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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05. 2022

매일 한 문장 9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는 눕지 않는다

딸과 함께 쓰는 노트에

매일 한 문장.

오늘로 27일째 쓴다.



2022-06-02

25. 동생이 있어서 네가 부럽다.


아들 생일 잔치를 했다. 만 13세를 축복한 날이다. 다음 달에는 딸의 만 15세 생일잔치가 있다. 예쁜 꽃바구니를 준비해야지. 두 아이가 고맙게도 건강하게 자라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따뜻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가끔 나는 어린 나를 소환해서 지금의 아이들과 비교한다. '어린 나'와 내 자식을 비교한다는 게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부럽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천형처럼 빈민의 불행을 짊어졌고 어둠속에서 연약하게 자랐다. 그런 아비와 달리 자식들은 대충 유복하다. 건강하다. 마음에 그림자가 없다. 만약 나도 이 아이들처럼 자랐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식들이 부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기도 해도 이 부러움이 나쁘지는 않다. 이토록 반듯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아비가 바로 나라는 대견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특히 딸이 부럽다. 동생이 있으니까. 비록 둘이 운명처럼 자주 다투지만, 다투는 그 모습조차 사랑스럽기도 하고 기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삼형제의 막내로 자랐으므로 동생이 필요했다. 하지만 동생은 없었다. 그런데 딸은 그 어렵다는 동생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한테는 누나와 오빠가 필요하다고 응수하겠지만, 어쨌든 아빠는 딸이 부럽다. 




2022-06-03

26. 창문을 열자, 유월의 나무는 후각이니까.


오월도 좋지만 유월도 좋다. 아들이 큰소리로 말한다. "아빠 요즘도 아카시아 냄새가 나. 엄청 좋아!"그건 아카시아가 아니야. 아카시아는 다 떨어졌고 이번에는 다른 거야. 이팝나무 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름 모르는 다른 꽃일 수도 있다.  


교실에서 처음 한두 사람이 손을 들었을 때에는 그이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이어서 다들 손을 들면 누구도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다들 뜨거워지고 있구나. 그런 느낌의 계절이다. 이름을 뽐내던 봄꽃이 지나갔다. 보라, 나무를, 도시의 숲을. 모두가 손을 내밀었다. 느긋한 꽃 향기인 것 같기도 하고, 이파리들이 만들어낸 냄새 같기도 하다. 이맘때 공기들이 풍기는 낌새 같기도 하고, 나무에게서 의욕을 빌리고 싶기도 하다. 유월의 신록은 후각으로 존재한다. 창문을 열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신록을 예찬했다.


이팝나무


2022-06-04

27.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는 눕지 않는다.


오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백 일이 된 날이다. 전황은 여전히 포연 속이다. 나는 언젠가 '인류애'의 지평선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것만이 우리 인류가, 그리고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혹은 우리가 가야 하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참혹한 전쟁을 겪고 치명적인 실수를 거듭한 끝에 우리 인류가 마침내 도착한 곳이 평화와 공존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대가 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라는 나라가 이웃 나라를 아무런 명분도 없이 침공한 것이다. 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분개했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쟁이 벌어진 곳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 노트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상상했다. 응원 문구가 적힌 노트를 만들어서 서울에 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조국을 걱정하는 그 사람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국기로 노트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응원 문구가 문제였다. 마음속에서는 러시아를 비난했고 우크라이나를 노골적으로 응원했지만, 차마 싸워라, 이겨라 라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없었다. 평화는 힘들다. 전쟁에서는 누군가 죽는다. 한두 명이 아니라 아주 많이 죽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하루종일 고민한 끝에 마침내 생각한 문장이 이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는 눕지 않는다



역시나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전쟁이 조속히 끝났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승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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