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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22. 2022

칸트의 "초월"이란 무슨 뜻인가

칸트철학을 독서하는 방법

철이 들었는지,

이제는 번역에 관해 아쉬움을 표현하거나, 혹은 개인적인 한탄을 하더라도, 번역가를 비난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그녀도 무수한 시간을 쓰고 노동하고 애쓰면서 잘 번역하려고 했겠지. 덕분에 탁월한 번역이든 남루한 번역이든 어쨌든 우리가 책을 읽는다... 일단 고맙게 생각하자.


비루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나는 칸트의 문장을 상상한다. 그가 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상상속에서 감탄한다. 그러면 됐지 뭐.


예전에 '초월'이라는 단어 번역을 두고 B교수와 K 교수가 수준낮은 초딩급 말싸움을 벌이고 그걸 한겨레신문 지면에 시리즈로 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논쟁을 하는 이 두 교수의 지적교양도 웃음이 났지만 싸움을 붙인 한겨레신문 기자의 가학적 관음증이 놀라웠다. Transcendental(영어 알파벳이다. 학자가 아니니까 독일어는 생략한다)을 B교수가 '초월적'으로 번역했는데, K교수가 '선험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비꼬면서 싸운 것인데 칸트의 사상에 관한 지면논쟁이 아니라 단어 하나 가지고 서로를 비하하는 논쟁이라는 게, 당시 생각에 한심했다.


하여튼,


이에 관해 내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Es-_Ntaz-xc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곳저곳에서 ‘초월적transcendental’이라는 단어의 뜻을 반복해서 정의하고 강조한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사실 ‘초월’은 그다지 어려운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초월적 존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우리는 금방이라도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 신 같은 존재를 떠올리지 않는가? 서양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칸트는 ‘초월’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독자가 혼란을 겪을 수 있음을 칸트 자신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칸트는 ‘transcendental’과 ‘transcendent’를 구별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아주 일관되게 구별해서 사용한 것은 또 아니어서 어떨 때에는 ‘transcendental’이라는 단어를 써놓고서는 ‘transcendent’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혼동이 생기고 독자들은 이 단어에 뭔가 복잡한 의도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인간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다. 누구나 경험의 한계를 갖고 있고 무엇보다 저마다 갖고 있는 경험이 모두 다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무엇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가능하다. ‘transcendental’이라는 단어는 그런 질문에 대한 칸트의 답변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단어이다. 


어떤 이들은 ‘선험’으로 번역하지만, 다른 사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초월’로 번역하는 이 단어에 대해 어째서 칸트 철학에서만 ‘선험’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고, 그들의 해명을 들어 보면 어째서 주석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무리해서 번역 논쟁을 일으키는 것인지 그 까닭이 궁색하다. 


그냥 ‘초월’로 번역한다. 이때의 초월은 인류가 ‘경험의 한계’를 넘어 다같이 만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인류공통의’로 바꿔 이해하면 유용하다. 순수이성비판의 첫 번째 파트이자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초월적 요소론>은 경험이 모두 다르고 그래서 저마다 경험의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능력의 요소가 무엇이며, 그 원리는 어떠한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인류의 공통된 요소와 원리를 알고 있더라도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면 결국 직관과 경험에 묶이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직관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을 생각할 수는 있는데(예컨대 하나님), 그런 존재는 경험의 한계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또 초월적이긴 하지만, 헷갈려 하는 독자를 위해 칸트는 그런 초월을 일컬어 ‘transcendent’라 표현했던 것이다. 구별을 위해 ‘초경험적’이라고 번역하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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