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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7. 2018

에세이7_돈의본질

돈의 본질

돈의 본질은 소비에 있다. 쓸까 말까 망설이면 돈을 쓰자. 지갑은 나약하지 않다. 맛있는 것을 먹고 기왕이면 더 좋은 상품을 사자. 웃으면서 소비하고 대수롭지 않게 돈을 쓴다. 그렇게 해서 자꾸 돈을 내게서 밀어내면 돈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면 별수 없지. 겸손하게 일을 한다. 비축한 현금이 적다는 사실보다는 노동하면 돈이 생긴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그렇다면 다시 본질에 순종해서 돈을 소비한다. 왜냐하면 돈은 쓰이기 위해 탄생했으니까. 


올해로 결혼한 지 십 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좌면우고하지 않고 노동을 했다. 따져 보면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도 쥐고 있는 돈이 별로 없다. 열심히 일해서 버는 만큼 돈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축을 모른다. 수입이 늘어나면 거기에 맞춰 지출도 늘렸다. 빈곤하게 자란 탓에 꾸준히 돈을 모아야겠다는 초심은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아내와 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미래를 위해 도를 닦지 말고 그저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 소수자는 다수자보다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게 마련이다. 자기도 적응하기 바빠 죽겠는데 외국인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럴수록 맛있는 것을 먹고 마셨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지갑에게 사정을 묻고 그것을 샀다. 


소비를 통제하지 않으니 여전히 무주택자 신세다. 자산관리 전문가가 우리 집안의 소비형태를 들여다보면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남이 보면 불필요한 물건이 많다. 지나치게 많은 월세를 부담한다. 규모가 없고 계획이 없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자꾸 밀어낸다. 한밤중 아내와 와인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가 서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 우리는 돈에 핍박을 받지 않고 살았다. 돈을 부지런히 내보냈다. 돈과 친밀해질 기회가 없었다. 돈을 써서 새로운 것을 취했다. 그러면서 세상사 여러 것에 대해서 우리의 취향을 만들어나갔다. 취향을 갖고 인생에 무늬를 새기려면 돈을 써야 한다. 물론 손해나 손실이 적지는 않았을 게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잊었다.  


이렇게 십 년을 보내니 면역 같은 것이 생겼다. 설령 큰돈이 우리를 유혹하더라도 웃으면서 사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소비할 만큼의 돈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돈은 스스로 일을 해서 벌 수 있다. 소비욕이지 소유욕은 아니다. 그것은 투기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사람은 소유하기 위해 투기하지 문물을 얻기 위해 투기하지는 않는다. 한편에는 소비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노동이 있다. 노동이면 충분하다.  


말하자면 저축은 역리며 소비는 순리다. 부지런히 절약하며 돈을 모으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축은 돈의 본질을 거스른다. 소비를 참아야 한다. 부작용이 생긴다. 문물을 취하기보다는 돈을 취한다. 돈을 묶어 두려다 거꾸로 돈에 묶인다. 돈에 집착하고 돈을 측량해서 남과 비교한다. 유혹에 약하고 투기에 빠지기 십상이다. 물신숭배와 자본주의의 악함을 공연히 비난하면서도 사생활에서는 계산이 빠르고 돈을 밝히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아마도 돈과 너무 친밀해져서가 아닐까. 물론 세상이 요구하는 돈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노동을 해서도 좀처럼 소비할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문제다. 고약한 사회 문제. 돈의 본질에 반하는 사회 말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돈의 축적과 돈의 지출이 사업을 구성한다. 돈을 규모 있게 지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 함께 전략을 짜서 일을 한다. 돈을 아까워하는 인물은 사람을 돈으로 평가한다. 그런 인물이 경영하는 회사보다는 돈을 사람에 투자하는 회사를 사람들은 칭송한다. 말하자면 거기에서도 돈의 본질은 소비에 있는 셈이다.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 본질이 있다. 그것의 본질은 이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저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싸움이 벌어지고 패거리가 생긴다. 길이 막히면 우회를 생각해 봄직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복수의 본질을 생각해냈다. 그래, 플라톤은 정확하지 않아. 이데아가 아니라 ‘이데아들’이 적당하지. 감춰진 본질이 있는가 하면 드러난 본질이 있다. 이것이 있다면 저것도 있다. 모든 존재에는 고유한 ‘본질들’이 있다. 나는 그런 본질들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선택이 취향이다. 돈의 본질은 소비에 있다. 



(월간에세이 2015년 12월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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