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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11. 2022

낫을 쓰지 말자

매일 한 문장 11

매일 한 문장씩 쓰자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명상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이라면 쉬울지 몰라도 나나 딸이나 이것저것 바쁘니까 깜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계속 가 보자.



2022-06-08

31. 낫을 쓰지 말자.


부정보다는 긍정이 좋고, 비관보다는 낙관이 낫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자잘한 실패를 겪고 나서 혹은 겪고 있으면서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을 침범한다. 바이러스처럼 번지면서 내 정신 에너지를 좀먹는다.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침범하면 그 전염성을 막기 어렵다. 예방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 끝에 '낫(not)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낫을 쓰지 말자, 낫을 휘두르지 말자...


그런데 이것을 실천하는 일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다. 내가 그런 결심을 했었지, 라는 생각 자체를 까먹는다. 나는 태연히 낫을 쓴다. 그러다가 깜짝 정신을 차리면서, 나를 책망하면서 다시금, 낫을 쓰지 말자고 결심한다. 결심한 것을 이렇게 자꾸 까먹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명상을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쨌든 이것은 표현과의 싸움이다.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표현이 적으면 더 긍정적인 하루를 보내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다, 않다, 없다'라는 단어를 배제하면 더 알맞은 단어를 찾으려고 애쓰게 되고, 그러면 저절로 어휘력도 늘어나고 문장도 좋아지리라고 기대해 본다.


낫을 배제하니 대화가 막막하고 신중하다. 나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낫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은 어떨까? 내가 예전에 쓴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보니 평소 이렇게나 많은 낫을 사용하고 있었구나.




2022-06-09

32. 생각과 표현을 보호하는 지식재산레슨


지난 백 일 동안 4학년 학생들에게 지식재산법(Intellectual Property Law)을 가르쳤다. 이 강의를 맡기 전에 참 많이 고심했다. 지식재산법은 민법과 달리 역사가 매우 짧고 복잡하다. 요즘 사람들이 지식재산법을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어째서 중요하고 그 내용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 법 체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말이 다르고 가리키는 방향에 차이가 있다. 나 또한 그런 다름과 차이의 하나이다. 어쨌든 나는 저작권법, 상표법, 특허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저작권법과 특허법 사이의 간격이 아주 커서 이걸 메워가면서 지식재산법 전체를 학생들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고심 끝에 생각해 낸 두 단어가 바로 <생각>과 <표현>이다. 이 두 단어로 학생들에게 지식재산법의 세계의 지평을 보여주고, 이 두 단어로 한 학기를 끌고 가면서 학생들에게 지식재산의 법리를 각인시키자. 이것이 지난 겨울에 짜놓은 내 기획이었다. 오늘 종강했다. 강의를 마치자 학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기분이 든다.


우리 인류에게 '생각'은 퍼블릭 도메인이었다. 누구의 생각이든 좋은 생각이라면 자유롭게 자기 생각으로 갖다 쓰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구텐베르크 인쇄산업이 등장했다. 이삼 백 년 동안 인쇄산업의 성공과 성장을 거치면서 '어라, 생각도 돈이 되네'라는 발견이 인류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소유권 개념이 사회구조로 정립되었다. 돈이 있는 곳에 소유권이 생긴다. 그러자 '생각에 대한 소유권'이 제기되었다. 어림없는 소리, 무슨 생각에 소유권이냐며,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새로운 주장이 등장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반대파가 권세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파'에게는 '표현'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먼저 저작권이 인정되었다. 독창적인 표현이라면 생각도 독창적일 것이다. 아이디어(생각)가 세상을 바꾸며 큰 돈이 된다는 사실이 속속 증명되었다. 돈이 있는 곳에는 역시 소유권이 생긴다. 표현된다는 전제로 특허와 상표 등의 산업재산권이 인정되었다. 생각을 어떻게 독점하냐고? 텔레파시가 발견되고 인간이 초능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생각의 독점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표현된다면 그 표현을 통해 생각을 추론할 수는 있다. 그러자 인류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은 표현이 금지된다. 영업비밀과 부정행위가 그러하다. 좋은 생각을 하자. 그래야 좋은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표현을 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래야 좋은 생각이 빛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각과 표현을 보호하는 세계, 그 세계가 지식재산의 세계다.


한 학기 동안 이런 세계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생각과 표현을 보호하는 지식재산레슨이었다. 나는 이 백 일 동안의 여정에 만족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022-06-10

33. 덕분에 저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구기동 방면으로 북한산 등산길 초입에 <삼각산 머루집>이라는 곳이 있다. 아니, 있었다. 2012년경부터 단골이었으니 이곳 부부 사장님들은 우리집 아이들이  3,  1  때까지  성장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이다. 일단 맛있고, 건강한 요리다.  일대에서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은 요리를 내놓는 곳이다. 우리집과는 특별한 인연이 생긴 덕분에 매년 김장김치는 이곳에서 해결한다(가격은 정당하게 지불). 역시나 사람들이 알아 보기는 하지만, 아주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라기보다는, 몇몇 단골들의 사랑을 받는 식당이었다. 그러던 중에 <맛있는 녀석들>에도 소개된 이후로  서서 먹는 스타 가게가  .  


그런 모습이 좋았다. 돈을 좀 벌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식당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했던 계획에 따라 경기도 가평군으로 이전하여 다시 <삼각산 머루집>을 열었다. 그게 6월 10일 금요일. 회사 조퇴하고 아내와 함께 가게에 갔다. 개업 화환을 보낼까, 화분을 보내깔, 망설이다가 내 20년 단골 꽃가게인 <옥사나블루밍>의 꽃바구니를 들고 갔다. 문구를 보고 남사장님이 감동해 주시고, 꽃바구니를 보고 여사장님이 너무나 기뻐하시니 우리 부부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원하는 대로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더더욱 번창하세요.


가평군 삼각산 머루집, 주차장 매우 넓음
옥사나블루밍의 꽃은 언제나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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