 나오기까지의 기획부터의 뒷얘기입니다. 제가 편집한 책들은 항상 편집 후기를 붙이는데, 이걸 좋아하시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먼저 공개합니다.



마담쿠: 저희가 2020년 말에 <고통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요. <고통에 대하여> 저자 김영춘 님이 당시 국회 사무총장이었습니다. 그때 이 책의 저자가 국회 사무총장 비서관이었어요. 매우 친절하고 성실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자유로운 팀 분위기 속에서도 약간은 경직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깍듯함과 다정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됐고요. 대화를 하면서 특유의 말투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디시냐고 물었거든요. 그때 함경도라고 답하시면서 그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코디정: 정체라니요. (ㅋㅋㅋ) 그 무렵에는 아직 우리가 저자의 책을 기획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고통에 대하여>라는 책에 집중할 때이기도 했고, 솔직히 ‘탈북민’에 관해 책을 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북한을 모르고, 탈북에는 관심이 없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 비서관이 탈북민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저는 그저 ‘아, 그렇구나’ 정도였어요. 그럼 에도 이 책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마담쿠: 사석에서 그의 탈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자세한 내막은 몰랐고요. 단지 이런 문구로 표현되는 이야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라는 거예요. 저자를 국회의원 비서로 채용하는 데 결정 적인 역할을 했던 신 모 보좌관님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었지요. 궁금하더라고요.


코디정: 네. 저도 궁금했어요.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것일까? 막상 당사자의 표정과 말씨에서는 전혀 그런 사연이 느껴지지 않으니 반신반의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말씀하신 보좌관 개인의 풍부한 감성에서 비롯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정작 당사자에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면서요?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고요. 그 정도까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저자와 상당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편이었는데 사무적인 관계다 보니 사적인 질문을 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지나가는 질문으로 “언젠가 책을 쓰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물었지요. 대체로 사람들은 한 번쯤 자기 책을 내고 싶어하거든요. 저는 그냥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고 인사치레처럼 그렇게 물어봤는데 조 비서관이 아주 진지하게 답하더라고요. 그럴 생각이라고요. 그때 그 짧은 순간에 저는 편집자 특유의 직업 병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책의 ‘상품성’을 계산했어요. “그래요?”라고 답하면서 “우리 나중에 한번 만나서 얘기해 봐요.” 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이건 굉장히 어려운 출판기획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담쿠: (웃음) 네, 저도 이해해요. 우리 같은 편집자들은 저자의 이야기를 독자가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니까요. 게다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드라마’라면 더욱 그렇고요. 자칫 불쌍한 탈북민의 뻔한 스토리로 소비되는 것을 저희가 원하지 않으니까요. 아직 탈북민은 낯설고, 소수자들이잖아요. 독자가 그런 소수자의 낯선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책 내용에 몰입할 수 있을까 걱정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 아는 스토리다'라는 비판을 듣게 될 것 같기도 했어요. 실제로는 우리가 탈북민의 인생과 사연을 잘 모르잖아요? 그러나 탈북민을 패널로 초대하여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은 인기도 있고 그렇게 탈북민이 상품으로 많이 소비되다 보니 마치 탈북민의 목소리가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까 봐 그것이 염려스러웠지요. 어쨌든 이런걱정과 염려 속에서 우리가 저자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코디정: 국회 사무총장 비서관 일을 그만두고 뭘 하고 있는지 근황을 여쭈니 잠시 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책을 쓰기 좋을 때라고 조언하면서 두 번에 걸쳐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끝에 출판계약을 하면서 저자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저자는 할 얘기가 너무 많은 사람이었어요. 세 번이나 탈북하게 된 인생 드라마, 번민하면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성장기, 정치에 대한 의견, 통일에 대한 견해와 주장 등등. 누구나 한 권의 책에 자기 생각을 다 담고 싶겠지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것이 책을 처음 쓰는 사람들의 순정이니까요. 하지만 독자는 저자의 첫 번째 저작임을 참작하면서 읽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독자들을 위해 저자의 욕망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저자 생각의 팔 할 정도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저자가 먼저 정해야 할 ‘글쓰기의 페르소나’와 글을 묶는 스타일까지 안내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했습니다. 일종의 편집자 가이드라인이었어요. 처음 책이 잘 되면 그 후로도 더 좋은 책을 여러 권 쓸 수 있다면서 설득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저자가 편집자들을 믿고 성실히 따라와 줬어요. 저자의 성실함에 감탄했습니다.



마담쿠: 그 결과도 아주 좋았고요! 아까도 말씀한 것처럼 사실 저는 저자의 이야기가 불쌍한 탈북민의 탈출 스토리로 소비되길 원치 않았고, 그렇다고 책에서 북한에 대한 엄청난 비밀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탈북민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평범하게 적응하면서 국회의원 비서가 되고 책의 저자가 되는,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까지 증명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원고를 보니 저자는 제 우려와 의도를 단숨에 뛰어넘어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사회를 걱정합니다. 이런 점이 편집자의 기획을 넘어선 신선함이 아닐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를 되묻기도 했죠. 어땠어요? 이 책을 편집하면서.


코디정: 출판계약을 하기 전에 저자가 언론사에 기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 이 사람, 글을 잘 쓴다’라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저자 문장력이 책의 무게를 잘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편집과정에서 원고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2장 내용이 1 장에 있었고, 1장이 2장이었습니다. 현재의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뻔한 탈북민의 이야기가 아님을 나타내려는 의도였지만, 그러다 보니 탈북 드라마의 감동이 다소 힘을 잃더라고요. 결국 시간 순서대로 1장의 내용과 2장의 내용의 위치를 바꿨습니다. 과연 이게 잘한 편집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편집자로서는 만족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편집하면서 원고 속에 은근히 담긴 이북말의 묘미를 느꼈는데요. 그게 재미있었어요. ‘볶다’라는 말을 ‘닦다’로, ‘쓰다’를 ‘쓰겁다’로 표현하는 함경도 사투리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잘못 쓴 글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전을 보니 이북 사투리라는 거예요. 굳이 표준어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대로 뒀어요. 동사를 쓸 때에도 저자는 복합동사를 많이 썼어요. ‘뒤덮이다’, ‘내려앉다’, ‘맞바꾸다’, ‘쥐여 주다’, ‘떠다니다’, ‘따라나서다’, ‘잡아끌다’, ‘내려놓다’, ‘쥐어짜다’, ‘팔아먹다’, ‘스쳐지나가다’ 등의 서술어 표현인데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이런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게 이북말의 스타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쨌든 덕분에 제 한국어가 더 풍부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담쿠: 저자가 고향의 풍경을 추억하는 글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옥수수 밭에는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들과 학생들이 뭉게뭉게 앉아있다.”라는 문장을 읽고 ‘뭉게뭉게’의 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이 단어는 구름 따위에서 나타내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잖아요? 그런데 사전을 확인했더니 이게 이북 말인거였어요! 이 단어도 그대로 뒀습니다. 언어를 정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언어를 더 풍부하게 하는 역할도 책이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자는 아마 북한 얘기만큼 미래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주로 남북교류, 평화체제, 통일 같은 내용이겠지요. 하지만 책은 한정된 틀을 가지고 있고 우리 편집자들의 기획 범위도 제한적이어서 그 점은 저자나 우리나 아쉬워합니다.


코디정: 그래도 미래에 대한 저자의 진심을 느껴요. 저자가 통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여행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굉장해서 제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지금껏 통일이나 남북관계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자의 저 문장만큼 인상적인 표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에요.저 한 개의 문장이 워낙 깊고 풍성해서 마치 한 권의 책처럼 느껴져요.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을 것 같은 책 말이에요. 저자의 한결같은 소망처럼 '여행 정도면 괜찮은 시대' 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마담쿠: 저자의 그런 소망은 과거에서 비롯되었어요. 사석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저자는 한결같이, 그리고 평안하게 대답했습니다. "힘들었어요." 저자의 표현이 어딘가 이상했어요. 왜 힘들었는지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었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텐데도 어느 정도 힘들었는지에 대한 수식어도 없이 그냥 힘들었다는 거예요. 정작 당사자가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니,저는 솔직히 그 힘듦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수다스럽지 않은 성격때문에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감정묘사를 잘 하지 않는 것이 이북의 스타일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곧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저는 그 당시 어려움과 그의 감정을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절박한 상황에 처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수식어도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힘들었어요'라는 단어 하나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탐험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가 제가 평소에 가진 사고의 깊이보다 훨씬 깊고 두터워서, 편집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제 마음을 독자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디정: 마담쿠가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좋은 책이 틀림없는 거겠지요? (웃음) 이 책을 읽으면서 탈북민의 삶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또한 그들의 고향인 북한사회에 대해서도, 저자의 표현대로 거기도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당연한 것조차 관심이 없으니 화석처럼 굳어버린 편견으로 북한을 괴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요. 탈북했다가 잡혀서 북송되면 당연히 처형당하는 줄 알았지 뭐예요?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어째서 하게 됐을까요? 저는 뭐든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좀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공존,통일 뭐 이런 단어들을 반추해 봤습니다. 끝으로 탈북민들이 자유롭게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미래를 저자처럼 저도 꿈꿔 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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