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 침해 관련 내용증명 실무
이번 학기에는 숭실대학교 학생들에게 <지식재산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 경험지식을 가르치는 건 정말 보람있는 일이더군요. 한 학기가 금방 지나갑니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싸우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입니다. 소송하지 않고 그 전 단계에서 문서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면 꽤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10년 간의 그런 식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컨설팅을 해 왔는데, 대부분 해결됐습니다. 단점 있습니다. 제가 돈을 못 벌더군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권리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재판을 통해 해결합니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상식이자 교양입니다. 자력구제는 불법행위입니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해결>이라는 관념에서 어떤 단어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상식과 교양이 달라집니다. 만약 ‘재판’에 가중치를 둔다면 별수 없습니다. 소송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결’에 더 큰 관심을 둔다면 재판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재판을 선택한다면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변호사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고 능력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호사 수임비용만 준비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소송은 당사자의 공방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만 열심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정성껏 싸웁니다. 그러므로 이 분쟁은 자연스럽게 번집니다. 침해를 했느냐는 재판에 그 권리가 유효하느냐라는 쟁송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권리 X에 대한 분쟁이 권리 Y에 대한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재판은 3심까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급재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전체 소송비용은 처음 변호사 수임 비용의 몇 배에 이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승소해서 얻는 배상금으로 소송비용을 메울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손해배상금이 재판에 소요된 비용을 상회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근래 특허침해에서 비롯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손해액의 3배의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허법에 도입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손해액 산정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일관되게 소극적인 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한편 소송은, 법무조직이 완비된 대기업이 아니라면, 인력을 낭비합니다. 설령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은 선임한 변호사와 긴밀히 소통해야 합니다. 기업은 멍청한 사람에게 소송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명철한 사람에게 분쟁을 맡깁니다. 그런데 그이는 조직 내에서 맡고 있는 다른 업무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다른 노동과 책임이 추가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추가된 노동과 책임에 대한 대가는 없습니다. 재판은 시간의 함수입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다가 담당자가 퇴사하는 일이 발생하거나 담당자가 교체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어째서 이 소송을 하고 있는 거지?”, “소송의 쟁점이 뭐였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재판만 시간의 함수가 아닙니다.
지식재산 자체가 시간의 함수입니다. 분야마다 다릅니다만, 시장도 동적으로 변합니다. 한때 소비자들이 열광했던 제품도 시간이 흘러 관심사 바깥으로 잊히곤 합니다. 그 결과 과거 중요하게 여겨졌던 지식재산 자체가 이제 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식재산으로 변모해 버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항까지 통찰한 다음에,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으로는 복잡한 방법보다는 단순한 솔루션이 좋습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보다는 저렴한 해결책이 좋습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길보다는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바람직합니다. 이런 생각까지 이르고 보니, <권리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재판을 통해 해결한다>는 명제는 참된 명제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올바른 처세법에 불과합니다. 실정법만이 법률이라고 생각하는 착오와 비슷한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을 통해 해결>이라는 관념에서 ‘재판’이 아닌 ‘해결’에 가중치를 두기로 합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화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만나서 대화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일단 문서로 대화합니다. 또한 ‘의사표현의 대리’를 통해 대화합니다. 실무적으로는 <내용증명 문서>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경고’가 아니라 ‘대화’라는 점입니다. 협박조로 작성된 경고장을 남발하면 불법행위에 해당합니다. 전문가에게 사건을 의뢰하되, 가급적 간단하고 쉽게 끝내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전문가는 소송을 통해 큰 수익을 얻고자 욕망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내용증명 문서로 상대방을 잘 설득해서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자극해서 분쟁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의사가 명백하고, 전문가가 능력이 뛰어다나면 가능한 솔루션입니다.
분쟁의 사전 단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의 개요는 이러합니다. 분쟁은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감정과 이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이성에 호소합니다.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분쟁 상대방의 감정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견인합니다. 상대방은 바보가 아닙니다. 감정이 배제되는 상황만 조성되면 상대방은 유불리를 냉정하게 계산하게 됩니다. 그러면 재판까지 가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재판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단점을 상대방도 이해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문서입니다. 문서에 당사자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이 문서에 표현되는 생각은,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고발한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두세 쪽 분량의 문서로 표현하면 됩니다. 다만, 매우 섬세한 언어를 사용하되 전략적이며 심리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지식재산 침해에 관련된 사실을 담되 사실에 감정을 섞지 않습니다. 함부로 침해를 단정해서 협박한다면 그런 문서를 보내는 행위 자체가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유념하십시오.(대전지법 2009. 12. 4. 선고 2008 가합 7844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 선고 2014 가합 55194 판결, 특허법원 2021. 9. 14. 선고 2020나2004 판결.)
문서의 독자는 당사자만이 아닌 제3자도 포함됩니다. 그 제3자는 아직 베일 속에 있습니다. 재판관일 수도 있고, 업계의 큰손일 수도 있으며, 언론일 수도 있고, 상대방 또는 우리의 거래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제3자가 이 문서를 읽으면, 적어도 우리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 제3자로 하여금 우리에게 공감하도록 심리적 편향을 만드는 표현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따라서 사건의 개요는 매우 쉽게 파악될 수 있어야 하며, 논리적이고 선명해야 합니다. 문서에 요구가 담길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사건을 해결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요구가 담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때 상대방의 역량과 상황을 초월하는 요구는 배제됩니다. 그런 요구 자체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요구를 검열하면 되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내용증명 문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당사자 표시
시작 인사말
상황
요구
종결 인사말.
제목 | 적절한 제목을 사용합니다. 옛날에는 ‘특허침해경고장’이라는 단정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오늘날 정서에는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특허침해에 관련한 협조 공문’이라는 순화된 표현이 좋고, 간단하게 ‘협조문’도 좋으며, ‘특허이슈에 관해 확인을 구합니다’라는 문장 형식의 제목도 좋습니다.
당사자 표시 | 문서를 작성한 당사자를 표시합니다. 이름, 연락처, 주소를 적습니다. 대리인이 작성했다면 대리인의 이름을 적습니다.
시작 인사말 | 인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사 표현 때문에 사실관계와 법리가 바뀌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상대방이 듣기 좋게 인사해도 좋습니다. 옛날에는 “귀사의 일익 번창을 기원합니다.” 같은 식으로 표현했는데, 일본에서 유래된 이런 문장은 감정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불리하지도 않지만 유리하지도 않습니다. 기왕이면 계절 인사를 하거나 상대방을 축복하거나 또는 당시의 시장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인사하면 됩니다. “화창한 봄날 같은 발전을 기원합니다.”,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혔던 코로나 대유행의 위기가 이제 저물고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무더운 여름도 끝나 어느덧 가을 하늘이 청명합니다. 하시는 일마다 올바르면서 큰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등으로 인사말을 작성합니다.
상황 | 문서의 핵심 부분입니다. 법적인 기능만을 고려하자면 한두 문장으로 적으면 그만입니다. 권리를 표시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만으로 족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특허 제1234567호를 보유한 정당한 특허권자인데, 귀사의 OOO 제품이 우리 특허를 침해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침해한다’라는 단정적인 표현보다는 ‘침해하는 것 같다’라는 유보적 표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권리침해를 주장하든 혹은 권리침해에 대항하든, 상대방이 우리의 사정과 상황을 납득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작성합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방이 문서 작성자를 납득하도록 하기 위한 수사법을 사용합니다.
요구 | 전략적으로 요구를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요구를 하게 되는데, 권리침해에 관련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으로 봤을 때 그 요구가 과연 합당한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불법행위는 과다한 요구를 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즉시 판매를 중단하라, 침해 제품을 소각하고 그 사진을 보내라, 현재까지 침해 제품의 판매량과 재고량을 알려 달라, 다시는 침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라, 등등의 과다한 요구 표현이 실제 실무에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런 주장은 재판 절차에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문서에서 하면 사법체계가 금지하는 자력구제에 해당하므로 불법행위입니다.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감정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고 사건은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역량과 상황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요구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답변만을 요구해도 좋습니다.
종결 인사말 | 적당한 인사말로 종결합니다.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경우와, 권리침해에 대항하는 경우의 인사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