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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08. 2022

매일 한 문장 10

희소식이 온다


딸과 함께 쓰는 노트에 매일 한 문장. 오늘로 한 달이 되었다.  



2022-06-05

28. 사람들은 소금 한 가마를 같이 먹기 전에는 서로를 알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를 다 읽었다. 밑줄을 많이 그었다. 독서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이 생기면 책의 여백에 그 생각을 갈겨쓰면서 메모를 남겼다. 그만큼 좋았다. 지금껏 3권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은 지식은 없었다. 시학, 수사학, 자연철학. 아마도 당시 나라고 하는 사람의 그릇이 신통치 않았을 것이다. 신맛, 쓴맛, 매운맛, 인생의 다양한 맛을 봐서 그런지 이 책은 좀 다르네. 좋다. 특히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뭔가라도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을 때가 많은데, 머리에 든 게 없다 보니... 생각이 부족하고 또 마땅히 떠오르는 언어가 없어서 그냥 스쳐지나간다. 이 책에는 정말이지 지혜로운 말씀이 가득해서 그걸 좀 빌려 써야겠다. 앞으로 3회독은 더 하고 싶다.


<윤리학> 8 우애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사랑과 우애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좋음() 위해 사랑하고, 유용함(이익) 위해서 사랑하고, 즐거움(쾌락) 위해 사랑하는 . 유용한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즐거움은 금방 바뀐다. 이건 진정한 우애가 아니다. (, 내게 우애는 무엇이었을까?) 완전한 우애는 좋은 사람들 사이의 우애라고 한다. 좋은 사람이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는 그런 친교를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는 강조하는데, 그런 우애를 위해서라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진정한 우정에 필요하다는 말씀. 그래서 고대 그리스 속담을 인용한다. "사람들은 소금  가마를 같이 먹기 전에는 서로를   없다." 나는  구절에 진하게 밑줄을 그은 다음, 나는 얼마나 많은 소금을 썼는지 생각하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의욕이 생기는  같기도 하고.



2022-06-06

29. 인간의 언어는 실수이거나 부족하거나 거짓이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나이 마흔 이후 나는 인간의 언어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다. 황홀한 언어도 목격했고 부잡한 언어도 많이 봤다. 허구한 날 문자로 적힌 글을 읽었고, 매일 사람들의 입술에서 발화되는 문장을 듣는다. 오류조차 꽃인 문장도 있고 관절이 모두 꺾인 문장도 있다. 뱀같은 목소리며 향기로운 조언이며 망나니같은 주장도 듣는다. 언어에 대해 생각을 더 충분히 해야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실수이거나 부족하거나 거짓이다." 입으로든 글로든 사람들이 표현하는 언어는 상당이 불완전하다. 텔레파시가 발명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일 거야.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다. 유명한 석학도 마찬가지며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그냥 언어 자체가 생각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


이런 걸 좀더 현실적으로 알아챘다면 편집 노동을 하지 않았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거꾸로, 표현된 언어에 낚이지 않고 잘 관찰하면서 그 사람의 진심, 혹은 그 사람이 말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게 편집자가 할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놓고서는 또 다시 타인의 표현된 언어에 낚이고 만다. 실수일 거야, 좀 표현이 부족했겠지, 에이 거짓일 거야,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그 언어에 낚여서 파닥거리고 있다;;;


그만 좀 낚이자고 또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생각을, 아내의 생각을, 친구와 지인의 생각을, 의뢰인과 행인과 망자와 산자의 생각을, 그들이 뭐라고 표현했든 들리는 대로 보는 대로 믿고 낚이지만 않는다면, 이해할 수 있다. 화내지 말자. 속지 말자. 그래, 그건 인정해.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이해'는 내 쪽에서 하는 일이니까 좀 더 낫지 않을까? 갑자기 딸한테 미안하고 아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들놈한테는 안 드네.



2022-06-07

30. 희소식이 온다.


오늘 선배 L을 만났다. 대학교 1년 선배다. 몇 년 만인가? 오륙 년? 나는 좀 소극적이고 건조해서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다. 마음이 차가운 것도 아닌데 좀처럼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찾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라고, 진부하게 생각하고 만다. 수십 년 동안 이랬으니 지금쯤 내 DNA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냥 그런 성정이다. 이제는 나도 어쩔 수 없다.


아침 L이 전화를 했다. 11시 40분 무렵 만나자는 것이다. 점심은 됐고 차를 마시자는 것이다. (점심시간인데?) 하여튼 L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말이 생각을 못 따라간다. 만나자마자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자기는 하루 2식이고, 점심은 먹지 않는다고 답한다. 나는 배가 고프니 먹어야겠다고 말하고, 샌드위치를 먹을 테니까 앞에서 음료를 마시면 되겠다고 답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부인은 건강하시냐고 물었다(내가 주선해서 결혼까지 성공한 커플이다). 자녀에 대해서도 묻고 회사생활에 대한 정보도 교한했다. 삶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편안하고 어떤 면에서는 불안하다. 오랜만에 만나니 또 반갑고, 헤어지자니 또 아쉽고 하는 기분이 들었다. L이 만나자고 해서 부리나케 여섯 권의 책을 선물로 준비했다. 평소 L이 좋아할 만한 주제의 책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느닷없이 문학을 좋아하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소설 책도 몇 권 준비할 것을... 하여튼 만나니 좋네, 하는 기분이었다. 반가웠다.


이제 우리가 여생 동안 만나면 얼마나 많이 만나겠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는 일. 무소식이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다가 이렇게 만나면 희소식이 오는 것이다. 희소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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