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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7. 2018

에세이6_나는못났다

나는 못났다

우선 숫자에 약하다. 덧셈도 할 줄 알고 구구단도 외우지만 숫자에 어둡다. 그러므로 명석하지 못하다. 계산이 서툴다. 더듬더듬 계산한 숫자를 어느새 까먹는다. 어제 계산한 것을 오늘 다시 계산하고 내일이면 또 잊는다. 이문에 밝지 못하고 자주 손해를 본다. 빈틈이 많아서 자자란 손실이 생긴다. 손해와 손실에 익숙하다. 돈을 벌기는 하지만 모으지는 못한다. 열심히 일을 했더니 큰돈이 들어왔고 더 큰돈이 나갔다. 실패를 여러 번 하니까 맷집만 생겼다. 나는 성공을 모르는 사업가다. 여러 번 넘어진 것이 먼저인지 그만큼 일어난 것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나는 사람에 약하다. 카리스마가 없다. 겁이 많고 허약하며 잡생각이 많다. 아내가 무서워서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아내한테 칭찬받으면 행복하다. 직원이 인상을 쓰면 기가 죽는다. 직원한테 칭찬을 들으면 행복해진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까닭은 아이들 앞에서는 기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자체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부탁은 무섭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부탁을 해보는 일만큼이나 힘들다. 사람 사이에 밀고 당김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가게에서 흥정을 못한다. 웃으면서 당하고 손해를 보고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요샛말 ‘호갱님’은 나를 칭하는 낱말이다. 


나는 뒤끝이 길다. 남이 무심코 던진 말을 수집해서 곱씹으며 괴로워한다. 그 사람의 본뜻은 모르겠다. 나는 탐정이 아니며 심리학자도 아니다. 내 감정은 언어의 겉면을 따른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말에 오래도록 순종하고 악평과 비난에 놀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언젠가 내 칼럼에 달린 ‘악플’을 읽고서는 잠을 자지 못한 적이 있다. 나는 마음이 굳세지 못하고 뒤끝이 긴 종족이다. 우리 종족은 ‘남자답지 못하게 왜 그래?’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상한 감정을 재빠르게 매조지지 못한다. 뒤끝 없는 종족은 참 경이롭다. 그렇지만 그런 종족과 함께 있으면 나는 주눅이 든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위인이 될 만한 그릇은 못된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위인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추억을 풍기는 사진이 있어야 한다. 유년기 사진이나 학창 시절의 풋풋한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개인의 역사성을 어필하는 것이다. 둘째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생동감 있게 호명된 과거가 그를 빛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삼십 대 이전의 사진이 없다.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는 휘발됐고 어쩐지 슬픈 흔적만 남았다. 옛날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도 잘 잊곤 한다. 부부싸움에서 내가 항상 밀리는 까닭은 아내의 기억력에 도저히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뭔가 잘못할 때마다 수첩에 메모한 적이 있었다. 크게 혼나서 그만뒀다. 


나는 수다스럽다. 하지만 차근히 말하지는 못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를 ‘어버버’라고 놀렸다. 소년 시절 나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고 발음도 부정확했다. 그런 놀림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어버버였으니까. 성인이 돼서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종종 말을 더듬는다. 입술과 대뇌가 따로 놀 때가 많다. 머릿속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생각을 하지만 입은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입술이 수다스러운 게 아니라 생각이 어수선한 탓인지도 모른다. 짧고 굵고 명확하고 그러면서 긴 여운을 주는, 절제미 있는 말을 나도 하고 싶다. 영화배우 정우성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도 못 된다. 집념이 부족하다. 체념하기 일쑤다. 나는 미래를 낙관한다. 그런 낙관은 막연하며 대개 근거가 빈약하다. 반면 현실은 냉정하다. 인정머리 없는 결과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방문한다. 그러면 나는 쉽게 항복하고는 다른 꿈을 채집하러 어슬렁거린다. 내 낙관론의 팔 할은 허풍일지도 모른다. 허풍의 질량은 작고 체념하기도 쉽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못났다. 태어났을 때, 아차 싶었다. 천민이었다. 늑대 소굴에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자 무리 중 가장 학력이 높았다.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태몽은 이무기였다. 몹시 시끄러웠다고 했다. 외모는 더 못났다. 앞으로 내 인생이 순조롭다면 그건 내가 탁월해서가 아니다. 누군가 도와줬겠지. 


(월간에세이 2015년 3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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