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생각, 하자> 커리큘럼을 소개합니다
코디정의 지식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ugrf8b6bXECSFuAH_Gy6Wg/videos)에서 본격 인문학교실을 엽니다. 아마도… 2022년 9월에 개강하려고 합니다. 제1기는 <생각>이 주제입니다. 지금은 콘텐츠 준비 중입니다.
단순히 구독자에게 지식을 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들은 지식은 내일 까먹습니다. ‘지식은 많지만 남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생각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잘난 체하면 외면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인문학교실의 목표는, 동행자 여러분들이, 사람들이 퍼뜨리는 거짓말(진리를 조금 섞은 거짓말)에 속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도전적인 얘기들을 많이 할 계획입니다. 익숙한 얘기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낯선 견해도 소개합니다. 종교적인 위로 혹은 심리학적인 위로가 아닌, 인문학적인 위로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커리큘럼이 지루하지는 않으리라고 보증합니다. 먼저 생각이란 무엇인지를 따져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흥미진진한 콘텐츠를 준비한 다음에 다시 공지합니다. 코디정의 지식채널을 구독해 주시면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지식인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런 의견을 하나씩 검토한다. (1) 어떤 이는 인문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며 질문이 답변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자기의 답을 말하기 위해 청중들에게 질문을 강요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질문을 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답변이 생기지 않는다. 인문학은 인류에 관한 지식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함한 인류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 법률, 정치, 종교, 예술, 지리, 언어가 인문학에 포섭된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과 공학과 기술이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인문학의 범위가 너무 넓고, 모든 것이 인문학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문학의 범위를 좀 축소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그러면 <철학>으로 좁혀진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표현을 바꾸면 <윤리와 사상>이다. (2) 사람들은 유명한 철학자들을 거론하며 그들의 사상을 감탄하고 해설하고 찬미하며 강조한다. 하지만 그건 철학이 아니다. 죽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문헌에 관한 <철학사>이다. 역사를 공부하면 재미있고 또 현실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 하지만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전락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역사에 남은 사상가들은 모두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3) 생각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생각’을 뇌과학이나 심리학의 실증적 관찰을 증거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생각은 대체 무엇인가? 생각의 일부인가, 전부인가?
인문학은 인류를 생각하는 지식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해답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할 자유가 주어졌다. 타인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그르치거나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핀잔을 준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수많은 생각 중에서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말할 때의 그 생각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 인류는 언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게 됐는지 역사를 잠깐 살펴본 다음, 다양한 문장을 이용해서 생각을 분류해 보기로 한다. 우리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 타인이 간섭하게 되는지 드러날 것이다. 생각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철학자들과 문학과 종교를 만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중편소설 <머리와 어깨>는 안성맞춤의 철학 텍스트로 소개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하지 않은 죄’의 의미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2부에서 내린 결론의 의미를 검증하고 재확인한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한다. 인문학은 인류를 생각하는 지식이다. 그때의 생각은 목적어에 포섭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18세기와 19세기 인류가 수많은 전쟁을 거친 끝에 이룩한 두 가지 거대한 사조를 소개한다(계몽주의와 인도주의). 계몽주의가 인류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인도주의의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현대 인류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았는지 관심을 갖는 이가 드물다.
앨런 튜링(1912~1954)을 소개한다. 그리고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이며 컴퓨터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튜링이 1950년 발표한 논문의 첫 문장,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논하고자 합니다.” 튜링이 제시한 생각하는 기계의 조건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러한 <튜링 테스트>에 반론을 제기한 미국 철학자 존 썰의 사고 실험인 <중국어 방>을 설명하면서, 생각하는 기계,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인공지능이 하는 생각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의 생각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또한 미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생각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인공지능 시대에 임할 것인가.
칸트 철학의 개요를 세 가지 논점으로 설명한다. 어째서 칸트가 현대철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것인지, 즉 어째서 고대로부터 전승된 철학자의 시대가 끝나고 작가의 시대가 열린 것인지가 첫 번째 논점이다. 첫 번째 논점에서 칸트철학의 정수와 주체성 문제를 다룬다. 두 번째 논점은 첫 번째 논점과 바로 이어지는 문제로서 쇼펜하우어 관점으로 칸트를 바라봤을 때, 어째서 쇼펜하우어가 칸트를 읽으면서 자기 사상에 눈을 뜨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읽음으로써 얻는 정신적인 변화는 장님이 눈을 뜨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동시에 이해한다. 세 번째 논점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칸트의 사상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 본다. 이러한 논점은 <나는 이 세계를 알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현대적 대답으로 귀결된다.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낡았다.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가 아니면 광년 거리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 후자는 사실상 논점이 아니다. 입증될 수 없으며 접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남는 문제는 <외계인은 우리와 함께 ‘지구에’ 존재하는가>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지구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6강에서는 외계인의 선악 문제를 다룬다. 외계인은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콜럼버스를 생각하는 것처럼 외계 생명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표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 이야기를 소개하고, 외계인 문제를 다룬다. 쉬어가는 강의.
과학과 철학과 종교가 만나는 흥미진진한 시간을 구성한다. 빛과 양자역학의 역사를 과학사 관점으로 소개하고 양자역학이 증거하는 관측자의 문제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해설한다. 인식론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철학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며, 그런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인문학적인 주제이며, 따라서 빛과 양자역학을 공부한다. 물리학자는 수학식으로 빛과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설명하지만, 인문학은 철학적 통찰로 빛과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설명한다. 심오함에 심오함을 더하면 고대의 철학과 종교의 매력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시 거듭난다.
우리가 살고 있으며 감각할 수 있는 이 세계는 진짜 세계인가. (1) 데카르트의 꿈의 가설, (2) 장자의 호접지몽, (3)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를 소개하면서 <리얼리티>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본다. 그런 다음 다시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표상 개념을 통해 리얼리티를 인간의 머릿속 이미지로 옮긴다. 또한 내 머릿속 생각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유와 감정 중에 타인의 것과 내 것의 분별을 생각해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트릭스는 우리들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닌가, 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자아의 개념과 칼 융의 페르소나 얘기를 나눈다.
오늘날 종교는 철학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을 인류를 생각하는 지식이라고 정의하는 경우,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된 종교의 정신을 외면할 수 없다. 9강과 10강은 기독교 영성을 다룬다. 종교로서의 기독교 교리에서 주장되는 영성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해석과 이해의 한 관점으로서 영성이다. 서양의 정신세계의 근본적인 기초에 대해 둘 다 ‘영혼’으로 번역하는 Spirit과 Soul이라는 두 단어를 이용해서 해설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교리를 다룬다. 특히 도마복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다. Soul을 구성하는 누스(지성), 로고스(이성)과, Soul이 지배하는 Body의 관계를 살피면서, 이중 누스(지성)이 담당하는 생각을 살펴본다. 지성이 영성이며, 영성이 곧 지성이다.
제1기 생각, 하자 커리큘럼의 마지막 콘텐츠. 지성과 이성을 분별한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은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관념을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가 어떤 의미인지 고찰하면서, 내 안에 있는 그리고 동시에 당신 안에 있는 한 명의 인류를 만난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의 자식이다.
좀 쑥스럽지만,
화면에 얼굴(못생긴;;) 내밀면서
유튜브 강의를 해보려고요.
지금은 준비기간입니다.
의견 있으면 조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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