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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01. 2022

매일 한 문장 8

운전대만 잡으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2022-05-30

22. 우선 나이 먹은 사람이 성실해야지.


올해 내게 가장 색다른 일은 매주 두 번씩 대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대학에서 겸임교수 자리를 얻어 4학년 학생들에게 지식재산법을 가르친다. 강의가 내 본업은 아니고, 단기 계약일 뿐이어서 일로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대학생들을 만난다니, 이것만으로도 어쩐지 특권처럼 비쳐졌다. 문제는 내가 초짜라는 것이다. 20대 학생들과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난 적이 없고, 학점 강의를 한 적도 없다. 농담도 잘 못하고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개인기도 없다. 잘생기고 멋진 교사도 못되고…


지식재산법 실무에 대해서는 20년 간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해 왔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전할 생생한 경험지식은 누구 못지 않을 것이다. 비록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무섭지는 않았다. 강의 준비를 열심히 했다.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가장 늦게 퇴실한다. 그사이 쉬지 않고 정성껏 강의한다. 생각을 전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쓴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하고 보니 학생들의 눈빛에서 나를 인정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 건 느낄 수 있다.


그때 나는, 세대 차이의 극복, 아니, 세대 차이를 굳이 극복할 필요는 없지,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을 하려면 우선 나이를 먹은 사람이 성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이 모든 걸 지켜본다, 자기들은 성실하지 않으면서 주장만 일삼으니 ‘꼰대’가 되는 게 아닐까. 물론 나는 학생들과 사적인 대화를 하며 소통하지는 않았다. 그럴 입장도 못된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 구세대는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지. 성실한 언행을. 그다음은 신세대가 알아서 하시겠지. 대학생활 중 최고의 강의, 후배들이 꼭 들어야 하는 강의, 교수님 너무 재미있어요, 등의 강의평가를 받았다. 고맙다.



2022-05-31

23. 옛날이었으면 늙은이었을 사람들이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클라이언트의 상당수는 기업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개인도 있다. 그중에는 제법 나이가 있는 분들도 있다. 최근 홍길동(가명)을 만났다. 큰 사업을 했고 적지 않은 명예를 누렸으며 자식들은 이미 다 독립했다. 파산절차까지 끝난 홍길동이 나를 찾아온 것은 인생의 마지막, 아니 마지막이라고 하니 서글프다, 새로운이라는 단어를 쓰자. 인생의 새로운 꿈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잘 찾아왔다. 내가 홍길동의 꿈을 도울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세 인생의 시대가 됐다. 옛날이었으면 단순 늙은이었을 연령의 어른들, 과거였다면 인생을 정리해야 할 그 시점에 이른 어른들이 이제는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신의 선물처럼 여겨졌다. 지나온 세월이 온갖 오류의 시간 끝에 빚어낸 아름다움 같은 게 있다. 노년의, 노년에 의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시작. 나는 ‘사이타마의 진심펀치’로 돕기로 했다. 사실 나도 흰머리 가득이니, 노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2022-06-01

24. 운전대만 잡으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수송동 이면도로 회전 교차로에서 폭스바겐이 직진하려고 한다. 이때 우측 차선에서 기아케이가 우회전을 한다. 모두 서행이다. 폭스바겐은 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기아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회전을 해서 폭스바겐 앞쪽을 차지했다. 분노한 폭스바겐이 빵빵빵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려대면서 행인들의 주목을 끌더니, 몇 초도 되지 않아 꽝, 하고 기아케이의 뒤를 박아버렸다. 나는 모든 걸 목격하고 있었다. 100% 폭스바겐 과실, 게다가 보복운전, 거의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만큼 악질이다. 회전 교차로는 신호등이 없다. 직진 차선과 우회전 차선은 겹치지 않는다. 하나로 합류할 뿐이다.


기아케이 운전자가 내린다. 폭스바겐 운전자는 내리지 않는다. 기아케이가  내리지 않느냐며 분개한다. 멀쩡하게 생긴 폭스바겐 운전자가 내린다. 기아케이는 항의한다. 어째서 사과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폭스바겐은 침묵한다. 사람들이 모두 지켜본다. 뒤에서 차들이 연이어 있으므로 기아케이가 차를 옆으로 뺀다. 폭스바겐도 길을 비킨다. 기아케이가 전략을 바꾼다. 다시 차에서 내리면서 이번에는 뒷목을 잡는 시늉을 한다. 폭스바겐은 그제야 상황을 인식한다. 기아케이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고 말한다. 얼마나 비열한가. 폭스바겐 조수석에는 부인이 타고 있는 듯했다. 뒷좌석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째서 운전대만 잡으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이든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는 하루를,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 끼어들면 양보한다. 사정이 있겠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웬만하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시끄러우니까. 누군가 내 운전에 분개해서 창문을 열고 욕을 하려고 하면 대응하지 않는다. 인연을 만들지 말자. 외면하고 내 갈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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